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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사삭 Jul 26. 2021

#6. 플랜더스의 개(위다)

(아이에게 들려주는 인생의 문장)

플랜더스의 개는 제가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책 중 마지막 장면을 읽다가 오열했던 책으로 기억됩니다. 넬로와 파트라슈의 그 차디찬 죽음이 너무나도 슬퍼서 어린 마음에 내내 가슴이 아리고 안타까웠더랬죠. 


플랜더스의 개는 위다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프랑스계 영국  여성작가인 '마리 루이 드 라라메'가 1872년에 출간한 책으로 그녀가 안트베르펜을 여행한 후 쓴 소설입니다. 


사실 플랜더스의 개는 동화도 동화지만, 만화와 만화 주제곡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어릴 적 본 만화는 1975년 일본의 후지 TV에서 만화영화로 제작된 것인데, 그림의 톤이 부드럽고 등장인물의 그림체가 밝고 따뜻합니다.(보고 있으면, 순수한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참고로, 플랜더스는 벨기에 서부를 중심으로 네덜란드 서부와  프랑스 북부에 걸친 지방으로 14~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음악과 미술이 발전하였고, "플랑드르"라고도 불린다고 합니다. 


1. 넬로의 꿈

넬로(니콜라스의 애칭)가 안트베르펜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그림은 루벤스의 그림 두 점이었는데, "십자가에 들어 올려지는 예수"와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였습니다. 


하지만, 성당에서는 이 그림 모두 베일로 가려놓고 돈을 낸 사람에게만  보여주었습니다.(세속화된 교회의 한 단면 같아 보입니다. 아마도 작가는 당시의 비속해져 버린 기독교를 비판하고 싶었던 듯합니다.)


그림을  보여주지 않다니 정말 너무해. 가난해서 돈을 낼 수 없기 때문에 그림을 볼 수 없다니..그분(루벤스)이 저 그림을 그리셨을 때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여 주지 않겠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셨을 거야. 난 믿어. 그분이 계셨다면, 언제든 매일매일 우리가 그림을 볼 수 있게 해 주셨을 거야.
-플랜더스의 개 중 넬로의 말-


2. 플랜더스의 개, 파트라슈

파트라슈는 놋그릇 등을 파는 난폭하고도 욕심 많은 주인의 수레를 끌던 제법 큰 개였습니다. 주인은 파트라슈에게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은 채 시도 때도 없이 채찍질을 하며 힘들고 고된 일을 시키는 무자비한 사람이었습니다. 


파트라슈의 조상들은 수백 년 동안 엄하고 지독한 대우를 받으면 일해 왔고, 파트라슈의 몸속에는 그 피가 흘렀어요. 노예의 노예, 하층민들의 개, 수레를 끄는 짐승이었어요. 짐마차를 끄느라 살가죽이 벗겨져 피가 줄줄 흐르면서도 개들은 그 고통을 묵묵히 참으며 살았지요. 그러다가 거리의 차디찬 돌바닥에서 죽음을 맞는 것이 바로 플랜더스 개들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땡볕에 모진 학대를 받고 수레를 끌고 가던 파트라슈는 지쳐 쓰러지게 됩니다. 그러자 주인은  파트라슈를 쓸모없다는 듯 길가에 내버려 둔 채 떠나버립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길가에 쓰러져 있는 파트라슈를 지나가면서 보긴 하였지만, 병들어 죽은 개이거니 하고 모두들 무관심하게 지나쳐갔습니다. (이 부분은 마치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저역시 길가에 병들어 있는 개를 보아도 책 속의 그들처럼 무심하게 지나쳐갔을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하지만 선한 마음을 지닌 넬로의 할아버지(예한다스)는 길가에 쓰러진 파트라슈를 데리고 와 손자인 넬로와 함께 정성껏 돌보아 주고 치료해줍니다. 넬로와 할아버지의 정성 어린 간병 덕택에 회복한 파트라슈는 이들이 이전의  주인과는 다른 마음씨 따뜻한 사람임을 알게 되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이들과 함께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날들을 보냅니다. 


3. 화가라는 꿈

가난하지만, 화가라는 꿈을 남몰래 키워가고 있는 넬로는 할아버지가 연로하심에 따라 할아버지 대신 우유배달일을 하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도 때로는 선택을 할 수 있어. 위대한 사람이 되는 길을 택하는 거야.

넬로는 틈틈이 나무판에 숯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누구도 넬로에게  선이나 원근법, 명암에 대해서는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넬로는 끊임없이 자신의 꿈을 위해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매년 개최되는 상금이 걸린 안트베르펜의 미술대회에 넬로는 자신의 작품을 출품하기 위해 봄부터 가을까지 온 힘과 정성을 다해 그림을 그립니다. 넬로로서는 상금을 탄다면  성당에 있는 루벤스의 그림도 볼 수 있고, 화가의 꿈도 이룰 수 있다는 기대가 컸을 겁니다. 


