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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사삭 Sep 12. 2021

사유하는 건축가 승효상의 '묵상'을 읽고

관성을 따르지 않는 삶을 생각하다.

                                                                                                      

1. 들어가는 말

승효상 건축가를 알게 된것은 몇년전 도서관의 건축관련 서가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읽게 된 "빈자의 미학"이란 책을 본 이후입니다. 두껍지 않은 얇은 책으로 흑백의 사진으로만 구성되어 건축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철학, 그리고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책은, 저를 건축의 세계로 초대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빈자의 미학을 통해 이름으로만 듣던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과 자코메티의 조각 "걸어가는 사람"을 접할수 있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
샤를에두아르 잔레그리(프랑스어: Charles-Édouard Jeanneret-Gris) 또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년 10월 6일 ~ 1965년 8월 27일)는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 작가이며 현대 건축에 큰 공헌을 했다. 그는 30대에 프랑스 시민권을 얻었다. 그는 현대 디자인의 이론적 연구의 선구자이며 밀집 도시의 거주자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데에 노력하였다. 그는 50 년 동안 활동하면서 중앙유럽, 인도, 러시아에 자신의 건물들을 만들었으며, 아메리카에도 하나씩 건축물을 만들었다. 그는 또한 도시 계획가이며, 화가, 조각가, 그리고 가구 디자이너였다.  <출처 위키백과>
르 코르뷔지에의 현대 건축 5가지 원칙이 실현되었다는 "사보아 주택(Villa Savoye)"


알베르토 자코메티(이탈리아어: Alberto Giacometti, 1901년 10월 10일 ~ 1966년 1월 11일)은 스위스의 조각가 겸 화가이다. 주네브 미술 학교에서 공부한 후, 프랑스 파리로 가서 조각가 앙투안 부르델의 아틀리에에 들어갔다. 후에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가하여 〈보이지 않는 사물〉, 〈4시의 궁전〉, <걷는 사람> 등의 작품 외에 오브제를 제작하였다. 그 후 철사와 같이 가늘고 긴 조상(彫像)을 많이 제작하여 독자적인 양식을 이루었다. <출처 위키백과>
덴마크 코펜하겐의 루이지애나 미술관,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 (그저 외롭게 뚜벅뚜벅 걸어가는 앙상한 조각속에서 왠지모를 실존적 외로움과 고독이 느껴집니다)


빈자의 미학이란 책은 승효상 건축가가1996년 강의 노트로 쓴 내용을 작은책자로 만든 것이 출간된 것인데, 절판 되었다가 2016년 다시 출간된 책이기도 합니다. 건축을 하는 이들이라면 교본처럼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빈자의 미학이란 책을 통해 느낀것은 저자의 건축에 대한 애정, 남다른 철학인것 같습니다. "아 이런 건축가가 우리나라에도 존재하고 있구나.."하고 생각했던듯 싶습니다.


그 이후 승효상님이 설계한 건축물을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찾아보고, 이 분이 건축계의 거장이신것도 알게되었습니다. 

