시간을 부르는 다른 이름
아이를 낳고 나서
내 나이를 말할 일이 거의 없어졌다.
누가 나에게 몇 살이냐고 묻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아기는 몇 개월이에요?”
그리고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한다.
열두 달을 넘기지 않는 숫자들로,
정확하고 또렷하게.
6개월, 12개월, 24개월.
그 숫자들은 이상하게도
내 나이보다 훨씬 선명하다.
아이를 낳기 전엔
내가 몇 년을 살아왔는지가 중요했다.
서른이 넘었는지, 아직 아닌지,
빠른지 늦은 지.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는
얼마나 살았느냐보다
얼마나 함께 지나왔느냐가 기준이 됐다.
하루하루가 쌓여
개월수가 되었고,
그 개월수 안에는
잠 못 든 밤과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난 아침들이
다 들어 있다.
이상하게도
아이의 개월수를 말하다 보면
내 시간도 같이 흘러간다.
"이제 두 돌이에요"
그 말속에는
내가 여덟 번의 계절을
아이와 함께 건너왔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
내 나이는 설명할 필요가 없고,
아이의 개월수만 말하면
지금의 내가 설명된다.
어쩌면 나는
서른몇 살의 여자가 아니라
몇 개월을 살아낸 엄마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이를 잊어버린 게 아니라,
시간의 단위를 바꿔 들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게 나쁘지 않다.
내 나이를 말하지 않아도
나는 지금의 나를 알고 있다.
내 나이를 말하지 않아도
나는 지금의 나를 알고 있다.
몇 개월의 밤을 견뎠고,
몇 개월의 사랑을 배웠는지.
그걸로 충분하다.
내 나이를 묻지 않는 세상에서
나는 조금 편해졌다.
몇 살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어디쯤 와 있는지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몇 개월을 버텼는지,
몇 개월을 안아봤는지.
그 시간들이 쌓여
오늘의 내가 된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조용히,
그걸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