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선 이미 멸종된 생물.
지하철에서, 편의점에서, 어디에서도 그 흔적을 찾기 힘들어진 것.
그런데 도쿄 한복판에서, 아주 멀쩡히 살아있더라.
손바닥에 착 붙는 작은 가죽 주머니,
바느질은 군더더기 없이 단단하고,
똑딱이 버튼은 한 번에 ‘톡’—.
마치 “그래, 나 아직 여기 있다” 하고 인사라도 건네는 듯했다.
동전지갑이었다.
한국에서라면, 이미 오래전에 박물관으로 들어갔을 물건.
카드 한 장과 카카오페이로 모든 결제가 끝나는 세상에서,
그건 너무 느리고 귀여운,
거의 ‘구시대 유물’처럼 보였다.
그런데 도쿄에서는,
이 유물 같은 물건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살아 있는 정도가 아니라,
‘스타일’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잔돈이 생기면, 늘 그렇듯
집에 와서 화분 받침 위에 툭— 하고 던져뒀다.
그러다 사라지면?
“있다가 정리하지 뭐…”
그리고는 잊는다.
그런데 일본은 달랐다.
캐시리스 열풍이 거세도,
동전지갑만큼은 가방 속에서 자취를 감추지 않는다.
아니, 결코 꺼내지 않는 게 아니라,
결코 놓지 않는 쪽이다.
오래된 친구처럼, 손에 익어버린 그 촉감을 쉽게 떠나보낼 수 없는 것이다.
남녀노소, 슈트 차림이든 셔츠 차림이든.
샤넬백을 팔에 걸친 여자도,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는 그 작은 가죽을 열어
검지로 ‘슥슥슥’— 동전을 고른다.
그 장면은 묘하게 중독성이 있다.
금속과 손톱이 부딪히는 ‘쨍’ 하는 소리,
그 안에서 은근히 반짝이며 모습을 드러내는 100엔과 10엔.
그건 단순한 결제가 아니라,
짧은 의식(ritual)이었다.
도쿄의 계산대 앞에서는,
누구나 같은 리듬으로 그 의식을 치른다.
‘Only cash’라는 종이가 붙은 가게에 들어가면,
나는 벌써부터 지갑을 뒤적이며 속으로 탄식했을 것이다.
“근처에 ATM 있나… 카드 안 되면 큰일인데.”
“아니 왜 아직도 현금만 받지?”
하지만 도쿄 사람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들의 가방 속에는 늘 지폐와 동전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폐는 장지갑 속에서 곱게 눕혀 있고,
동전은 작은 가죽 주머니 안에서 서로 부딪히며 기다린다.
그들은 말한다.
“돈은 소중히 대해야 돈이 들어온다니까요.”
그래서 도쿄의 결제 장면은 늘 느릿하고 정갈하다.
장지갑에서 지폐를 꺼내고, 동전지갑의 똑딱이 단추를 열어
필요한 액수를 정확히 맞춘다.
그 몇 초의 손놀림은 마치 ‘돈과의 인사’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도 하나 들였다.
작고 앙증맞은, 손바닥 속의 확신 같은 지갑.
그 안에 100엔 몇 개를 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어깨가 한결 여유로워졌다.
이제 나는 ‘동전지갑 들고 다니는 여자’다.
별것 아닌데, 묘하게 든든해졌다.
이게 뭐라고—
가방 속에 하나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언제든 준비된 사람처럼 보였다.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을 때,
콘비니에서 계산을 마칠 때,
귀여운 동전지갑을 열어 필요한 액수를
또박또박 맞춰 건네는 여자.
서울에서라면 동전지갑은 ‘굳이?’라는 질문 속에 묻혔겠지만,
도쿄에서는 ‘아직도?’가 아니라
‘당연히’였다.
100엔, 50엔, 10엔을 꺼내는 짧은 손짓—
그건 결제라기보다,
도쿄가 만든 생활의 박자, 세련된 코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