승효상(承孝相, 1952년 10월 26일 ~ )은 대한민국의 건축가이다. 미술사학자 유홍준의 자택인 '수졸당'(1993),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2010) 등을 설계하였다. 그는 부산에서 태어나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당시 경남고등학교는 한강이남 최고의 명문고라 불리었으며 승효상이 고교를 입학 할 때 수석 입학자는 현재 대한민국 제 19대 대통령인 문재인이었다. 고교 시절 초기에는 '문과에 문재인, 이과에 승효상'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학업에 두각을 나타냈다. 1971년부터 1975년까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에서 공부하였다. 대학교 졸업 이후 1974년 부터 1980년 까지 김수근의 '공간연구소' 설계실에서 일하면서 마산 양덕성당, 경동교회 등을 설계하였으며 1979년에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건축과 세상문제의 사이에서 방황하던 그는 잠시 2년 간의 유학길에 올라 오스트리아 빈 공과 대학교에서 수학하였고 1981년에서 1982년 사이에 '마차트 뫼비우스 및 파트너 (Marchart Moebius und Partner)'에서 일하였다. 그러면서 아돌프 로스(1870~1933)의 로스 하우스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고 다시 귀국하여 1982년 부터 1989년 까지 공간연구소 대표이사직을 맡는다. 1986년에는 김수근이 승효상과 장세양 두 제자에게 공간연구소를 맡긴다는 유언과 함께 30억의 빚을 남기고 타계한다. 그는 1989년에 공간연구소의 빚을 모두 청산하고 독립하여 건축사무소 이로재(履露齋)를 개설하였다. 그리고 1990년에는 민현식 등과 함께, 학연을 지양하고 자정 기능을 회복하는 한국 건축의 새로운 담론을 요구하는 젊은 건축가 14명의 모임인 '4.3그룹'을 결성하였다. 이 시기 그의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유홍준의 자택인 '수졸당'이 있는데 이것은 이후 그의 평생의 건축 철학이 되는 '빈자의 미학'을 구현한 첫 작품으로 꼽는다. 그는 20세기를 주도한 서구 문명은 다시 동양의 비움을 찾고 있는데, 우리는 역설적으로 그러지 못하다고 비판하면서, 빈자의 미학이란 "가난한 사람의 미학이 아니라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의 미학"이며 "악다구니하는 한갓 조형물과 건조물로 가득 차고 만 근대 한국이 옛 종묘와 같은 어떤 형태의 사유와 모임도 가능하게 하는 '비움의 아름다움'을 회복해야한다"고 말하였다.2009년에서 2010년 사이에는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설계하고 조성하였는데, 여기서도 화려한 묘역이 아닌, 추모글이 다 닳아 없어지고 기억만 남는 '비움의 설계'를 추구하였다. 해외에서는 베이징 장성호텔, 아부다비 문화지구 전시관, 쿠알라룸푸르 복합빌딩 등을 디자인했다. <출처 위키백과>

[경북 경산에 있는 작고 아담한 하양 무학로 교회 (승효상 건축가가 무료로 설계해서 지은 건물로 알려져 있습니다.이 절제되고 담백한 건축물이  심금을 울리는건 왜일까요? 화려한 외적 양식이 아닌 오로지 신에게 나아가고자 하는 믿음의 단순함, 순전함을 보여주는 건축물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밀양 명례성지 (1) 신석복 마르코 기념성당

[밀양 명례성지(2) , 승효상 건축가는 묵상이란 책에서 이 명례성지를 그자신 생애의 과업으로 알고 헌신해야 할 일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순교자 신석복을 기리는 곳으로 되도록 건조하고 다소 거칠게 전체의 풍경을 다듬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로서는 그저 정갈하고 세속적이지 않은 공간처럼 보입니다]


제가 승효상 건축가와 그의 건축물에서 받은 인상은 이분의 건축물은 '종교적 사유'를 품고 있다는것입니다. 

자신만의 철학과 색깔이 분명한 건축가..유행이나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진정한 건축이란 세계에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건축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축에는 문외한이지만, 책과 건축물을 통해 느낀바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다시 승효상님의 "묵상"이란 책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묵상이란 책은 승효상 건축가가 2014년에 그가 만든 강좌형식의 모임인 동숭학당에서 "스스로 추방당한 자들의 공간, 그 순례"라는 주제로 열흘간의 수도원 순례를 5년차인 2018년에 다녀온 여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동숭학당 :  1년단위의 강좌(건축, 미술, 문학, 영화, 음악, 공연, 사회, 역사, 과학 등)를  운영하며, 저자는 줄여서 동학이라고 하니 반동의 느낌이 풍긴다고도 하였습니다^^)


또한, 수도원 기행을 중심축으로 하면서도, 곳곳에 저자의 개인사와 건축에 대한 생각, 세계사 속 종교와 건축 이야기, 여행 도반인 일행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애정어린 기록과 일화들이 조화롭게 담겨있습니다.


