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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육이 Feb 13. 2023

03. 피구에 대하여

<스무살에 사랑말고 운동할 걸>


03. 피구에 대하여

피구 시간이 정말 싫었다.


사람을 특정 공간에 가둬두고 과녁 삼아서 공격하다니,

이렇게 수동적이고 공격적인 스포츠가 어디있단말인과.


하지만 개인의 특성은 깡그리 무시되는 초등학교의 수업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경기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공은 점점 강해지고 공격성이 올라간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피구가 시작되자마자 '최대한 아프지 않게, 최대한 빠르게 아웃되는 것'을 목표로 했고

'아프지 않게 아웃'되면 기쁜 마음으로 수비공간으로 넘어갔다.


그 이후, 내가 할 수 있는 건 수비수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

다른 수비수 친구들이 최전방에서 상대방을 열심히 공격할 때, 나는 멀찍이 물러서있다가, 어쩌다가 내 앞까지 튀어나오는 공을 재빠르게 잡아서 최전방에 있는 수비수에게 잽싸게 던졌다.


그러면 친구들이 '오오~'하고 반응을 해줬고, 그게 내가 피구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격려였다.


그게 나만의 생존법이었다.


피구왕 통키는 정말 좋아했지만, 피구공에 맞으면서 축구공을 차는 아이들을 부러워했다.

넓은 공간에서 자율적으로 공을 주도하고, 인간을 공격하지 않고도 점수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부러워했다.


아직도 애들한테 피구를 시키나....싶어서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한단다.

나처럼 체육 시간에 고통받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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