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사삭 Aug 13. 2021

[영화리뷰] 이와이슌지의 라스트 레터

피우지 못한 꿈은 꽃피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Last Letter)

오늘은 여름휴가 기간 동안 찾아보게 된 이와이 슌지 감독의 신작 영화 "라스트 레터(Last Letter)"에 대한 소소한 감상을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이 영화는 제가 좋아하는 배우이자 가수인 마츠다카코가 주인공으로 나오더군요. 이와이 슌지의 또 다른 영화 "4월 이야기"(1998년 개봉)에서 선배를 남몰래 좋아하는 대학 1년생의 풋풋한 감정을 섬세하게 연기했었는데, 이번 라스트 레터 영화에서는 비슷한 듯 다른 첫사랑에 대한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4월 이야기

라스트 레터는 보는 동안 감독의 또 다른 영화인 "러브레터(Love Letter)"가 많이 오버랩되었습니다.  이를 테면,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에 대한 기억, 도서관 서가에서 책을 고르는 장면(scene),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주인공, 첫사랑의 죽음, 감기에 걸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여자주인공, 장례식 장면, 인물들 사이의 오고 가는 편지와 나레이션, 편지를 통해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 등등..

러브레터 영화에서는 눈이 내리는 겨울, 라스트 레터에서는 여름을 배경으로 하여 대비적으로 그려낸 것 또한 감독이 이 "편지 시리즈"영화에 일종의 계절적 설정을 준 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아울러, 이와이 슌지 감독이 라스트 레터 영화를 만들면서 자신의 전작인 러브레터를 모티브로 하고 오마주하여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봅니다. (영화 러브레터는 1995년에 우리나라에서 개봉했었는데 일본영화로서는 공전의 히트를 치기도 하였지요. 저의 경우 러브레터의 영상미와 OST가 너무 좋아서 영화를 두번이나 보고, 한동안 이어폰을 끼고 영화음악을 들었던 추억이 있습니다.)


"라스트 레터"는 바로 이 "러브레터"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순수하고도 아름답게 기억된 청춘의 첫사랑을 간직한 채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이들..

각자의 첫사랑은 다르지만 여전히 그 기억을 가슴 한켠에 묻어두고 살아가고 있는 이들..

영화는 "편지"라는 매개체로 과거를 소환하여 다시금 이들의 청춘의 시절과 첫사랑을 조명해줍니다. 


일본 특유의 왠지 모를 무거운 주제의 죽음이 영화에 나오지만, 영화가 내내 무겁지만은 않습니다.  사촌지간인 현재의 고등학생 두 소녀(딸들), 20여년전 과거 속의 고등학생 자매의 모습이 영화 속에서 대비되며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게 진행됩니다. 


라스트 레터는 주인공인 토노유리(마츠다카코)를 중심축으로 하여 그녀 자신과 주변인물들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1. 주인공 토노유리의 언니 장례식과 언니가 딸에게 남긴 유서(Last Letter)

2. 죽은 언니의 고교 동창회 모임에  나가게 되는 동생 유리

3. 동창회에서 만난 소설가가 된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인 선배 오토사카 쿄시로

4. 쿄시로와의 편지를 통해 드러나는 토노유리와 토노 미사키 자매 이야기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로 또 다른 남자주인공인 쿄시로가 고교 3학년 때 전학 오면서 두 자매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

5. 토노 유리의 시어머니 이야기(늦은 나이에 남몰래 영어작문 공부를 하는 시어머니, 다친 어머니를 위해 어머니 몰래 영작 체크 미션을 도와주는 며느리 토노유리)

6. 미사키의 죽음의 그림자인 전 남편을 찾아 만나게 되는 소설가 오토사카 쿄시로

7. 절판된 소설책인 "미사키"라는 소설책

8. 옛 고등학교 건물에서 두 자매의 딸들을 만나게 되는 쿄시로

9. 도서관에서 일하는 토노유리와 쿄시로의 마지막 작별인사

10. 미사키가 딸 아유미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Last Letter) 이야기


토노유리가 일하는 도서관에 찾아온 쿄시로,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대화는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한번 더 제대로 소설과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아.
(토노유리에게 쿄시로가 마지막으로 인사하면서 하는 말)

스스로 믿는 것을 쫓아가세요. 당신은 나의 히어로니까요. 
(토노유리가 첫사랑 선배인 쿄시로에게 마지막으로 고백하듯이 하는 말, 감독 자신이 듣고 싶어 했던 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습니다.^^)

수미상관의 형식을 빌려 영화는 언니가  딸에게 남긴 아직 열어보지 못한 편지로 시작하여, 여름방학 동안 마음의 치유를 얻은 언니의 딸 아유미가 편지를 열어보고 읽으면서 끝을 맺습니다.


미사키가 딸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는 바로 고교 3학년 졸업 송사로 쿄시로와 함께 퇴고를 하며 작성한 낡은 원고지였습니다. 미사키로서는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추억이 담긴 원고지였던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졸업식을 맞이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은 우리에게 있어 아마도 평생 잊을수 없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입니다. 장래의 꿈이 무엇인지 목표는 무엇인지 묻는다면  저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우리들의 미래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생의 선택지가 있겠지요. 이 자리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 누구와도 다른 자신만의 인생을 걷게 됩니다. 꿈을 이루는 사람도 있겠지요. 이루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괴로운 일을 겪게 될 때, 살아가는 일이 고통이 될 때  분명 우리들은 몇 번이고 이 장소를 떠올릴 것입니다. 자신의 꿈과 가능성이 아직 무한하게 여겨졌던 이곳을 모두가 한결같이, 소중하게 빛나고 있었던 이 장소를... 
(강당에서 졸업식 송사를 읽어 내려가는 미사키와 글을 읽어 내려가는 미사키의 딸 아유미)


아쉽게도 미사키는 그녀가 남겼던 편지 속의 수많은 인생의 선택지 속에서 삶의 괴로움을 죽음이라는 선택지로 마무리했지만, 미사키가 딸과 가족들에게 바랬던 것은 그녀와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랬기에 편지를 남긴것이라 생각합니다.


솔직히 저는 미사키의 죽음이 선뜻 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영화에서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이 친절하지 않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까지 미사키의 죽음을 표현해야만 했던 감독의 의도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며 내린 결론은 "영화의 장치로서 사용한 죽음의 실체가 모호"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 부분이 저로서는 영화의 아쉬운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영화에서는 미사키의 전남편이 나오는 장면이 조금은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좋아하는 배우와 서가가 즐비하게 들어선 도서관의 풍광, 순수하고 수줍은 학창시절의 장면 등은 영화의 불편한 부분들을 상쇄할 만큼 잔잔하게  마음을 터치했다고 평해봅니다. 



미사키(未咲)

일본어 한자로는 "아직 피지 못했다"는 뜻으로  저는 해석했습니다만..

다시금 소설가로서 글을 쓰려고 하는 쿄시로, 나이를 뛰어넘어 영작공부에 기쁨을 느끼며 공부하는 토노유리의 시어머니와 같이 어쩌면 우리들 각자에게는 아직 피우지 못한 꽃(꿈)들이 있겠지요.


아직 꽃 피우지 못한 우리들만의 꿈을 꽃 피우기 위해 소중한 인생을 한걸음 한걸음 살아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며 영화에서 나름의 의미를 길어 올려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6. 플랜더스의 개(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