동숭학당 일행이 방문한 수도원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이들과 함께 수도원 기행을 다녀온듯한 기분이 듭니다. 아울러, 빛과 그림자의 흑백으로만 표현된 수도원과 성당의 사진들을 보노라면  마음이 정화되고 숙연해지는 느낌마저 듭니다.


2. "묵상" _책 속 이야기

기행에 앞서 저자는 카잔차키스의 묘비에 적힌 글을 인용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카잔차키스 묘비에 적힌 그의 글)


그리고, 카잔차키스의 묘비에 적힌 글이 비수처럼 가슴을 후비고 들어와 그때까지 덕지덕지 붙어있던 찌꺼기를 도려낸 짜릿한 순간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카잔차키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사랑했던 2010년 작고하신 이윤기 작가님이 오버랩 되더군요. 이책에서 승효상 건축가와의 일화 또한 언급되어 한편으로 반가웠습니다. )


여행은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 힘을 얻고자 떠나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동숭학당 일행은 수도원 기행에 앞서, 아는만큼 보이고 준비한 만큼 얻고자 미리 배부한 자료집을 공부한 뒤 2018년 6월 드디어 이탈리아로 향합니다. 



이들이 방문한 곳은 수도원이 주축을 이루고, 우리가 익히 들어본적 있는 여러 역사적 건축물도 있습니다. 기억나는 몇몇 대표적인 장소들을 간략하게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티볼리의 빌라 아드리아나의 폐허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때 약 20년에 걸쳐 건설한 곳으로 하드리아누스 별장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저자의 말을 빌려 이야기하면, "이 세상 모든 폐허지의 종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합니다)


- 판테온

(판테온 역시 125년 하드리아누스 황제때 지어진 신전으로 2000년간 건재한 건축물입니다. 그 당시 콘크리트로 지어졌는데, 당시의 콘크리트기법은 로마인이 발명한 것으로 하이테크 중의 하이테크, 즉 혁신적 기술로 지은 건축물이라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돔 가운데 부분을 원형으로 뚫어 대기를 순환시켜 내부공기를 맑게하는 오쿨루스는 이 건축물을 지은 건축가가 공기 대류의 과학적 원리까지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

(로마 전체에 산재한 40개 가량의 카타콤베 중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곳. 이곳은 16명의 교황과 50명의 순교자 유해가 안치된 무덤입니다. 지하 20미터 가까이 들어가기도 하는 이곳은 그물 같은 미로로 구성되어 전체 길이가 22km가 넘는다고 합니다. 죽은자가 머무는 곳이 아니라 그들을 기억하는 우리의 기억이 머무는 곳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과 성당속의 포르치운쿨라(Porziuncola) 예배당

(프란체스코가 스스로 모든것을 버리고 철저한 청빈으로 사도적 삶을 살아가고자 '작은 형제들의 수도회'라는 가난한 공동체를 만듭니다. 이들이 버려진 성당을 고쳐서 그들의 수도원으로 삼았던 곳입니다.)


- 피렌체 근교의 갈루초 수도원

(봉쇄 수도원으로 20세의 젊은 르 코르뷔지에가 처음 방문하여 건축적 영감을 받은 곳으로 이 수도원 경험은 일생 동안 도시와 건축 작업을 하는데 중요한 텍스트로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산 조반니 바티스타 교회

(콘크리트와 거친 돌의 물성이 여과없이 나타난 이 교회는 저자가 김수근 선생의 문하에서 처음으로 주도하여 건축한 마산성당 설계시 늘 자신의 제도판위에 참고자료로 있던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 르 코르뷔지에의 마지막 은거지인 네 평짜리 작은 통나무집 카바농(Cabanon)

(말년의 르 코르뷔지에가 거처한 네평 남짓의 작고 아담한 통나무집.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건축물만 무려 17개인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중 가장 작은 공간이기도 합니다)


