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아빠와 사춘기 아들
고성 속에 숨어 있는 사랑,
톰과 제리 부자의 어설픈 화해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던 새해의 주말.
막내아들 방을 새롭게 꾸며주려고
벽지를 골라놓고, 장판까지 손수 준비했죠.
어찌나 마음이 들뜨던지, 설렘을 안고
아들 방의 짐을 하나하나 거실로 옮겼습니다.
그 과정에서 왠지 모르게 뿌듯함도 느껴졌습니다.
그때 문득, 방 한편에 조용히 놓여 있던
아들의 일렉기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검은색 몸체에 은빛 장식이 반짝이는
모습이 꽤 멋지다 생각했죠.
‘이걸로 무슨 곡을 치나?’
싶기도 하고, 괜히 호기심이 동해
살짝 들어 보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
가족 안에 작은 ‘전쟁’이
시작될 줄은 미처 몰랐죠.
기타를 살짝 들어 올렸다
다시 내려놓은 것뿐이었는데,
어디선가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 피크!” 하더니,
아들이 PC를 하다 말고
“아빠가 만져서 내가 길들인
피크가 없어졌잖아요!”
라며 화를 냅니다.
너무도 황당하고 당혹스러워
저 역시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그 순간, 서운함과 동시에
사춘기 아들의 퉁명스러운 반응에
속이 뒤집히는 듯한 분노가 치밀었죠.
요즘 부쩍 ‘갱년기’라는 말이
마음 한편을 차지하더니,
가슴 뛰는 소리도 커졌습니다.
“너, 왜 그렇게 말하니?”
제 목소리도 어느새 커져 버렸습니다.
아들도 지지 않고 “아빠가 건드렸잖아요!”
라며 짜증을 냅니다.
피크 몇 개면 금세 살 텐데,
대체 왜 이렇게 서로 날을
세우는 걸까요? 억울한 마음에
일단 상황을 수습하려고
“알았어, 새 피크 사라,
내가 용돈 줄게”하고
폰뱅킹으로 송금을 했죠.
아들은 용돈에도 관심 없는 듯
여전히 불만 섞인 표정을 짓습니다.
그 모습이 오히려 갱년기 아빠의 감정에
더욱 불을 붙였습니다.
결국 고성이 오가고,
한동안 집안 분위기가 냉랭해졌습니다.
다행히 아내가 중간에 나서서 일단 상황을 정리해
주었고, 더 큰 불씨로 번지지는 않았습니다.
침묵이 흐르는 속에서도 저는
아들 방 장판을 마저 교체하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오후가 되니,
이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접 화해의 말을 건네기엔 쑥스럽고,
그래서 가족들이 좋아하는
햄버거를 사 들고 왔습니다.
저녁 간식도 이것저것 챙겨주었죠.
말없이 건넨 이 한 끼가
저만의 서툰 화해의 방식이었습니다.
아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도
어색해 일부러 무심한 척했지만,
실은 아들 반응을 자꾸 살폈던 것 같습니다.
조용한 저녁,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중학생에 불과한 아들에게,
내가 그렇게까지 이기고
싶었던 이유가 뭘까?’
요즘 아이들 말투가
너무 거칠고 버릇없어 보여서,
아들만은 바른 모습이었으면 하는 바람에
더 민감하게 굴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사랑을 주고 싶고,
옳은 길을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던 거죠.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언성을 높이고 싸웠지만,
결국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만은
변함없다는 사실을 저 자신도 잘 압니다.
가끔은 놀라울 만큼 얄미워
한 대 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때도 있지만,
여전히 이 아이가 제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임은 틀림없습니다.
만화 속 톰과 제리가
늘 티격태격하면서도 결국 서로를 챙기듯,
우리 아들도 툭하면 저에게 안기거나
스스럼없이 스킨십을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피크 전쟁’이라는 해프닝조차
갱년기를 겪는 아빠와 사춘기 아들이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피크 하나에 담긴 사랑과 분노,
그리고 이 두 마음 사이의 간극까지도,
모두 우리 가족만의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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