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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타명리 Jun 08. 2024

좋은 인간 나쁜인간은 없다

명리학으로 분석한 인간관계



인간관계에 대한 수많은 서적들 대부분은“좋은 인간”과 “나쁜 인간”을 분류한다.통상적으로 좋은 인간의 기준은 사회적 통념과 규율에 어긋나지 않으며, 인간과 인간사이의 건강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 담백한 유형이며,보태어 훌륭한 인덕과 타인과 물질과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인간유형이 이에 속한다.반면 나쁜 인간의 유형은 사회적 통념과 규율에 반하며, 인간관계의 건강한 간격유지를 하지 못하여, 타인의 영역을 무자비하게 침범하는 경우이다. 물론 타인에게 고의적인 악의성을 품고 해를 끼치는 경우, 그 해악의 무게 만큼 그 사람을 판단하는 판단기준은 악에 가까워진다.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각기 다른 인격과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인간을 분류하는 수많은 서적과 이론들은 다양한 유형으로 그들을 분류하며 경고한다.



“000한 사람과 만나지 마라”라는 류의 경고는,그러한 분류에 속하는 인물을 식별하는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그러한 부정적 유형에 속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명리학을 바탕으로 바라보는 인간은 각기 다른 명과 특성을 지닌다.단지 명식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없는 이유는, 명주가 지닌 8개의 글자와 나머지 2개의 글자(대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명주의 삶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8개의 글자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명주의 성향은 명주에 천성에 해당되므로, 분석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명주가 처한 환경과 대운과의 조합으로 명주의 삶이 크게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기구신운을 맞이한 명주는,명식의 균형을 깨트리는 상황과 맞닥뜨린다.특히 초년에 용신운을 맞이하여,유복한 환경과 안정된 정서를 유지하며 성장한 명주일수록, 첫 기구신대운의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이러한 경우, 명주의 정서적 안정의 균형이 깨지면서 판단력이 급격하게 흐려진다.이때 사업실패, 이혼, 교우관계의 부침등 다양한 흉사가 발생할 수 있다.천재지변과 건강상의 이상을 제외하고는,거의 모두가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부침이 대부분이며,명주를 가장 괴롭히는 흉사 또한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불협화음이다.이때 기구신운을 맞이한 명주는,자신에게 불운이 찾아왔다고 믿기 쉽다.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명리학적으로 설명하면,이는 불운이라는 외부의 흉한 기운이 명주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명식의 균형(명주의 심리적 안정)을 무너뜨리는 대운의 영향으로 인하여 본인의 명식이 변화를 겪는 것이다. 다시 말해,이는 외부의 변화로 인해 본인이 변화하는 과정(상태)이지,본인은 그대로인데, 외부(대운)가 무기력한 명주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기구신대운을 맞이한 명주는 명식의 불균형으로 인해 큰 심리적 변화를 겪는다.



예를 들어 재성이 기신인 명주에게 기신인 재성운이 더해지면,가뜩이나 빠른 결과를 원하는 성향이 강한 명주의 성취욕구는 더욱 강해진다.재성은 일간(비겁)이 극하는 기운이지만, 재성의 세력이 강하면 오히려 일간(비겁)을 극하는 상모(相侮) 작용이 일어난다. 고양이가 쥐를 잡지만, 쥐의 덩치가 고양이보다 커지면 오히려 쥐가 고양이를 잡는 형국과 같다. 비슷한 원리로 가뜩이나 약한 일간이 강력한 욕망(재성)에 휘둘리게 된다. 원하는 것들을 얻지 못해 심리적인 부침은 강화되고, 인성에 해당되는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이러한 경우, 욕망에 휘둘린 명주의 판단력은 더욱 흐려져 자신을 더욱더 불리한 상황으로 몰아가는 극단의 상황에 처해진다.이때 심리적으로 불안한 명주는 인간관계의 법칙에 소홀하게 되고,지인들은 점점 그를 멀리하게 된다.상황이 이처럼 악화되면 명주는 철저히 고립되며, 명주의 정서적 균형은 완벽하게 무너져버리고 만다. 인간에게 고립된 환경은 마치 사형선고와 같다.



흔히 이러한 상황에 처해진 인물을 사회에서는 “나쁜 인간”의 유형으로 분류한다.기구신운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명주는 사회적 통념과 규율을 위반하기 쉽고,자꾸만 멀어지는 타인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더욱더 상대에게 집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작용으로 인하여 용신운을 누리는 명주 곁에는 더욱 좋은 인연이 쌓여가고,좋은 인연들이 명주를 더욱 길하게 만든다.물론 기신운에 처해진 명주의 불행은 깊어지며,기신운의 고통에 시달리는 명주 곁에는 사람들이 머물지 못한다. 용신운을 누리는 사람들에게만 행운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용신운의 안정된 정서상태가 명주의 주변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다. 안정된 정서와 원만한 인간관계는 명주에게 길한 결과를 안겨준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기신운에 놓인 명주의 흉은 더욱 깊어만 간다.



