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알아보게 되는 당신들에게
가깝지 않아도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해서도 아니고,
이제 와서 알게 돼서도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고
믿었던 사이도 아니다.
우리는
그저 같은 일을 겪고 있고,
같은 하루를 지나고 있고,
같은 이유로 오늘을 견디고 있을 뿐이다.
어쩔 수 없는 엄마의 독박육아를 알고,
아이를 혼자 보는 시간이
얼마나 길어질 수 있는지도 알고,
미디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게으름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나는 제대로 한 끼를 챙겨 먹지 못하면서도
너의 식단만큼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다는 걸,
나는 놀지 못해도
너의 하루는 지루하지 않기를 바라며
활동 시간을 맞추고
낮잠 시간을 재고
컨디션을 살피고 있다는 걸,
그런 하루들이
특별하지 않다는 듯 흘러가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우리는 서로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
세상을 지켜내는 힘을 아이에게 가르치는 일을 하는 아빠를 두고,
그 시간이 집 밖으로 향하는 동안
두 아이의 하루를 혼자서 완성해 온 엄마가 있다.
아이를 지키는 아빠의 등을 받쳐주기 위해
슈퍼우먼처럼 하루를 쪼개
네 아이의 삶을 홀로 굴려온 엄마가 있다.
나라를 지키는 일을 하는 아빠를 둔 채
아이 셋의 하루를
늘 혼자의 손으로 책임져 온 엄마가 있다.
또한 나라를 지키는 아빠를 둔 어린아이를 보듬으며
동시에 뱃속의 아이까지 품고
기다림이라는 시간을 살고 있는 엄마가 있다.
늘 바쁜 아빠를 대신해
‘대신’이라는 말조차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홀로 아이를 키워온 엄마가 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아빠의 부재 속에서
모든 육아를
자기 몫으로 받아 안아온 엄마가 있다.
이 글 속의 ‘우리’는
바로
그 엄마들이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무슨 위로가 없어도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오늘을 버티게 되는 사람들.
특별히 가깝지 않아도
굳이 마음을 꺼내놓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서로를 알아보게 되는 우리.
나는
그런 우리가 있다.
그리고 서로에게 고생했단 말을 하지 않아도
이 하루가 얼마나 무거운지,
그럼에도 왜 다시 내일을 준비하는지,
우리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