- 르 트로네 수도원

(프로방스의 깊은 산골에 있는 수도원으로 승효상 건축가가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 수도원이기도 합니다. 이미 건축으로 명성이 자자한 르 코르뷔지에에게 쿠튀리에 신부가 라 투레트 수도원을 짓기전에 먼저 이곳,  르 트로네 수도원을 방문하여 참조 설계하라고 했던 곳. 신부님의 말에 순종하여 르 트로네 수도원을 방문한 르 코르뷔지에는 벅찬감동을 받아 "진실의 건축(Architecture of Truth)"란 책을 쓰게 됩니다. "이 책속의 그림들은 진실에 대한 증언이다. 이 건물의 모든 디테일은 창조적 건축의 원칙을 표현한다...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인 석재..조잡한 이 콘크리트 시대에 , 이 엄청난 만남을 반기고 축복하며 인사하자.._진실의건축 중_")


- 아비뇽 교황청

(높이 50미터에 연면적만 4,500평인 거대한 성채.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7세가 로마를 침략하는 바람에 7명의 교황이 교체되는 1377년까지 교황은 아비뇽에 체제하게 됩니다. 교황이 떠난 후 폐허가 된 이곳은 19세기에 감옥으로 사용되고, 군 시설로도 쓰이는 과정을 겪었다고 합니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종교적 신심이나 영성이 발현되지는 않는 곳이라고 합니다)


- 영화 <위대한 침묵>의 현장인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


(침묵속에 수도에 정진하고자 브루노 수도사가 1084년 8명의 동료 수사와 함께 프랑스 알프스의 깊은 산중에 개척한 수도원. 수도원 2km권 안에는 일반인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아 동숭학당 일행은 아쉽게도 수도원 밖의 박물관만방문하게 됩니다.)


- 라 투레트 수도원

(르 코르뷔지에가 쿠튀리에 신부의 조언을 받고 12세기에 지은 르 트로네 수도원을 참조하여 만든 수도원. 르 코르뷔지에가 롱샹 성당의 성취를 버리고 오직 르 트로네 수도원에 흐르는 정신을 실현시키고자 고전에 대한 경의로 지은 수도원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 클뤼니 수도원 폐허

(수도원 개혁운동의 결과로 건립되었지만, 다시 수도원 개혁으로 인해 폐허가 된 수도원. 로마의 바티칸 대성당이 세워지는 17세기 전까지는 이 수도원 성당이 유럽 최대의 성당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폐허로만 남겨져있습니다.이곳에서 저자는 존 B.잭슨의 책 <폐허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우리가 폐허에 서면 자못 비장해지는 이유는 우리의 종말을 보는 듯함이며, 그럼으로써 우리가 건축의 본질과 우리 삶을 다시금 성찰하는 계기를 갖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롱샹성당

(롱샹 성당의 정식명칭은 '롱샹 언덕위의 성모'. 쿠튀리에 신부의 설득으로 지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로 기존  자신이 쌓아올린 이성주의적 모더니즘의 형식을 탈피하여 지은 성당)


- 파리의 추방당한 순교자 기념관

( 1962년 조르주 앙리 팽귀송이 설계한 기념관으로 독일의 수용소로 강제 추방을 당해 학살된 20만명을 위한 홀로코스트 기념관이며 공동묘지입니다. 유명한 노트르담 대성당 뒷편에 자리잡은 이곳은 낮은 담장으로 되어 있어 건물이나 기념관으로는 인식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곳은 파리시내의 데모와 축제로 인해 방문하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일행이 방문하지는 못한 곳이지만, 저자가 수도원 기행의 마무리로서 가장 최적의 장소라 여겼던 곳입니다)


3. 르 코르뷔지에

건축은 빛 속에 빚어진 매스의 장엄한 유희
(르 코르뷔지에가 그리스 아크로폴리스에 올라 파르테논 신전을 스케치하면 한 말)
나는 대학 시절 유독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에 매료되었다. 제대로 된 정보를 구하기 어려운 1970년대였는데 그에 관한 자료가 내손에 건네질때마다 마음이 두근댔고 그의 도면을 대할 때마다 그 위에 몇번이고 트레이싱지를 얹어 베끼고 베꼈다. 라 투레트 수도원..아마도 스무번은 베꼈을 것이다. 김수근 선생의 문하에 들어서기 전까지 나는 그의 맹신자였다. -묵상 중-


책에서는 르 코르뷔지에의 대표적 건축물인 롱샹성당과 라 투레트 수도원이 나옵니다. 아무래도 저를 비롯한 일반적인 사람들은 롱샹성당의 외관에 더 끌리나 봅니다. 하지만, 저자는 르 코르뷔지에의 라 투레트 수도원을 수도 없이 베끼고 외웠다고 합니다. 아마도 승효상 건축가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건축물이 라 투레트 수도원이 아닌가 헤아려봅니다.


