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아파트의 가스점검

찬물로 버텨야하는 시간

by 삐아노

몸 컨디션이 다 회복되지 않아 아쉽게도 파타고니아 여행기는 나중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대신 파나마에서

최근에 겪었던 흥미로운 이야기를 소개할까 한다.






파나마 아파트에서는 법적으로 3년에 한 번마다 가스 점검을 해야 한다고 한다. 실제로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가스 폭발 사고 및 화재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뉴스이기도 하다.



작년에 이미 점검을 마친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서 일일이 물을 끓여가며 샤워를 하고 있으며, 건조기를 쓸 수 없어서(파나마 건조기 대부분이 가스다) 주위에 부탁하거나 행거에 일일이 널고 있고, 가스레인지 대신(파나마에서는 가스레인지와 가스오븐가 일반적이다) 부탄가스로 요리를 해서 몹시 불편하고 짜증 난다는 후기가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더더욱 힘든 것은 가스가 끊기는 게 일주일이 아닌 몇 달씩 걸릴 수도 있다는 것!



우리 아파트는 언제 하려나?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올 1월, 장문의 메일이 도착했다.

2월부터 가스 공급이 차단되는데 기사가 방문하여 가스를 잠그고 검사받는데 기본 2-3주, 문제가 발생하여 교체를 해야 한다면 몇 달씩 걸릴 수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적혀 있었다.


오 마이갓. 몇 달!? 파나마에서는 매우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실제로 한 지인은 몇 달씩 고생하기도 했다.


가장 먼저 샤워가 걱정이었다. 아무리 더운 나라라지만 물은 견디기 쉽지 않을 만큼 차갑단다. 게다가 나는 추위에 몹시 약해서 에어컨도 거의 틀지 않고 한여름에도 꼭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아침에는 꽤 추운데 남편이 새벽 여섯 시 반에 찬물로 씻는 게 고통스럽진 않을지 걱정도 됐다.


미친 듯이 전기샤워기를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아무래도 너무 위험해 보였다. 벽을 뚫고 전기 선을 끌어와서 설치를 해야 하는 대공사였다.

그러면 번거로워도 큰 솥에 물을 끓여서 찬물과 섞어 바가지로 퍼서 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건조기. 여름 나라다 보니 세탁거리가 정말 많다. 한 번 입은 옷은 무조건 세탁바구니에 넣기 때문이다. 최소 이틀에 한 번씩 세탁을 한다. 빨래가 한 무더기다. 남편이 혼자 살 때 쓰던 먼지 앉은 왕자 행거를 꺼내어 닦아놔야 하나 싶다가-우리 집 건조기는 가스가 아닌 전기라는 걸 알게 됐다! 야호! 집주인님 무차스 그라시아!


마지막 세 번째로는 가스레인지. 비록 1 구긴 했지만 전기레인지가 있었기에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다. 가스레인지 사용 후부터는 폐질환에 대한 찜찜함이 항상 있었는데 오히려 그 점에선 좋았다.



이윽고 가스 차단일이 되었다.

기사가 직접 가가호호 방문해서 잠그는 방식이었는데, 신발을 신고 들어오려고 해서 벗어달라고 부탁했다. 표정이 썩 좋진 않았지만 나중에 내가 하게 될 청소를 생각하면 그쯤이야 아무렇지 않았다.

잠그는 시간은 30분 정도로 생각보다 꽤 걸렸다.


그날부터 찬물로 샤워를 시작했다.

솔직히 물 끓이기 너무 번거롭고 귀찮았고, 친한 지인이 헬스장 샤워실은 전기라더라 라는 고급 정보를 알려주었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아 내려가기조차 부담됐다. 그래서 그냥 찬물에 도전했다.


처음 몇 분은 얼음물 같아서 머리를 숙인 채 목과 허리디스크를 파열시키며 머리를 먼저 감고, 그다음 몸에 튀긴 물방울을 이용해 바디워시로 거품을 내고 세수를 한 다음, 마지막에 으어어어어 앗 차! 하면서 몸을 씻어 내렸다.


몹시 춥긴 한데 버틸 만은 하다는 게 남편과 나의 결론이었다. 그러나 샤워하러 들어가기가 참 싫었다. 견딜만한 거지 즐길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1일 1 샤워를 고집하던 나였는데, 찬물 샤워 일주일이 지나자 밖에 나가지 않을 때면 2일 1 샤워를 하기도 했다.


세정력이 떨어져서 그런지 이마에는 좁쌀 여드름이 폭발했고, 식세기의 그릇도 깨끗하게 닦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18일째가 되는 오늘! 드디어 가스 점검이 통과되어 가스 재연결을 위해 기술자가 방문했다.

가스를 다시 연결하는데 1시간이 훌쩍 넘게 걸렸고, 기술자 셋이 또 신발을 신은 채 왔다 갔다 하고- 바닥을 물바다에 각종 먼지며 난장판으로 해놓고 가서 화가 나긴 했지만! (파나마에서 수리 및 정비 기사의 방문이 세상에서 가장 스트레스받는다. 그들이 가고 난 이후 청소가 장난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드디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아아

벌써 여드름이 쏙쏙 들어가는 기분이다!

따뜻한 물에 대한 소중함, 가스의 소중함이란!



오래간만에 맛보는 유쾌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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