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민잡기'-시각디자인, 도자이너?, 디자이너!
난, 시각디자이너이다. 시각디자인이란 사전적으로 도형이나 화상, 또는 디스플레이 등 시각적 표현에 의해 실용적 정보를 전달하는 디자인이다. 즉 영상, 인쇄물 등을 통해서 표현 할 수 있는 모든 디자인이다.
1984년 충무로...
학교다니면서 알바를 하기위해 처음 충무로에 입성, 80년대 충무로는 영화제작과 시각디자인의 메카였고 디자인기획실, 인쇄소들이 몰려있었고 영화 제작사들의 전성기였었다. 그 당시 충무로 골목을 누비고 다닐땐 연예인, 영화배우들을 수없이 부딪치며 다녔었다. 특히 내가 근무했던 충무로 5번출구 국제빌딩 지하 '베어가든'은 아지트처럼 영화배우, 연예인들을 볼 수 있었고, 그곳은 점심셋트(1인용 피자와 스파게티) 메뉴가 유명해서 충무로 직장인들의 인기가 많았었다.
레터링팬, 에러브러시, 물감, 붓이 필요했던 수작업 디자인
30년 전 ‘난, 디자이너다!’라는 자부심으로 출근할땐 나름 잘난 척(?)하며 아트백을 들고 다녔다. 그 당시엔 모든 디자인작업이 수작업 시대라 검은색 아트백은 필수였다. 수작업이었으니, 아트백 안에는 에어브러쉬, 방안대지, 딱풀, 세필, 30cm자, 커터칼, 레터링팬, 샤프팬은 필수였다. 지금처럼 Indesign, QuarkXpress 등의 어도브 프로그램도 없었고, 맥켄토시가 대중화되기 전이라 화판작업(편집)은 수동 사식을 쳐서 일일이 딱풀이나 물풀로 식자(수동)를 대지에 붙여야했다. 레터링 팬으로 드로잉과 줄도 긋고, 흑백 작업을 하여 그 대지 위에 유선지를 씌워 붉은 팬으로 색지정하고 사진 누끼도 체크하고, 그야말로 딸기밭(붉은색으로 체크를 많이해 생긴 별칭)을 만들기도 했었다.
도자이너?, 디자이너!
처음 충무로 디자인 사무실에 나왔을 때 디자이너란 말대신 도안사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 당시엔 도안사라고 많이 불렀고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신세대에겐 디자이너란 호칭을 고집했지만 여전히 도안사였다. 그래서 우리가 붙인 말이 도안+디자인를 합성해 ‘도자이너’라고 웃으며 불렀던 기억이 있다. 밤새 야근하며 딱풀로 식자를 대지에 편집하면서 붙여 나갈땐 동료끼리 따순이, 따돌이라고 했었다. 수 십 페이지 책자도 수작업으로 식자를 잘라 붙이고, 거기다 오탈자 수정을 할 때면 일명 ‘따데기’작업을 했었다. 하도많이 ‘따데기’작업을 해서 따돌이, 따순이라고도 한탄하며 반복된 야근과 고된 작업을 했던 기억이 있다.
‘쪽자’를 만들어 세밀하게 글자를 만들어 딱풀로 붙이기도 하고... 레터링팬으로 선도 긋고 왠만한 도형은 트래팔지에 그려 붙이고 ‘그래픽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쓰였으니 그냥 ‘도안’이라고 흔히 쓰였다.
맥켄토시의 혁명
세월이 흘러 맥켄토시가 들어오고 QuarkXpress라는 신기한 편집프로그램이 도입되면서 편집디자이너 두세명이 하던 일을 한명이 짧은 시간에 거뜬히 해내는, 신기루 같은 컴퓨터 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맥켄토시(MAC)의 사용으로 컴퓨터를 받아들이지 못한 디자이너는 도태되고 컴퓨터를 일찍이 받아들인 세대부터 도안사라는 호칭보다는 디자이너라고 불렸다. 즉 도안사에서 디자이너로 넘어가기까지는 맥켄토시라는 신 문명의 기기가 있었다. QuarkXpress에서 Indesign 거기다 Adobe사의 Photosharp, illustration으로 디자인 작업에 날개를 달게 되었다. 아이디어 구상에 더 몰두 할 수 있었고, 작업의 시간 단축으로 밤샘작업이 줄어들었다. 또 아이디어를 표현할 수 있는 도구(컴퓨터)로 시안작업도 마음껏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디자인도구의 컴퓨터화로 도안사에서 디자이너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불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