롱샹성당(곡선과 직선의 절묘한 조화, 외벽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어둠을 공간에 활용한 르 코르뷔지에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건축물같습니다)
라 투레트 수도원
르 코르뷔지에의 마지막 거처인 작은 통나무집 카바농
일반적으로 모두들 형태적 요소가 분명한 롱샹을 더 감동적인 건축으로 여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모두가 받은 감동은 사실 압도적 공간의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공간은 설명하기 어려워, 우리는 늘 그 울림을 시각으로 환산해서 말한다. 더구나 롱샹 성당의 형태 요소는 기발하고 특별하다. 원시적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그래서 더러는 수녀의 두건, 혹은 기도하는 손, 심지어는 기선의 형태라고 하며 롱샹성당의 감동을 구체화 하려 수없이 시도했다. - 묵상 중-
그러나 공간이 건축의 본질이며 건축은 우리 삶을 구축하고 지속시키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라는 것을 아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코르뷔지에가 이제 다시 찾은 원초적 감성을 철저히 죽이고, 고전에 굴복하여 다시 본질에 돌아가 라 투레트 수도원을 지은 것이라면 모든 형태 요소를 넘는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 묵상 중-


4. 승효상, 그에게 영감을 준 책들, 그의 말


묵상에서는 승효상 건축가에게 영감을 준 여러 책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묵상에서 제게 던져준 그의 화두같은 말의 목록들입니다. 


1) 존 B.잭슨의 "폐허의 필요성"

폐허는 우리가 다시 돌아가야 하는 근원을 제공하며, 우리로 하여금 무위의 상태로 들어가 그 일부로 느끼게 한다.

2)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절박함 끝에는 늘 침묵이 있기 마련이며 그 침묵을 견디면 진정한 언어가 온다.

3) 에드워드 사이드 "지식인의 표상(Representation of the Intellectual)"

지식인은..단도직입적이고 직접적으로 말한다. 그러한 말들로 인해 높은 지위에 있는 친구들을 사귈수 없고, 공적인 명예를 얻지도 못하며, 이러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탈출할 수도 없다. 이것은 고독한 상황이다.

 4) 승효상 "묵상"

1. 자기집이 아니라 다른 이의 집을 지어주는 일을 직능으로 가지는 건축가는 자신을 타자화시키고 객관화 시켜야 한다.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의 새로운 땅에 내가 가지고 있는 타성과 관습의 도구를 다시 꺼내어 헌 집을 그리는것은 건축이 아니라 관성적 제품을 만드는 일이며, 새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의 소망을 배반하는 일이다. 새로움에 반응하고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하는 건축가가 경계 안에 머문다는 것은 그 소임을 파기하는 일과 다르지 않으니 외로움과 두려움은 건축가에게 어쩔 수 없는 친구일수 밖에 없다. 
2. 긴 여행의 시간 가운데 성당을 들르는 일은 휴지부를 얻는것과 같다. 잠시라도 회중석의 장의자에 기대어 묵상에 잠기면 여행중에 쌓인 피로가 허물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마음도 다시 다지게 된다.
3. 나는 번잡한 곳만이 아니라 경건한 영역이나 시설이 있어야 도시의 지속이 가능하다고 믿는것이다.
4. 오래된 대부분의 도시는 무덤을 가까이 두고 늘 죽음을 보며 일상을 살기에, 그들은 지금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잘 안다..묘역은 사실 죽은자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5. 코르뷔지에도 그랬을게다. 그의 스케치를 보면 알 수 있다. 그의 스케치 대부분에서 많은 선이 중첩되어 나타나며, 단선이라 해봐야 확신으로 그어진게 아니라 힘이 없어 가다가 끊어지며 주저한다. 차있는 것보다 비운게 더 많은 자코메티의 선도 한없이 중첩되어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이 두사람의 작품세계를 비교하여 쓴 책 <공허속에서의 대화, Dialogue in the Void>를 보면 이 두 세기적 작가에게 작품의 원동력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며 그 불안이 그들의 작업에 내내 내재한다고 밝힌다. 나는 오래전 이 책을 읽고 얼마나 위안을 받았는지 모른다.
6. 내가 설계한 집에서 살게 되는 이들이 혹시 설계가 잘못되어 잘못된 삶을 살면 어떻게 하나 늘 초조하고 불안하여 그렸다가 지우고, 다시 그리고, 또 지우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그래서 결정장애, 실패에 대한 강박은 내게 붙은 형벌적 훈장이며 이는 건축을 하는 이상 떼어 놓을 수 없다.
7. 굳이 종교가 아니더라도 영적 충만을 위해 일상의 삶을 도도히 버린 이들의 흔적을 좇는 일은 자기 내면을 들추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8. 각자의 진리, 나로서는 건축을 수단으로 진리를 찾으려 하는 자인지도 모른다.


