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슬영 Dec 05. 2022

나는 어떻게 작가가 되었을까1

- MBC창작동화대상을 받기까지

중딩 시절, 일기장에 소설이랍시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바야흐로 문학소녀가 되는 듯했으나 대하소설이라도 쓸 것 같던 열정은 프롤로그와 함께 사그라졌다. 고등학교 때 학교에 문예부가 있었다. 시를 써서 합격하면 부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친구가 재미 삼아해보자고 했다. 그 자리에서 두 편을 써서 제출했다. 떨어졌다. 슬프지 않았다. 자존심은 상했다. 왜 자존심이 상했는지 모르겠다. 시를 좋아한 것도 아니고 시를 자주 쓴 것도 아니면서.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으면서 말이다. 돌이켜보니, 글은 '재미 삼아'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나의 청소년기가 지났다. 


어쩌다 보니 국문학도가 되었다. 국문학을 전공하면 글 많이 쓸 것 같지만, 안 쓴다. 책을 낸 뒤에 국문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아, 어쩐지~.'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굳이 말한다. 국문학과 문예창작은 엄연히 다른 분야다. 물론 친구들 중에 시 깨나 쓰는 아이, 소설가가 될 것 같은 아이도 있었다.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읽는 것만 좋아했다. 그 시절 나는, 내가 글을 쓰기엔 뭔가 한참이나 모자라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해보지 않았으면서 말이다. 어쩌면 문예부 낙방이 내게 어떤 트라우마를 남겼을지도 모르겠다. 난 글을 잘 쓰는 게 아니야, 하고. 게다가 앞서 쓴 글 <나는 왜 작가가 되고 싶었을까>에서 말한 것처럼 1학년 때 시작한 연극부 활동이 졸업 후까지 이어졌기에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 못했다. 물론 대학시절의 반은 또 다른 동아리에 빠져 지냈고, 졸업하고 취직이란 것도 했지만 결국은 대학로에서 한세월을 보냈다.


결혼을 했다. 연극과 상관없는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나름 의미 있고 꽤 나와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그만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책'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지도사'라는 자격증을 준비하며 동화를 많이 읽게 되었다. 오잉? 우리나라 동화책 재밌네?! 신선한 충격이었다. 동화가 나와 아주 잘 맞는 분야로 느껴졌다. 동화가 쓰고 싶어졌다. 그런데 동화 작법에 대해서 너무 무지했다. 배울 곳을 찾아야 했다. 인터넷 서치를 통해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하는 강의를 몇 가지를 찾아내었다. 그중 한 곳에 무작정 등록했다. 3개월짜리 코스였던 것 같은데... 사는 곳에서 꽤 먼 곳까지 오가야 하는, 발품이 많이 드는 배움이었다. 그래도 마냥 신났다. 강의를 맡아주신 임OO 작가님께서 수업 말미에 동화를 좀 더 제대로 배울만 한 몇 군데를 소개해주셨다. 그중 나의 마음을 끄는 곳을 택했다. <오세암>을 쓰신 (故) 정채봉 선생님께서 만든 '동화세상'이라는 단체였고, (내가 배울 당시) 김병규 선생님께서 동화세상 부설 동화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계셨다. 다음 카페를 찾아들어가 쓰윽 살폈다. 엄청나게 많은 작가님들이 그곳에서 활동하고 계셨다. 지체 없이 등록을 마치고 수업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내일이 기다려지는 하루하루가 흘렀다.


동화학교의 커리큘럼은 1년 과정이었다. 학교답게 중간에 여름방학도 있다. 공부도 하고 습작도 했으니 도전도 해봐야지! 무작정 신춘문예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떨어졌다. 슬펐다. 자존심은 안 상했다. 그저 나는 동화를 좋아하는데 동화는 날 좋아해 주지 않는 것 같아서 기운이 빠졌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뭘 얼마나 썼다고 덜컥 신춘에 되길 바랐을까. 이런 데서 급한 성격이 드러난다. 


동화학교 졸업 후 동화세상 선후배들이 모여 공부하는 사랑방에 들어갔다. 쓰고, 합평하고, 쓰고, 합평하는 시간이 흘렀다. 신춘이 아니어도 신인이 등단할 수 있는 공모전은 많았다. 도전하고 떨어지고, 도전하고 떨어지는 일의 연속이었다. 


나와 함께 공부했던 동기가, 나와 사랑방에서 함께 합평했던 동료가 신춘에 당선하는 걸 보았다. 그건 매우 신기하고 이상한 경험이었다. 그들의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 이게 진짜 되는구나 싶어서 너무나 기뻤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지만, 마음 한쪽엔 패배감과 상대적 박탈감이 자리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성실함은 그다지 큰 무기가 되어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저 사람은 되었는데, 나는 왜 안 되었을까. 그 생각에 얼마간 마음이 머물렀다. 일을 하며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이 짜증스러웠고, 아직 어린 아들을 돌보며 글을 써야 하는 게 서글펐다. 시간을 쪼개고, 내 몸을 갈아 넣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까지 끌고 갔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약간 미쳐 있었던 것 같다. 뚜렷한 목표의식, 해내겠다는 의지, 그것이 나를 살게 했다. 


