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함으로 시작한 시간들이, 또 다른 빈자리가 되어 있었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는 둘째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언니 없이,
처음으로 둘이서만 나서는 길이었다.
목적지는 소아과.
그저 영유아검진을 받으러 가는 짧은 외출이었을 뿐인데
그날의 둘째는
유난히 발걸음이 가벼웠다.
내 손을 꼭 잡은 채
괜히 더 많이 웃고,
괜히 더 자주 나를 올려다봤다.
“루리야, 엄마랑 둘이 나와서 좋아?”
나는 가볍게 물었고
둘째는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응! 좋아!”
그 한마디에,
문득 멈칫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어쩔 수 없이 첫째에게 더 신경 쓰지 못했던 시간들.
그게 늘 마음에 걸려서
나는 종종 첫째만 따로 데리고 나갔다.
놀이터에 가고,
간식을 사주고,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던 날들.
그게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게 공평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알았다.
나는 단 한 번도,
둘째와 단둘이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는 걸.
첫째를 위해 만든 시간들이
결국 둘째의 시간을 비워두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소아과를 다녀오는 짧은 시간 동안
루리는 내 손을 한 번도 놓지 않았다.
괜히 더 웃고,
괜히 더 안기고,
괜히 더 이름을 불렀다.
그 모습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엄마가 나만 보고 있는 시간이네.”
나는 그동안
둘만 있는 시간을 '공평함' 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날 알았다.
누군가를 더 바라보려 했던 시간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조용히 비워진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나는 사랑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사랑의 방식만 나누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이제는 안다.
사랑은 나누는 게 아니라,
비워두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