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뷰 Sep 16. 2021

시와 찬란한 도전

About. 영화《시》


 영화 ‘시’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충격을 선사했다. 평범해 보이는 인물들이 평범한 공간 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고,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종욱이 희진을 성폭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미자가 종욱이를 다그칠 때 아무 말 없이 이불만 뒤집어쓰는 종욱, 미자가 샤워하는 동안 문에 귀를 대고 듣기도 하고 부적절한 관계를 요구하는 강 노인의 표정을 볼 때는 잠시 영화 재생을 멈출 정도로 마음이 불편했다. 영화의 결말에서는 ‘아녜스의 노래’의 ‘작별을 할 시간’이라는 구절 때문에 미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처럼 느껴졌고, 희진의 웃는 모습은 더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영화가 마냥 불편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미자가 시를 통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묘한 벅참이 느껴졌다. 


 이전의 미자는 병원에서 좋아하는 꽃을 보며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정작 그 꽃이 조화인 것을 깨닫지 못할 만큼 대상을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바라보지 못’했다. 어떻게 시를 써야 하는지 또 시적 영감은 어디서 오는지 끊임없이 묻던 미자는 사과를 제대로 보기 위해 골똘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일상에서 노트를 들고 다니며 습작 시를 쓰는 변화를 맞이한다. 심지어 가해자 가족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혼자 밖으로 나가 꽃을 들여다보며 노트에 끄적거리기도 하던 미자가 결국 시 강좌교실에서 유일하게 시를 완성해 제출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그 찬란한 도전을 응원했다.


 ‘살구는 스스로 땅에 몸을 던진다. 깨어지고 밟힌다. 다음 생을 위해’가 ‘아녜스의 노래’에서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의 구절과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자는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을 뿐, 일상에서 충분한 시적 영감을 얻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선인장의 유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