그러나 여전히 탈락의 연속이었다. 최종심까지 가보기도 하고,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기도 하고, 무엇이 되었든 한숨만 나오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동화세상 선배님들께서 속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학교 졸업하고 3년 이내 등단, 그 후 3년 이내에 출간을 하지 못하면 책을 내는데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 것이라는 거였다. 마음이 급해졌다. 이미 졸업 후 3년을 목전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3년이 되기 전 마지막 12월, 이번이 끝이다 생각하고 몇 군데 원고를 보냈다. 이쯤 해도 안 되는 거면 글을 그만 쓰라는 신호로 받아들이자 마음먹었다.(김병규 사부님께서는 글을 쓰기 시작했으면 10년은 해봐야 한다고 하셨는데... 역시 나는 성질이 몹시 급했다.) 그해에는 신춘과 MBC창작동화대상 공모전 일정이 겹쳐 있었다. 추리고 추린 작품들을 몇 군데 나누어 보냈다. 어느 신문사에 어떤 작품을 보낼지, MBC에는 어떤 작품을 보낼지 고심 끝에 결정을 마치고, 우체국에 가서 원고를 부치고 돌아오던 길,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다.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사투처럼 도전을 마친 나 자신이 대견했고, 안쓰러웠다. 그리고 간절했다. 제발 내게 글쓰기를 그만두라는 신호가 울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얼마 뒤, 꿈을 꾸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거실 어항에서 휘황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뭐지? 다가가서 어항을 들여다보았다. 엄청 큰 물고기들이 그 안에 바글바글 들어 있었는데, 어떤 커다란 물고기 하나가 막 몸부림을 치더니 위로 휙 솟아올랐다가 거실 바닥으로 툭 떨어져 버린 것이다. 깜짝 놀라 얼른 그 고기를 잡아 다시 어항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며칠 뒤 또 꿈을 꾸었다. 내가 어떤 낯선 공간에 갔는데 저 앞으로 무대가 보였고, 그 무대에 핀 조명 하나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조명 안에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우와, 여기는 이런 것도 주네?'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른 상황은 없었다. 가끔 예지몽을 꾸는 나는 '이번에 뭔가 좋은 소식이 오려나?' 생각했지만, 곧 잊었다. 일상은 바빴고, 이미 신춘은 미끄러진 뒤였고, 일터를 새로 옮긴 터라 교육까지 받아야 해서 정신이 없었던 거다.


꿈을 꾸고 2-3주쯤 뒤 어느 날, 교육장으로 출근하는 차 안에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평소였으면 안 받았을 텐데, 이상하게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갓길에 차를 세웠다. 

"안녕하세요. OOO 선생님 맞으신가요? 네, 저는 금성문화재단 OOO입니다. MBC창작동화대상에 선생님이 쓰신 '사냥꾼 두실'이 당선...."

상대편 말을 듣고 있는데 머릿속이 몽롱해졌다. 몸이 붕 뜨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 들리는데 이게 무슨 말인지, 나한테 하는 말이 맞는지, 내가 제대로 듣고 있는 게 맞는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정신없이 통화를 마치고 멍하게 있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그제야 실감이 난 것이다. 남편에게 톡을 남기고, 사랑방 담임을 맡고 계셨던 최OO 선생님과 김병규 사부님께 전화를 드렸다. 몸이 벌벌 떨리고 울음이 삐죽삐죽 올라왔다. 다시 차를 몰았다. 그날 하루는 교육을 어떻게 받았는지 모르겠다. 여기저기 단톡방에서 쏘아주는 축포에 감사 인사를 올리고, 남편과 통화를 하고, 가족과 통화를 하고, 아드레날린이 뿜뿜 솟아나는 하루가 지났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순간, 내게 울린 전화벨은 '계속 글 쓰세요'하고 쳐주는 박수였다. 힘든 일상을 다독여주는 응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곧 희망고문이 되었다. 공모전 당선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공모전 관련 팁을 잠깐 드리자면, '엽서시문학공모'나 다음 카페 '신춘문예공모나라' 같은 곳을 찾아보면 분야별로 신춘 외 공모전 소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끔 문예지에서 신인상 내지는 신인추천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원고를 공모하는 경우가 있는데, 수상자에게 주는 상금도 없고 어떤 명목이든 돈을 요구한다면 바로 거르시기 바랍니다. 또 공모전 주체 측에서 수상작의 저작권을 가져가는 경우가 있는데(공모 내용에 명시되어 있음), 이것도 본인의 목표나 목적과 잘 부합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고 응모하시길 권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왜 작가가 되고 싶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