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 vs J뷰티

완벽을 사랑하는 나라, 여백을 사랑하는 나라

by Asparagus



나는 한국에 갈 때마다 올리브영에 꼭 들른다.

케이뷰티 아이템 하나 안사가면 어쩐지 서운해서 하나씩 샀는데

이젠 나에게 아예 관광 코스다.


비행기 표를 끊으면, 그다음에 하는 일은 ‘올영 리스트 작성’이다.

뷰티 유튜버의 추천템 영상을 보면서 메모장을 열고,

‘이번엔 이 쿠션, 저 블러셔, 그리고 그 에센스’를 꼭 사야지,

하면서 리스트를 점점 늘린다.


케이뷰티는 대단하다.

그 안엔 피부를 더 매끈하게, 더 하얗게, 더 ‘결점 없이’ 만들어주는

수천 가지의 공들인 공식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건, 나를 아름답게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처럼 빛난다.


그런데—문제는 내가 일본으로 돌아와서였다.

화장을 지우고, 거울을 봤을 때.

그곳에는 어쩐지 조금 다른 ‘아름다움의 기준’이 있었다.



긴자 거리를 걷다 보면,

잡지에서 막 나온 것 같은 여자들이 지나간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들의 얼굴에는

작은 점이 있거나, 주근깨가 햇빛 아래 드문드문 보인다.


누군가는 그것을 가리지도, 숨기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얼굴의 ‘균형’을 만든다.


화장대 위의 하이라이터 대신,

그 주근깨가 빛의 방향을 알려주는 것처럼.

한국에서라면 ‘잡티’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컨실러로 3중, 4중 방어를 했을 부분이

이곳에서는 ‘개성’이 된다.


조금은 덜 매끈한 피부,

그리고 그 안에서 드러나는 삶의 흔적들—

그게 오히려 한 사람의 얼굴을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내 친구 하나는 잡티가 많은 편인데,

그걸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게 나지 뭐

나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래서 가려야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없어.

난 그냥 이 얼굴이 괜찮거든.”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멋있다기보다는,
이상하리만치 현실적이라서.


그날 밤,
나는 세면대 앞에 서서
소보다 불을 조금 더 밝히고
점과 주근깨를 한참 들여다봤다.


없애야 할 목록처럼 보이던 것들이
잠시 동안은
그냥 내 얼굴의 일부로만 존재했다.


어쩌면

한국의 ‘완벽한 피부’는 하나의 예술이고,

일본의 ‘자연스러운 피부’는

시간이 스며든 또 다른 장르의 예술일지도 모른다.


전자가

수정 보정된 잡지 화보라면,


후자는

오래된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 같다.


둘 다 아름답지만, 남는 감정은 다르다.



나는 아직도 올리브영을 좋아한다.

케이뷰티의 섬세한 공식을 존경한다.


하지만 잡티가 보이는 내 얼굴도 아름답다.

점과 주근깨의 미학—

그건 완벽을 덜어내고,

오히려 조금의 허용을 더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허용’이,

사람을 훨씬 매력적으로 만든다.



그래서 그런지, 파데프리로 사는 사람들이 도쿄엔 꽤 많다.

왜 안 바르냐고 물으면,

“갑자기 얼굴이 너무 진해지는 느낌이 어색해서”라고 한다.

선크림을 바르고, 컨실러로 아주 살짝만 톤을 정리.

그게 전부다.


얼굴을 가리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것.

그리고 아주 약간의 ‘이뻐짐’을 더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마음가짐.

그 미니멀한 뷰티 철학이 좋아서, 나도 꽤 오랫동안 파데프리로 살았다.


그런데 한국만 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 온 김에 점이나 빼고 가라.”

“요즘 괜찮은 시술이 얼마나 많은데, 한번 받아봐.”


마치 모두가 피부과에
지분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권한다.


도쿄에서는 단 한 번도 듣지 않았던
피부 지적을
한국에 오면 한 달 동안 몇 번이나 듣는다.


처음엔 웃어넘겼지만
자꾸 반복되니
조금 서운해진다.


나는 안다.
그 말에 악의가 없다는 걸.


한국의 ‘피부 권유’는
일종의 정(情)이고,
관심과 애정의 다른 표현이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절이 너무 잦으면 가끔 방어막을 치고 싶어진다.


그래서 버티고, 또 버틴다.

하지만 언젠가는—아마도 내 나이의 앞자리가 4로 바뀌는 날—

나도 한 번쯤은 그 문을 열어볼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때는 새로운 나를 만나겠지.


파데프리주의자인 나도

일본에서만큼은 절대 놓치지 않는 관리가 있다.


바로 눈썹 관리다.


한국에는 속눈썹 파마는 있지만, 눈썹 파마는 없다.

일본의 눈썹 파마는, 말하자면 헐리우드 배우의 스틸컷처럼

나의 눈썹을 그림 같은 형태로 빚어낸다.


마지막으로 눈썹 왁싱까지 마치고 거울을 보면—

얼굴이 마치 사진 보정 앱에서

‘밝기’와 ‘명도’를 절묘하게 조율한 것처럼 환해진다.


반대로, 한국에는 흔하지만 일본엔 거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눈썹 문신.


요즘은 남자들도 하고,

대통령님도 했다.

그만큼 대중화된 기술이다.


이렇게

마음만 먹으면 뭐든 사고,

직구도, 구매대행도 가능한 세상임에도

눈썹 뷰티만큼은 국경을 넘지 않는다.


눈썹 파마는 일본에서,
눈썹 문신은 한국에서.


마치 두 나라가
묵계한 듯한 분업 체계다.


나는 이 차이가 좋다.
그래서 이 질서를 지킬 생각이다.


눈썹 하나에도

도시가 믿는 미의 기준과,

그 기준을 떠받치는 기술,

그리고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걸,


두 나라를 오가며 눈썹을 드리내민다.

나는 오늘도
내 눈썹으로 국경을 건넌다.


목요일 연재
이전 16화내 발끝의 완벽한 조연, 처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