5. 글을 마치며..

저자는 묵상이란 책이 수도원 순례 안내서가 될수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굳이 그렇게 먼길 떠나지 않더라도 제자리에서라도 호흡을 가다듬고 잠시 비켜설수 있게 하는 작은 동기가 된다면 만족한다고 하였는데, 저야말로 이 묵상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고 마음의 때가 씻겨나가는 기분이었습니다.


또한, 건축에는 무지한 제가 조금이나마 수도원이라는 건축의 세계에 한발짝 들어선 느낌입니다. 


승효상 건축가의 책은 빈자의 미학 그리고 이 묵상이란 책 두권 뿐이지만, 승효상님의 건축에 대한 세계관과 철학을 엿볼수 있었고, 단순히 건축이란것이 그저 건물을 짓는것이 아닌, 공간이 주는 의미,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지 않고서는 올바른 건축을 할수 없는거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건축물 속에는 건축가의 오랜 고민과 철학과 땀이  담겨져있는 건축물도 존재하고 있구나 하고 다시금 눈을 들어 공간을 바라보게 됩니다.  (사실 아파트만 보이는 세상속에서는 그런 생각이 들기 쉽지 않습니다.)


수도원순례(기행)를 통해 자신의 인간적 약함과 불완전함을 고백하는 신앙고백적인 글을 보며 한편으로는 저의 신앙도 점검하게 되었습니다. 건축이라는 세계에서 일가를 이룬 이분도 인간적 고뇌를 안고 살아가고 계시구나 하고 존재론적 동질감도 느낄수 있었습니다.


책의 두께도 두껍거니와(다소 두껍습니다^^), 그 안의 논의 또한 결코 가볍지 않기에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책에서 나오는 건축물을 다시금 찾아보게 되고, 세계사(종교사)로까지 공부가 확장되는 시간이 됨과 동시에 묵상이란 주제속에서 책속의 일행들과 함께 순례의 여정을 걸으며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어떠해야할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금 사유케하는 귀한 성찰의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승효상님이 자신이 건축가로서 늘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고민한것처럼, 직업인으로서의 가져야 할  가치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는 시간도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책을 읽으면서 제 메모노트에 받아적은 글귀가 참 많습니다.(노트의 장수를 세어보니 7장을 써내려갔네요)


그만큼 승효상 건축가의 글의 힘이 대단한것이겠지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쓴 기행문인 이 책의 마지막 장의 질문은 저에게도 깊이 각인되어 나직이 묻습니다.


문득 질문 하나가 다시 가슴을 세차게 후비고 들어왔다. 빌라도의 오래된 질문이었다 진리가 무엇이냐?  -묵상 중-


관성대로 살아가지 않고, 내내 삶의 화두로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질문이 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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