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추구미는 미니멀리스트
한국에서의 나의 방은 뭐랄까,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30년을 넘게 본가에 있다 보니 30년 넘게 쌓인 잡동사니가 내 영역을 침범하고는 했다. 어딘가 한구석에 이건 필요하지 라며 사모은 녀석들로 공간이 가득했다.
평생을 맥시멀리스트로 살아왔다. 여행을 떠날 때도 캐리어 가득 한국에서 챙길 수 있는 건 대부분 챙겨갔다.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다고 해도 한국이 더 저렴할 테니까! 혹시 품질이 나쁘면 어떻게? 라며 허용치 무게까지 가득 캐리어에 담아 여행을 떠나고는 했다. 29살에 떠난 세계여행에서도 그랬다. 필요할 것 같은 건 모든지 챙겼다. 그렇게 세계여행을 마무리하고 돌아온 내 캐리어 안에는 포장도 채 뜯지 않은 물건들이 가득했다.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대부분이 여행을 다니는데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여행을 가기 전에 망각하고는 한다. 내가 가는 모든 곳이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것을 말이다. 여행지에 돌아오고 그 짐을 정리하게 되어서야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의 무게가 체감됐다. 100일간 내가 이고 지고 떠났던 이 모든 것들의 무게를 말이다.
그럼에도 나의 공간엔 여전히 언젠가는 쓸 거야 라며 모아둔 아이들이 넘쳐났다. 코로나 때는 특히 더 심했던 것 같다. 밖으로 나갈 수가 없으니 집에 쌓아놓고 살았다. 그래 이렇게 쌓아놓고 살았으니, 나는 언제나 집이 답답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코로나가 종식되어 갈 때쯤, 나의 모든 답답함이 폭발했다. 아마 여러 상황들이 나를 이곳에서 떠나라고 부추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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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퇴사 타이밍은 보통 9월 말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 최고의 퇴사일은 9월이다. 추석상여까지 야무지게 챙기고 연말에는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타이밍, 2022년 9월 나는 약 4년을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극강의 P를 자랑하는 나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1년을 떠나는 건데 짐을 소홀히 할 수 없었다(웃음) 호주를 떠나기 한 달 전부터 나는 짐을 싸기 위해 여러 매체를 뒤졌다. 가기 전 본 유튜브로 본 워홀 떠나는 친구들의 출국영상을 보면 대부분 짐이 상당했다. 한국에서 짐을 보내기도 했다고 하니, 그 짐이 상당해 보였다.
내 짐은 32인치 캐리어 하나와 나와 함께 세계여행을 함께 했던 작은 배낭 하나였다. 그 공간 안에 내게 1년간 필요한 물품들을 간추려서 담았다. 담다 보니 많아져 덜어내기도 하고 막판에 챙겨 넣은 아이들까지 어찌어찌 한정된 공간에 내 짐을 넣고 나니 어느덧 출국 날이었다.
그 뒤로 호주워홀을 마치고 귀국할 때도 내 짐은 32인치 캐리어 하나와 작은 배낭 하나였다.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호주생활을 하며 내 물욕이 0을 수렴했기 때문이랄까? 셰어하우스에 살다 보니 대부분의 물품은 이미 구비되어 있었고, 일하는 내내 유니폼 티셔츠를 입어야 했기에 옷도 거의 필요가 없었다. (주 60시간씩 일하기도 했으니, 사실상 내 일상복은 유니폼 티셔츠라고 해도 무방했다.) 주변 모두가 그랬다. 한국에서의 나는 유니폼은 탈의실에서 갈아입는다는 인식이 조금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냥 그 옷을 입고 돌아다녀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 또한 그러했다.
모두 주변에 관심이 없었다. 내가 한국에서 뭘 하고 살았는지도 이곳에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살다 보니 알았다. 한국에서의 나의 소비는 대부분 보여주기 위한 소비였다는 것을 말이다. 유행을 쫓는 자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자유로울 수도 없었다. 내 취향은 아닌 것 같지만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번 해봐? 하는 소비가, 남들이 보는데 회사에 매일 같은 옷을 입을 수 없다는 생각에 사들인 그 많은 옷들이 내 방에 그렇게 쌓여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온전한 공간이 사라지고 나서야 알았다. 그동안 내가 샀던 것들의 대부분이 없다고 내 일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셰어하우스를 사는 동안에도 온전한 내 개인공간은 있었지만 호주에 살면서 항상 이곳에 정착한다는 느낌보다는 이곳에 머문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다 보니 내 공간에 굳이 무언가를 사모으질 않았다. 화장품이 떨어질까 미리 사두던 습관도, 미래의 내가 필요할 테니까 사모으던 것들도, 더 이상 사지 않았다. 또 그러다 보니 아이러니하게 또다시 내 통장에는 돈이 모였다.
'아 이게 책에서 읽었던 그 미니멀이란 녀석인가?'
의식하지 않고 있는 사이에 나는 미니멀리스트 책에서 말하고 있는 그 얼추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안락하게 잠들 침대가, 내 일용할 양식을 채워줄 냉장고가, 내 머릿결을 빛내줄 트리트먼트 등등 내 일상을 유지해 줄 녀석들이 필요했지만, 매일 하던 풀메이크업이라던가, 일주일의 나를 다르게 해 줄 옷이라던가, 집에서 내 모든 일상을 함께 했던 소파가 없어도 그럭저럭 살만했다.
살만하다는 거지 불편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또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살아졌다. 집에 소파가 사라진 대신 집 앞 도서관 구석으로 가서 버블티를 마시며 멍을 때렸고, 한국에서 편리하게 이용하던 택배를 이용하지 않으니, 집 앞 콜스(Colse)를 드나들며 장을 보는 게 이곳 친구들과의 놀이가 됐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온전히 쉴 수 있었다. 그래 이 삶 자체가 나쁘지 않았다. 평생을 맥시멀리스트인 줄 알았는데 호주에 살다 보니 알게 된 내 추구미는 미니멀리스트였나 보다.(웃음)
호주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여전히 나는 큰 소비가 없다. 그렇다고 극강의 미니멀리즘을 자랑해서 내 공간을 철저하게 비운다는 생각도 없다. 아무도 나를 미니멀리스트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내 방은 여전히 30년 묵은 잡동사니들이 여전하다.
그냥 나는 게으른 사람이었고, 그저 내 추구미가 미니멀리스트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