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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저는 승진 안 할래요.

뒤처지기를 자처한 12년차 후배의 용기

by 박계장

2025년 1월, 나는 시청의 정신건강팀장이 되었다. 1993년 3월, 입직하여 지난 32년간 내 정신과 마음 따위는 돌볼 새 없이, 오로지 앞만 보고 채찍질하며 달려온 내가 이제 타인의 마음을 돌보는 자리에 앉아 있다.


나는 그나마 '승리한 생존자'다. 입직 21년 만인 2014년에야 6급 팀장을 달았고, 2022년에야 넓지 않은 문, 5급 사무관 승진을 거머쥐어 구청 과장으로 나갔지만, 입직 동기들 대다수는 스스로 혹은 여건이 맞지 않아 5급 승진을 포기하고 구청 계장에 안주할 때, 나는 그들이 놓아버린 줄을 악착같이 잡고 기어올랐다. 그 결과가 지금의 이 자리다. 누구는 고작 ‘한 끗’ 때문에 그 고생이었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 한 끗 차이가 내겐 내 존재의 이유이자 전부였다. 그것은 단순한 직급이 아니라, 내가 포기하지 않고 버텨낸 지난 날들이 응축된 훈장이었으므로.


시청에는 매년 두 번,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물살이 인다. 인사이동 시즌이다. 보통 행정직은 인원이 많아 자체적인 승진 숨통이 트이는 편이라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지자체를 넘나들지 않는다.


그러나 기술직은 사정이 다르다. 소수 직렬이다 보니 한 구청에만 머물면 윗자리가 날 때까지 하세월을 기다려야 하는 '승진 정체'가 빈번하다. 그래서 시와 구·군이 인력을 한 데 섞어 순환시키는 통합 인사를 한다. 이는 전문성을 공유한다는 명분도 있지만, 실상은 좁은 문을 넓혀 승진의 기회를 공평하게 나누기 위한 고육지책이기도 하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승진을 꿈꾸는 기술직 공무원들은 결국 업무 강도가 센 시청으로 거슬러 올라와야만 한다. 6급 이상의 자리로 가기 위한 필수 코스이자, 구조적으로 정해진 운명과도 같다. 그래서 인사철이 되면 각 부서에서는 구·군에서 일 잘한다는 '선수'들을 물색해 인사과에 추천하곤 한다.


이번에 우리 팀에 결원이 생겨 적임자를 찾아야 했다. 인사판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역시 평판이다. 수많은 이름과 "누구는 어떻더라" 하는 꼬리표들 사이에서, 문득 한 직원이 떠올랐다.


그 친구는 10여 년 전, 내가 구청에서 6급으로 승진해 무보직으로 근무하던 시절 만난 인연이었다. 당시 신규 직원이었던 그 친구는 결혼 전이라 그런 탓인지 유독 웃음이 많고 밝은 아가씨였다. 구청 업무 특성상 그 친구의 기획력을 확인할 기회는 없었지만, 일이란 닥치면 배우는 법. 나는 후배의 성실함과 밝은 성품을 믿고 수화기를 들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그 친구도 이제 입직 12년 차. 격세지감을 느낀다. 나는 21년이나 걸려 올랐던 그 6급 자리를, 요즘 후배들은 빠르면 10년, 늦어도 12~3년이면 거머쥔다. 베이비부머 세대 선배들의 대거 은퇴가 이어지면서 꽉 막혀 있던 윗자리가 일시에 비었고, 그 덕분에 승진 소요 연수가 기적처럼 단축된 것이다. 공직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물 들어온' 시기였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선배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밀물이 들어오듯 승진 기회가 넘실대는, 노를 젓기만 하면 쭉쭉 나아갈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이 후배 앞에 놓여 있었다.


그 친구의 동기들 중 빠른 친구들은 이미 시를 경유해 승진 티켓을 쥐고 다시 구청으로 내려가기도 했으니, 마음이 급할 것이라 짐작했다. 나는 선배로서, 먼저 그 길을 뚫고 온 생존자로서 '동아줄'을 내려준다는 뿌듯함을 안고 물었다.


"이번에 우리 팀에 자리가 하나 생기는데, 생각 없어? 시로 들어올 때 됐잖아." 내 목소리에는 은근한 힘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수화기 너머로 돌아온 대답은 내 예상의 궤도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팀장님, 좋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그런데 저는... 안 갈래요."


단호했다. 이유를 물으니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라 손이 많이 간다는 현실적인 대답, 그리고 덧붙여진 한 마디가 내 명치를 쳤다.


"저는 조금 이른 승진보다, 지금의 워라벨을 지키고 싶어요."


전화를 끊고 멍하니 달력을 보았다. 후배의 선택이 의미하는 바를 계산해 보았다. 시청에 오지 않고 구청에서 근속승진, 즉 '자동승진'을 기다리겠다는 뜻이다. 7급에서 6급으로의 근속승진은 11년이 걸린다. 통합 인사의 흐름을 타지 않겠다는 것, 그것은 동기들보다 무려 5~6년이나 뒤처지는 길을 스스로 택했다는 뜻이다.


5년. 공무원 사회에서 5년의 격차는 단순한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자존심의 문제이고, 무능력의 낙인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내게는 있었다. 어떻게든 윗사람 눈에 들어 승진 명부에 이름을 올리려 야근을 밥 먹듯 하고, 휴일도 반납하며 발버둥 쳤던 나의 지난 30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후배의 거절이 생경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이해가 되지 않아 마치 다른 차원의 사람을 보는 듯했다. '저 친구는 욕심이 없나? 5년이나 늦어지는데?' 하는 걱정이 들다가, 이내 민망함이 밀려왔다.


나는 그 친구에게 황금 동아줄을 내려주었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후배에게 그것은 평온한 일상을 깨뜨리는 귀찮은 밧줄에 불과했던 것이다. 내가 승진이라는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숨 가쁘게 허공을 디딜 때, 그 친구는 가족과 함께하는 '땅'에 단단히 발을 딛고 서 있기를 택했다.


내가 걸어온 길이 틀린 것은 아니다. 치열하게 살았고, 성취했고,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후배의 길 또한 틀리지 않다. 아니, 어쩌면 그 친구는 나보다 더 지혜로운 계산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직급의 높이가 주는 만족감보다, 매일 저녁 아이와 마주 앉는 식탁의 온기가 더 가치 있다는 계산을.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본다. 붉은 노을이 빌딩 숲 사이로 지고 있다. 승진에 목매지 않고 자신의 속도로 걷는 요즘 친구들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단단해 보인다.


완벽한 균형이란 없을지 모른다. 나는 위로 오르려 발버둥 쳤고, 그 친구는 옆으로 넓어지려 애쓰고 있을 뿐. 서로 다른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내민 손이 부끄러워지는, 그러나 한편으론 그 단단한 거절이 부러워지는 12월의 어느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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