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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슬영 Nov 05. 2022

너와 나의 거리 빵 미터 - 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현구는 때때로 배에 주사를 맞아야 한다. 소아 당뇨는 관리만 잘해 주면 아무렇지도 않은 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 ‘관리’가 보통 일이 아니다. 규칙적으로 혈당 체크를 해야 하고 필요할 때마다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우리가 다니는 학교는 너무 자그마해서 보건실도 없고 보건 선생님도 없다. 그래서 때가 되면 현구가 직접 주사를 놓아야 한다. 현구는 교실에서 주사기를 꺼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현구와 나 말고 1학년 동생 한 명, 3학년 동생 한 명이 같이 수업을 듣는데 그 아이들이 보는 게 싫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화장실로 가 현구가 직접 주사를 놓고 내가 도와줬다. 내가 도와준다는 건, 그냥 옆에 있어 주는 거다. 화장실 밖에 서서 누가 오는 건 아닌지 망도 봐주고, 가끔은 노래도 불러 줬다. 

  두 달 전쯤 어느 날이었다. 좁은 화장실로 들어가는 현구를 보니 마음이 안 좋았다. 비가 올 것 같은 날이라 그런지 화장실 냄새가 유독 심했다. 나는 다짜고짜 현구를 화장실에서 불러내 뒷산 너럭바위로 올랐다. 그날 처음 봤다. 현구가 주사 놓는 모습을. 

  “아프나?”

  “처음에만 따꼼한다. 그냥 기분이 좀 안 좋아져서 그러지.” 

  “왜?”

  “왜? 당연히…… 왜지?”

  현구는 자기 머리를 긁적이다 말고 피식 웃었다. 그다음엔 나도 입을 다물었다. 뭘 더 묻는 게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오늘이 마지막일 거다. 현구가 떠나면 이렇게 너럭바위에 올라 바다를 보며 주사를 맞는 일도 없겠지. 

  현구가 익숙하게 주사기를 꺼내 배에 주사를 놓았다. 난 일부러 바다 먼 곳을 바라보았다.

  “끝!”

  현구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뒷정리를 하는 현구를 보니 속이 상했다.

  “자, 보물. 이별 선물.”

  토우를 현구 쪽으로 내밀었다.

  “에이, 뭐꼬…….”

  현구는 입을 삐죽이면서도 토우를 꼭 움켜쥐었다. 그런데 현구가 토우처럼 둥그레진 눈으로 내게 물었다.

  “이거 와 뜨듯하노?”

  “뭐?”

  “이거 봐라, 뜨듯하다!”

  “내가 잡아서…… 그카겠지.”

  나는 현구가 내민 토우로 손을 뻗었다. 현구 손과 내 손이 모두 토우에 닿는 순간 찌르르한 기운이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흘렀다. 그리고 머릿속에 어떤 얼굴이 휙 스쳤다. 얼핏 토우와 비슷한 얼굴 같았다. 목소리도 들렸다.      

 “무엇을 원하니?”     

  흠칫 놀라 손을 떼었다. 탁! 토우가 너럭바위로 떨어졌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두 눈을 껌벅이며 너럭바위로 떨어진 토우를 내려다봤다.

  “치국아, 니 있잖아. 혹시 방금, 무슨 소리 몬 들었나? 무엇을 원하니이이이.”

  현구 말에 온몸으로 소름이 쫘르륵 돋았다. 

  번쩍! 쿠궁 쿵!

  갑자기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리더니 쏴아아,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토우를 집어 들었다. 언제 그랬냐 싶게 차디찼다. 깨지거나 금이 갔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토우는 멀쩡했다. 

  “빵, 내려가자.”

  나는 얼른 앞장서 뒷산을 내려왔다. 현구가 뭐라 뭐라 꿍얼거리는 것 같았지만 빗소리에 섞여 잘 들리지 않았다. 갈림길이 나왔다.

  “잘 가래이!”

  현구한테 손을 흔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서 누나한테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이건 분명 보통 토우가 아니다!     


  헐레벌떡 마루로 올라 입고 있던 옷을 싹 벗어 버렸다. 방 안쪽, 주방으로 통하는 문손잡이에 자그마한 수건이 걸린 게 보였다. 겅중겅중 걸어 수건을 낚아챘다. 쓱쓱 머리와 얼굴 쪽을 대충 닦아 내고는 얼른 토우를 닦았다. 빗물에 씻겨 그런지 긁힌 자국까지도 멋스럽게 보였다.

  “전화! 어?”

  전화기가 보이지 않았다. 텔레비전 앞, 무선전화기 충전기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 할머니이이이.”

  할머니가 또 어디다 놓고 깜박한 게 틀림없다. 지난번엔 미숫가루 마시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그 안에서 발견한 적도 있으니까. 서둘러 속옷만 갈아입고 여기저기 집 안을 돌아다니며 전화기를 찾았다. 각종 물건을 쟁여 두는 창고 방,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안방, 그 옆 작은 주방 겸 거실까지. 물론 냉장고도. 없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얼른 새 옷을 꺼내 입고, 되는 대로 아무거나 우산을 집어 들고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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