하지만, 대회의 수상자 발표를 앞둔 어느 날, 넬로의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게 되고 그나마 가지고 있던 돈으로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돈이 없어 집세를 내지 못하자 인정 없는 집주인은 넬로와 파트라슈를 쫓아냅니다. 


넬로의 마지막 희망일 수도 있는 미술대회의 수상자를 발표하는 크리스마스이브날, 굶주림과 혹독한 추위로 넬로와 파트라슈는 서로의 온기에 의지한 채 미술대회의 수상자 발표를 보기 위해 안트베르펜으로 향하지만,  미술대회의 수상은 마을의 부잣집 아이에게 돌아가게 되고, 절망에 빠진 네로는 "다 끝났어. 사랑하는 파트라슈..."하며 다시 마을로 발길을 옮깁니다. 

루벤스의 그림을 바라보는 넬로, 그리고 파트라슈

그날은 유난히도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이었습니다. 눈보라 속을 헤매고 걷다 우연히 파트라슈는 마을의 부잣집 딸인 알루아(넬로의 친구)의 아버지 코제씨가 잃어버린 지갑을 발견하게 되고, 넬로와 파트라슈는 거금이 들어있는 지갑을 알루아의 집에 가져다줍니다. 난처함에  빠져있던 알루아의 아버지 코제씨는 그동안 자신이 가난하고 보잘것없다고 홀대했던 넬로의 진가를 뒤늦게야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갈 곳 없고 굶주림과 추위에 지친 넬로는 안트베르펜의 대성당에서 자신이 그렇게도 보고 싶어 했던 루벤스의 그림 두 점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파트라슈와 함께 차디찬 성당 돌바닥에서 숨을 거둡니다.


넬로는 일어서서 그림을 향해 두 팔을 뻗었어요. 뜨거운 환희의 눈물이 창백한 넬로의 얼굴에서 반짝였습니다. "마침내 그림을 봤어! 오, 하느님! 이제 됐습니다!
십자가에 들여 올려지는 예수 -루벤스- (인물 하나하나의 역동성과 사실감에 경외심과 숙연함이 듭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루벤스- (인간의 모습으로 왔기에 예수그리스도 역시 처절한 고통과 연약함을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십자가형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크리스마스 아침, 뒤늦게서야 알루아의 아버지 코제씨는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내놓겠다고하고, 유명한 화가는 미술대회의 상은 넬로가 받았어야 했다며 넬로를 찾습니다. 하지만, 넬로와 파트라슈는 이미 천국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넬로와 파트라슈가 살았던 작은 마을의 사람들은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에 넬로와 파트라슈에게 평온한 은총이 내리기를 기원했어요. 그리고 하나의 무덤을 만들어 서로 나란히 쉴 수 있게 해주었지요..영원히..

책의 완역본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작가는 그 당시의 기독교라 불리는 종교와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위선과 비속함을 비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기독교의 나라에서 개는 무자비하게 학대를 당하고, 교회의 성화는 돈을 내야만 볼 수 있고, 가난하고 오갈 데 없는 이들은 소외된 채 살아가야 하는 지독하고도 냉혹한 현실을 말이지요.


넬로의 현실은 남루하고 보잘것없었지만, 넬로의 가슴속에 키우고 있는 화가의 꿈은 성스럽고 고결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넬로에게는 루벤스라는 거장의 그림이 하나의 이상이었고, 자신의 꿈을 이끄는 동력이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할 꿈이라는 것이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나이가 들면서 그 꿈을 하나, 둘 현실과 타협하며 포기하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꿈"이 우리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넬로의 화가가 되는 꿈은 현실이란 벽에 부딪혀 이 동화는 비극으로 끝납니다. 동화의 세계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차디찬 현실세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많은 생각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가라앉았습니다.


나란 사람은 넬로와 파트라슈의 이웃이 과연 되어줄 수 있었을까?

알루아의 아버지처럼, 혹은 넬로를 외면했던 이웃들처럼, 나는 나와 내 가족만의 안위만을 챙기면서 살아간 건 아닐까?

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서 진정한 구제와 긍휼을 베푼 적이 있었는가?

가진 것으로, 현재의 단편적인 외양(모습)만으로만 상대방을 재단하지 않았는가?


저에게 "플랜더스의 개" 동화책은 그저 지나쳐서는 안 될 묵직한 삶의 질문들을 던져준 책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잠시 시간을 내어 넬로와 파트라슈의 이야기, 그리고 넬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루벤스의 위대한 그림을 한번 보시지 않겠습니까?

                                         

플랜더스의 개 만화 마지막 장면 중
안트베르펜의 성모마리아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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