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호주에서 어학교를 다닌 이유
나는 태생이 게으르고 느린 사람이라 루틴이 없으면 한없이 무너지고는 한다. 특히 정해진 것 없는 해외생활에서는 그 나태함이 극에 달한다. 23살 나는 부모님을 떠나 해외에서 생활하는 핑크빛 꿈을 꾸며 일본으로 떠났다. 첫 독립이었다.
첫째 날도 둘째 날도 아침 8시에면 눈이 번쩍 떠졌다. 새로운 일상과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이곳에서 잠으로 이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오사카 여기저기 훑고 다니고 나서야 나의 첫 일본 여행은 끝이 났다. 이제 일상이었다. 부모님을 벗어난다는 건 장점도 부모님이 없다는 것 단점도 부모님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의 나태함을 어느 정도 통제해 주던 부모님이 사라지고 나만 남았다. 정신 차리다 보니 한 달이 지나있었고 이제 가져온 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내가 들고 온 돈은 150만 원 남짓이었다. (집은 레오팔레스21이라는 회사에서 두 달 치를 미리 내고 계약을 하고 들어갔다.)
무언가 하긴 해야 하는데 뭘 해야 하지?
MBTI 극강의 P를 자랑하는 나는 당시 아무 계획이 없었다. 그냥 일본에 도착하기만 하면 나의 해외라이프가 펼쳐질 줄 알았는데 실상은 놀랍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있었다. 그 당시 내가 하던 유일한 행동은 단골 카페(코히야라고 카페라기 보단 지역 어르신들이 모여 노는 다방 같은 곳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일본의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은 그런 가게에 잘 안 간다는 것이었다. 그때 당시에 그곳에 몰려 앉아 놀던 동네 어르신들은 그런 내가 얼마나 신기했을까?)에서 마스터와 커피 한잔을 하거나 친해진 동네 바의 마스터와 그의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는 것이 다였다.(한마디로 놀았다.) 뭐 소득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이 당시 내 일본어가 엄청 늘었는데 생각해 보면 동네 어르신들의 배려가 내 언어실력을 키워준 게 아닐까?
일을 해야 하는데 정보도 없었고 의지도 없었다. 나는 정해진 게 없으면 시작을 하지 않는 그런 인간이었는데 당시에는 의지도 박약이었다. 그런 나를 정신 차리게 해 준 건 단골 카페 마스터의 부인 가나코상 덕분이었다. 일자리를 어디서 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나에게 그녀는 행동으로 보여줬다. 당시 일본 고용노동부에서 일자리를 알아봐 주는 서비스가 있었는데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자리에서 전화해 가며 알아봐 준 것이었다. 그녀의 행동력에 감탄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에게 어차피 없는데 뭐가 무서워?라고 했다.
쓰게 한방 먹고 나니 정신이 차려졌다. 아니면 본인 카페의 다락방을 빌려 동네 아주머니들을 모아서 한국어를 가르쳐 보라고도 했다. 당시 2차 한류붐이라고 해서 한국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은 아줌마들이 동네에도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1차는 여러분이 아는 그 겨울연가다.)
아 이렇게 많은 기회가 있었어?
결론적으로 한국어는 가르치지 않았지만(웃음), 그녀의 행동력이 그 당시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뒤로도 나는 일할 곳을 구하는데 애를 좀 먹었는데 정보도 없고 계획도 없으면 이렇게 고생할 수 있구나 몸소 체험을 하게 되었다. 뭐 세 달간 고생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일은 하게 되었지만 그때의 짠내 나는 생활이 아직도 생각난다.
일본에서의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 나는 규칙적으로 생활을 하는데 어느 정도 강제성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사회생활을 하며 거기에 돈을 들이면 더욱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웃음)
그래 게으른 나에게 강제성이라는 처방전이 필요했다.
그래서 호주를 가기 전 내가 생각한 건 어학연수였다. 영어가 부족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당시 워홀을 알아보며 보았던 홈스테이가 너무 해보고 싶었다. 또한 또래 친구들을 사귀는데 학교만큼 도움을 주는 곳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일본에 있었을 때 나는 또래 친구들을 사귀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생각보다 만날 수 있는 접점이 많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차선으로 동네 아주머니들과 친해지는 선택을 하긴 했다. 그래서 지금에도 내 일본 친구들은 대부분 아주머니 들이다. (도쿄는 조금 다르겠지만 10년 전 오사카의 작은 동네마을에는 이런 정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처방은 아주 훌륭했다. 학교를 다니다 보니 어찌 되었든 집을 벗어나 밖으로 나갔고 학교가 끝난 오후시간에는 남은 공부를 하거나 학교에서 사귄 친구들과 주변을 놀러 다니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또한 어학교는 초반 정착에 필요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만남의 장소였다. 호주의 비자 종류는 다양하지만 어학교를 찾는 친구들은 학생비자를 받기 위해 거쳐가는 과정을 밟는 친구들과 워홀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그 외의 친구들은 대학교 연계프로그램으로 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호주를 처음 겪게 되는 친구들이 모이다 보니 초반 정착의 우당탕탕을 함께 경험하기도 했다.(웃음)
또한 이력서 첨삭을 도와주시기도 하니 정말 정말 내가 혼자서 잘 헤쳐나갈 자신이 없다면 초반 짧게 어학교를 다녀보는 것도 추천한다. 길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고급반으로 올라갈수록 문법위주의 수업이 많아진다. 외국에서 다양한 국가의 친구들과 영어 공부하다 보면 느끼지만 문법에 있어서는 동양권 친구들이 서양권 친구들을 앞선다. 하지만 이상하게 말문을 먼저 트는 건 서양권 친구들이 더 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