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늘 지구 너머의 우주를 궁금해하고 그곳에 닿고자 하는 열망을 가져왔다. 달과 화성, 그리고 더 멀리 태양계 밖의 세계를 탐사하고 우주를 정복하고자 하는 욕망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촉진시켰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주로 나아가기 위한 인간의 시도는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으며, 민간 우주 관광 여행도 이미 시작되었다. 그저 공상에 불과했던 우주여행이 드디어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을 정도로 과학기술이 발전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왜 우주로 나아가기를 꿈꾸는가. 환경 전문가들은 지구의 온도가 1.5도만 올라가면 머지않아 지구는 멸망할 수도 있다고 우리의 미래를 걱정한다. 지구의 남은 수명이 그리 많지 않다고 본다면 인간이 살 수 있는 또 다른 지구를 탐색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류가 살아갈 수 있는 영역을 확장한다는 측면에서 우주탐사는 필요한 일이다. 우주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기회의 땅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우리의 탐욕으로 우주를 정복하고 실제로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을 찾아내서 그곳으로 이주한다면 그때는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 낼 미래 세계를 기발한 상상력으로 빚어내는 문학 작품이 최근에 다수 쏟아지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과도한 욕망은 집착과 탐닉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는 파멸로 치닫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이다. 테드 창이나 김성중의 소설은 바로 그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SF 작가인 테드 창의 <바빌론의 탑>은 성경 속 바빌론의 탑과는 전혀 다른, 경계 너머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모험을 다루며, 그 끝이 어디로 향하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김성중의 <국경시장>은 과도한 욕망은 집착과 탐닉으로 이어지며 궁극적으로 파멸로 치닫게 된다는 것을 판타지적 구성을 통해 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들은 현대 과학이 발전할수록 건강한 인간의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얼마 전 유독 눈에 띈 정수기 CF가 있다. 광고 속 정수기는 출수량과 물 온도를 음성으로 편하게 컨트롤해서 사람이 "하이○○"라고 부른 후 “냉수 몇 밀리미터 줘”라고 하면 원하는 양의 물을 컵에 받아준다. 뿐만 아니라 원하는 물 온도를 요구하는 데로 따라주기도 하고, "한번 더"라는 말을 알아듣는다.
이 광고를 보고 있으면 왠지 살기 편한 세상이라는 생각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기계가 내 말을 모두 알아듣고 버튼 하나로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시대가 머지않아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인식은 점점 우리는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존재론적 회의감에 잠기게 한다.
손 하나 까딱할 필요가 없어지는 최첨단의 세상에서 인간은 정말 SF 영화의 장면처럼 기계의 노예가 되어 그들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만큼 철학과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존재론적 성찰과 깊이 있는 사유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종속적 존재로 전락시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