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88
매거진 <요리하는 아재 박주부>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마주치는 것들이 있다.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골뱅이 통조림 하나. 한두 장 남은 깻잎. 구석에 밀려난 구운 김. 따로따로 보면 딱히 요리가 될 것 같지 않은 것들인데, 어느 날 문득 이 셋이 같은 그릇 안에 있으면 어떨까 싶었다. 거기에 들기름 한 숟갈만 더하면?
그게 이 요리의 시작이었다.
방송인 최화정 씨가 유튜브에서 선보여 화제가 됐다는 말을 나중에야 알았다. 요리를 먼저 만들고 나서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괜히 반가웠다. 역시 맛있는 건 누가 만들어도 통하는구나 싶어서.
파스타 면을 끓는 소금물에 넣고 삶는다. 이탈리아 파스타를 만들 때처럼, 하지만 올리브오일 대신 들기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 다르다. 면이 익는 동안 깻잎을 채 썰고, 김을 적당히 잘라두고, 골뱅이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초고추장과 식초로 살짝 버무린다. 이 단계가 중요하다. 골뱅이가 양념을 살짝 머금어야 나중에 면과 어우러질 때 맛이 훨씬 깊어진다.
그릇에 들기름 세 큰 술을 먼저 붓는다. 액젓 약간, 알룰로스 약간. 젓가락으로 휘 섞으면 들기름 특유의 고소하고 묵직한 향이 확 올라온다. 이 향만으로도 이미 입안에 침이 고인다. 체에 밭쳐 물기를 뺀 따끈한 면을 넣고 골고루 버무린다. 들기름이 면 한 올 한 올에 스며드는 그 짧은 순간, 요리가 완성되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접시에 면을 담고 골뱅이, 채 썬 깻잎, 자른 김을 올린다. 고춧가루를 살짝 뿌리면 마무리다. 화려하지 않은데 어쩐지 근사해 보인다. 초록과 검정, 윤기 나는 면발. 젓가락을 들기 전에 잠깐 들여다보게 되는 비주얼이다.
한 입 먹으면, 이게 비빔국수인지 파스타인지 잠깐 헷갈린다. 들기름의 고소함과 깻잎의 향긋함이 먼저 오고, 그 뒤를 골뱅이의 쫄깃한 식감이 따라온다. 씹을수록 재미있는 골뱅이, 김의 바삭함, 깻잎의 향.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데도 따로 놀지 않는다. 이게 이 요리의 가장 큰 매력이다. 어디서 맛본 것 같으면서도 어디서도 먹어본 적 없는 맛.
솔직히 말하면, 이 요리는 레시피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간단하다. 면 삶고, 들기름에 버무리고, 재료 올리면 끝이다. 조리 도구도 냄비 하나, 그릇 하나면 충분하다. 장을 새로 볼 필요도 없다. 냉장고에 골뱅이 통조림 하나만 있으면 오늘 저녁 메뉴가 해결된다.
처음엔 "이게 될까?" 싶을 수 있다. 들기름에 파스타 면이라니, 골뱅이가 파스타 위에 올라가다니 싶은 마음. 하지만 한 번만 만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냉장고 문을 열고 망설이던 그 순간이, 오늘 저녁 가장 맛있는 한 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재료>
들기름 골뱅이 파스타 레시피 (1인분) 파스타 면 90g, 깻잎 10장, 골뱅이 통조림 1개, 들기름 3큰술, 액젓·알룰로스·고춧가루 약간, 구운 김 1장
① 깻잎 채 썰고, 김 적당히 자르고, 골뱅이 먹기 좋게 썰어 초고추장·식초로 버무리기
② 끓는 소금물에 면 삶아 체에 밭쳐 물기 제거
③ 그릇에 들기름·액젓·알룰로스 섞은 뒤 면 넣고 버무리기
④ 접시에 면 담고 골뱅이·김·깻잎 올린 뒤 고춧가루 마무리
— 요리하는 아재 박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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