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여자들은 케이크를 정말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케이크 위에 앉아 있는 ‘그 순간의 나’를 좋아한다.
내가 도쿄에서 가장 자주 들은 일본어는
‘스미마셍’, ‘카와이’, ‘오이시’그리고 —
“케키 타베타이!
(케이크 먹고 싶어!)”
근데 여기서 레벨이 살짝 올라가면 이렇게 말한다.
“삼단 트레이에 올라간 케이크가 먹고 싶어.”
이건 그냥 배고픈 게 아니라,
'정서적으로 약간 우아해지고 싶은 상태'다.
포시즌 호텔의 딸기 애프터눈티,
만다린 오리엔탈의 스콘(버터가 화해 중),
아만 도쿄의 블랙 트레이(고요함 100%),
안다즈 도쿄의 햇살 테라스(빛과의 약속),
페닌슐라의 클래식한 실버 트레이(그냥 클래식이란 말으론 부족해).
그녀들이 사랑하는 건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다.
트레이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진 ‘나 오늘 좀 괜찮은 사람 같다’는 기분,
그리고 그 감각을 함께 음미하는 여자들만의 조용한 의식.
이건 약간, 귀족 체험 + 마음 스파 같은 거다.
유학 시절 일본인 친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애프터눈티 먹으러 갈래?”
머릿속에선 이미 샴페인 잔이 흔들리고 있었다.
“좋아! 다음 주 토요일 어때?”
그랬더니 그녀가 갑자기 현실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음… 두 달 뒤 주말 어때?”
두 달 뒤?
스케줄이 빡센 건가 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도
‘우아한 소비를 위한 저축 기간’이었을지도..
일주일에 2,000엔씩,
예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두 달 뒤,우리는 만다린 오리엔탈 38층 라운지에서
케이크를 앞에 두고 아주 근엄하게 앉았다.
호텔 특유의 향기, 묘하게 낮은 조명,
그 순간 나는, 인생이 꽤 괜찮게 흘러가고 있다는 착각을 했다.
(비록 통장엔 거의 아무것도 없었지만.)
도쿄 여자들은 디저트에 꽤 관대하다.
하지만, 그 관대함에는 ‘디저트 예절’이라는 게 있다.
기분이 우울할 땐 밀푀유,
뭘먹을지 모르겠을땐 딸기 쇼트,
생일 아니어도 바닐라 무스를 사 온다.
그리고 절대 막 먹지 않는다.
포크는 조심스럽게 들고,
작은 조각도 고이 나눠 담는다.
그리고 아주 여성스럽게
“오이시~!”
그건 하나의 룰이다.
회사에 들어가서도 트레이는 계속됐다.
어느 날, 영업팀 과장님이 불쑥 말했다.
“혹시… 애프터눈티 괜찮으면 같이 할래요?”
나는 순간 뇌가 정지했다.
그녀는 평소 위스키 언더록을 마시고,
다크 초콜릿을 즐길 것만 같은,
한마디로 ‘디저트랑은 담쌓은 느낌’의 사람이었으니까.
점심 한 번도 같이 안 먹은 나한테 왜?
하지만 나는 ENFP인 척 하며 말했다.
“좋아요. 저 언제든 괜찮아요.”
그리고 다음주 주말,
우린 진짜 , 포시즌 호텔에서 우리는 마주 앉았다.
사쿠라 에디션의 애프터눈티는 거의 미니 정원 같았다.
투명한 잔에 담긴 벚꽃 젤리,
딸기와 체리가 얹힌 미니 타르트,
스콘은 ‘계절을 품은 탄수화물’ 그 자체였다.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자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사실… 나, 한국 밴드 넬 진짜 좋아해요.”
그 순간, 나는 그녀의 눈웃음을 처음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이분도 인간이셨구나.
(게다가 꽤나 감성파.)
그날 우리는 무려, 꽤 진지한 이야기까지 했다.
삼단 트레이가 놓여 있으면,
사람은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
사적인 이야기들이 케이크 사이에 섞여 나온다.
그러니까 만약 당신이 도쿄에서
진심으로 누군가를 꼬시고 싶다면?
호텔 라운지로 가세요.
삼단 트레이를 앞에 두고,
사진도 찍어주고, 디저트를 나누세요.
그리고 맛있게 먹어준다면
성공 확률?
거의 100%.
애프터눈티는 고상한 전통도, 귀족의 유산도 아니다.
그건 ‘나는 여자다’라는 사실을
조용히, 그러나 아주 세련되게 재확인하는 순간이다.
여자로 태어나 다행이라는 속삭임.
지금 이 순간, 나를 잘 돌보고 있다는 실감.
삼단 트레이 위에 놓인 마들렌 하나.
그 조용한 사치 위에서,
여자들은 ‘나는 나다’라는 다짐을
천천히, 그리고 아주 달콤하게 씹는다.
그리고 다음 날, 잔고를 보고 현실로 돌아온다.
그래도 괜찮다
어제 나는,
아주 조용하게 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