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웻셔츠계의 유재석, 챔피온

by Asparagus




유독 도쿄 거리를 걷다 보면
이상하게 자주 마주치는 얼굴이 있다.


편의점보다 많고,
스타벅스보다 자연스럽다.


회색 스웻셔츠.
소매에 작은 C 로고 하나.


챔피온.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는데
이상하게
다들 한 벌쯤은 가지고 있는 옷.


약간…

국민 체육복 같은 존재.


나는 늘 스웻셔츠를 좋아했다.


간단하고, 따뜻하고,
체형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옷.


정확히 말하면

스웻셔츠가 허락하는
‘대충의 범위’를 좋아했다.


대충 입었는데
망해 보이지 않는 범위.

그게 중요했다.


처음엔 챔피온도 그냥 그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미국 대학생이 입을 법한 로고,
빈티지 숍에 늘 한 줄쯤 걸려 있는
그저 그런 회색 맨투맨.


“굳이?”


딱 그 정도.


그러다
도쿄의 한 셀렉숍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하나를 입어봤다.


회색.
정말 재미없는 회색.


그런데.

몸이 먼저 알아봤다.


괜찮은데.
편한데.
왜 이렇게 익숙하지?


핏이 예쁘다고 말하기엔 애매하고,
멋있다고 하기엔 너무 조용한데
이상하게 벗기 싫었다.


마치
오래 쓰던 머그컵을 다시 손에 쥔 기분.

설명할 건 없는데
그냥 제일 편한 자리.


일본에서 챔피온은
운동복 취급을 받지 않는다.


셔츠 위에,
슬랙스 위에,
심지어 란제리 원피스 위에도 얹는다.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데
막상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 저래도 되는구나.”


이 옷에는
이상한 신뢰가 있다.


튀지 않아도 괜찮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신뢰.


그러니까,

스웻셔츠계의 유재석.


누구랑 붙여놔도 어색하지 않고
콜라보를 백 번 해도 욕 안 먹는 타입.


조용한데
계속 불려 나오는 사람.


챔피온이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1930년대부터
거의 바뀐 게 없다.


묵직한 원단,
뒤틀리지 않는 구조.


요즘 옷처럼
“입자마자 와 예쁘다!”는 아니지만,


이상하게
“어? 또 이걸 입고 있네.”가 된다.


이상하게
다시 사게 되는 옷.

그래서인지
새 것보다
오래된 게 더 비싸다.


나는 이 옷을
유난히 많이 입던 시기가 있다.


첫째를 낳고 나서였다.


몸은 아직 내 몸 같지 않고,
거울 속 실루엣은 낯설고,
그걸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던 때.


몸매는 가리고 싶었지만

‘아줌마처럼 보이는 건’ 또 싫어서


나는 거의
유니폼처럼 챔피온을 입었다.


정말 질리도록.


유모차를 밀고 걷던 길,
편의점 커피를 사 들고 서 있던 밤,
잠든 얼굴을 몇 번이나 확인하던 오후.


그 계절마다
항상 이 회색이 있었다.


그래서 이제
챔피온을 보면
그 시절의 공기가 같이 떠오른다.


목은 멀쩡하고,
프린팅은 조금 바랬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바램이 흠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좋은 옷은
사람을 멋있게 만들지 않는다.


대신

반려옷처럼

그사람을 조용히 닮아간다.


챔피온은

그걸 본능처럼 알고 있다.


그래서 스웻셔츠가 아무리 많아도

결국 한 벌은 남는다.


유행도, 스타일도 아니다.

그냥 계속 손이 가는옷


끝까지

옷장 한쪽에 남겨두게 되는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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