앞서 말머리에 서술한 인간관계에 관련한 다양한 서적들 또한 기신운에 놓인 명주를 고립시킨다.그들은 “멘털 뱀파이어” “ 답정녀(남),” “나르시시스트”“가스라이터”등의 부정적인 인간유형으로 분류되기도 한다.하지만 그들은 기구신운이라는 역경에 처해졌을 뿐,누구도 그러한 인간유형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비록 명의 구성 자체가 안타까운 명주들도 있으나,그들 또한 대운이라는 변화를 맞이하며 충분히 긍정적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다.지금 내 주변에 피하고 싶은 혹은 세상이 피하라고 권고하는 “나쁜 인간”의 유형이 있다면, 그는 지금 기구신운과 고군분투하며 버티고 있거나 혹은 기구신운의 고통 속에서 영혼이 죽어버린 경우이다.명주의 정신이 무너지면 용신운을 맞이한다 해도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어떠한 명을 갖고 태어났느냐가 아닌,명주가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만약 명주 곁에, 자신의 조후를 더욱 악화하는 기운의 지인이 있거나,명주의 대표적 십신의 부정적 발현을 심화하는 지인과 함께 살고 있다면 상황은 심각해진다.바꿔 말하면,나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지인이 누군가에게는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지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그 의미는 세상에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나와 상성이 맞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존재할 뿐이라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화기운이 과도하여 힘든 명주 곁에 화기운이 강한 지인은 악인이 아니라 악연일 뿐이다.이때 화기운이 과도한 명주가 수 기운이 충분한 명주를 만나면 그 인연만큼 귀한 인연은 없다.인간을 분류하고 식별하려는 의지는 인간의 생존본능에 가깝다.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필연적으로 인간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어찌 보면 나와 상성이 맞는 타인을 찾아 헤매는 과정이 인간관계의 전부일지도 모른다.기신운에 허덕이는 명주는 본인에게 처한 심리적 고통과 불안만으로도 벅찬 상황임에도 불구하고,인간무리(관계)에서 소외되는 이중고를 겪는다.



기구신에 시달리는 명주는 그 무엇보다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물론 명식의 불균형으로 인해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무엇보다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그럴 때일수록 정신을 가다듬고 본인이 처한 상황을 직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명식을 통하여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수용하는 과정)대부분 오랜 기구신운에 시달린 명주는,긴 시간 동안의 반복되는 흉사와 정신적 고통으로 인하여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성찰하지 못한다.자신을 성찰하고 돌아보는 과정 또한 안정된 심리상태가 더욱 유리하기 때문이다.대부분 이러한 경우, 자신의 내면을 철저히 부정하거나, 현실을 부정하는 이인증의 상태로 돌입한다.이는 몸은 살아 있으나, 정신은 죽어있는 상태이며, 자신을 인격체로 받아들일 수 없는 마치 “유체이탈”의 상태와 흡사하다.이러한 명주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하다.이러한 명주에게 당신은 흉한 명을 타고났다는 통변만큼 잔인한 통보는 없다.세상에 흉한 명은 없다.다만 그는 온전히 판단할 수 없을 만큼 고통받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 유일한 희망은 사람(인연)이다.그러한 이유로 필자는 궁합(인간관계의 상성)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해 왔다.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구분이 없듯이,세상에는 오직 길한 인연과 흉한 인연만이 존재할 뿐이다.이미 정해진 8글자와 다가올 대운의 흐름을 막을 길은 없지만,나와 상성이 맞는 길한 인연은 나의 노력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세상에는 인간을 분류하는 다양한 유형의 가이드들이 존재하지만,이는 고통받는 인간들을 더욱 고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뿐이다.다양한 유형으로 인간을 분류하는 서적은 인간을 입체적로 이해하는 정보로 활용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종류의 인간을 유형별로 분류한 서적을 인간을 식별하고 분류하는 도구로 활용하면 타인에 대한 선입견은 깊어가고, 좋은 인연을 만나 마음을 열 가능성은 점점 좁아진다.



나에게 해를 주는 인간유형을 혐오하고 식별하는 행위를 대신하여 모든 인간은 나와 다르다는 이치를 이해하는 과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지금 나에게 해를 주는 지인은,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다른 누구에게 귀한 인연일 수 있다.물론 나 또한 상성이 맞는 인연과 함께 한다면 득을 주는 좋은 인간이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기구신운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명주들이 이러한 이치를 깨닫고, 스스로를 성찰하고 귀한 인연을 만나 개운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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