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석에 섰지만, 예상치 못한 경기 중단
캐시 셀리그만 저널리스트의
한마디가 문득 떠오른다.
“타석에 들어서지 않고는 홈런을 칠 수 없고,
낚싯줄을 던지지 않으면 고기를 낚지 못하며,
시도하지 않으면 결코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이 말은 오래도록 내 삶에
밑줄처럼 깔려 있었다.
무엇이든 스스로 움직이고
부딪혀야 무언가 얻을 수 있다는 믿음,
언제나 가슴에 품고 살아온 신념이었다.
아마 그래서였을까.
수요일 퇴근하면서
시간을 쪼개 병원에 입원했다.
혹여나 있을 병변을
깨끗이 없애고 싶어서,
단단히 마음을 다잡고
타석에 오르는 심정이었다.
3일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낯선 병실 침대에 몸을 눕히고,
CT며 갖가지 검사를 견디며 기다렸다.
분명 ‘무언가를 해낼’ 준비를 하고 왔고,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기대했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수술대에 오르기는커녕,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병원을 나서야 했다.
의사가 내놓은 결과는 뜻밖이었다.
용종인 줄 알았던 부위는
‘점막하종양’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고,
크기도 작고 위치 역시 애매해서,
괜히 손댔다간 대장에 천공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집도의 선생님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익숙한 비유를 꺼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가는 편이
더 현명한 선택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몹시 아쉬웠다.
그렇게 바라던 ‘깨끗한 해결’은
이뤄지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다행스럽게 크기나
모양상 걱정할만한 소견은 아니라 했으니,
안심해도 되는 걸까?
솔직히, 그 순간 들었던 감정은
“화장실에 갔다가 뭔가 덜 끝난 느낌”이랄까.
시도는 했지만 개운치 않고, 허전하고,
어딘가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도,
내 손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속상했다.
혹시 나는, 시도를 했다는 그 사실에만
집착하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4인실 병동에서 함께 지냈던 분들이 떠올랐다.
이미 병과 이미 오래 싸워온 두 분,
그리고 폐렴으로 힘겹게 버티던 할아버지.
치매가 있는 할아버지는 밤새 소리를 지르고
다른 환자들에게 피해를 주었고
보호자는 다른 환자들에게 피해를 줄까
발을 동동 굴렀고, 결국 호전이 더딘데도
서둘러 퇴원을 택했다.
그들은 각자의 전장 한가운데에서
무엇을 얻고, 또 잃고 있을까.
내 ‘불발된 수술’쯤이 아쉬울 만한
일인지 돌아보게 됐다.
내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 시간 속에서,
진짜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 걸까
머릿속에 물음표가 천천히 번졌다.
아쉬움, 실망, 허전함…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지만,
한 걸음 거리 두고 보면 이조차
내 삶의 한 구석을 채우는 한 조각 같다.
타석에 들어서긴 했지만 홈런은커녕,
아예 경기가 중단된 듯한 이 상황에서,
많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결국
‘보이지 않는 무엇’을 얻고 나온 셈 아닐까.
눈에 보이는 성공만이 다가 아닌 법.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는
인생의 변주곡 속에서,
우리는 예상 못한 곳에서 더 깊은 성찰과
타인에 대한 공감을 배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그래서 더더욱 많은 것을
돌이켜보게 했던 이번 경험
그 덕분에 내 삶의 속도는 잠깐 멈추었고,
주변 사람들의 아픔과 마음에 더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이 사흘은,
내게 더 중요하고, 오래 남을 선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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