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과 청소력

by 삐아노

가사도우미를 해고한 지 2주가 지났다.


있다가 없어서 그런지 처음에는 좀 짜증도 나고 막막했다. 치워야 할 게 너무나 많은 데다가 그전엔 남편이 부엌 바닥에 뭐를 흘리면 그분이 와서 치워주겠지 하고 그냥 내버려두었는데 이제는 내가 허리를 굽혀 바로 치워야 하니 좀 짜증이 늘었다. 괜히 해고했나 하고 잠시 후회도 했다.



그랬는데 지금은 청소 및 정리가 꽤 즐겁기까지 하다.

돌이켜보면 도우미가 없었을 땐 항상 ‘청소력’이라든지 ‘미니멀라이프’를 유튜브에 검색하여 틀어두고 청소를 하곤 했다. 들으면서 하면 왠지 더 기분 좋고 뿌듯하달까?



다시 청소력과 미니멀에 꽂혔다.

좋았어! 미니멀라이프로 다시 가자!



해외에 사는 분들은 대부분 강제 맥시멀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쓸어오기 때문.

나도 골프복만 십 수 벌있고 자외선패치가 열 박스 넘게 굴러다닌다. 그 외에도 속옷 수건 화장품 등이 한아름이다.


한국에서 구매할 때도 엄청나게 스트레스받았었다. 한국은 종류가 워낙 많으니 무얼 살지 상품들을 일일이 비교하고 가격도 최저가를 찾아야 하고 상품평을 정렬하여 읽고 택배 온 거 뜯고 정리하고 옷은 일일이 다 입어보고… 정말 고통스러운 쇼핑이었다. (쇼핑이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돌이켜보면 이렇게 많이 가져올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물론 가져올걸 하는 것도 있긴 하지만 소수다.



파나마는 다행스럽게도? 살만한 게 없는 나라다.

죄다 수입이라 가격도 비싸고 품질도 그렇고 종류도 얼마 없고 똑같은 상품인데 훨씬 비싸니 한국에 비해 왕창 손해란 생각에 거의 사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그릇이나 소품, 담요나 이불 커버 등을 발견하면 이것저것 사기도 하고 옷도 가끔 사고 그랬다. 특히 작년 크리스마스 때 장식품을 이것저것 꽤 샀다.



한 때는 테m에서 드레스며 강아지 용품 냉장고 자석 슬리퍼 액세서리 음악소품 머리핀 등을 마구 지르기도 했다.

지금 보면 너무 잘 산 물품도 있지만 아닌 것도 많다. 게다가 달러라서 비싸다!! 내가 여기에 이만한 돈을 쓰다니.. 묘한 현타가 와서 테m를 삭제하고 끊었다.



어쨌든 이제 뭔가 살 필요가 없어졌다. 그릇도 충분하고 옷도 차고 넘치며 커버도 딱 알맞게 있고 새 수건이며 밤비 장난감도 너무 많고 가구도 적당하다. 필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뭔가를 사면 그 순간에는 기분이 좋지만

집에 와서 그걸 세척하거나 세탁해야 하니 귀차니즘이 밀려온다. 뭔갈 산다는 것은 그걸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닦아준다는 의미와 같다.



그러니 뭔가를 구매해서 피곤한 짐을 늘려갈 필요가 없다.



요새 매일 조금씩 청소와 정리를 한다.

여전히 화장실은 좀 싫지만 그래도 하고 나면 보람차다.

어제는 트리를 꺼내어 설치하고 작년에 산 장식품을 그대로 장식했다. 1년여 만에 보니 반가웠다.


오늘은 바닥 전체를 닦고 정리하고 서랍을 뒤져 안 입는 해진 속옷들과 옷 몇 가지, 오래되었지만 아까워서 장롱에 모아둔 베개를 버렸다.

속옷 개수만 족히 50벌은 되어서 굉장히 놀랐다. 입는 건 고작 10벌 미만인데.


전에 읽은 소비에 관한 책에 이런 말이 있었다.

내가 그 제품을 보기 전까지는 그 물건이 이 세상에 있는지 존재조차 몰랐는데, 보게 된 순간 미친 듯이 가지고 싶게 되는 거라고.


이 말인즉슨 그게 없어도 내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잘 굴러가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거다.



요새 우리 집이 아주 단정하고 깨끗하다.

내가 정성 들여 관리하고 정리한 덕택이다.

누가 불시에 놀러 와도 전혀 걱정되지 않는다.

우리 집이 좋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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