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요, 그 풋고추는 하나도 안 매웠니더

찬물에 밥 말아 삼킨, 그 여름의 오해

by 박계장

그해 여름, 가난은 그림자처럼 우리 가족을 따라다녔다. 부모님은 생계를 위해 4남매를 부산 용호동 단칸방에 남겨둔 채 덕포시장에서 먹고 자며 반찬가게를 꾸리셨다. 방학이 되어 우리 남매들은 부모님을 찾아 시장으로 갔지만, 여섯 식구가 몸을 뉘기에 시장통 쪽방은 턱없이 비좁았다. 결국 동생들은 부모님 곁에 남고, 국민학교 5학년이던 나는 인근 감전동 큰집으로 보내졌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신 그 방에서 맞이하던 여름 새벽은 늘 똑같은 소리로 시작되었다.


새벽 다섯 시. 세상이 미처 눈을 뜨기도 전인 시간, 잠을 깨우는 건 알람이 아니었다. 머리맡의 벽돌만 한 카세트 라디오에서 ‘치지직’거리는 잡음이 먼저 흘러나왔고, 뒤이어 비장한 성우의 내레이션이 새벽 공기를 갈랐다.


“천하의 영웅들이 도원(桃園)에 모여…”


삼국지였던가, 임꺽정이었던가. 말발굽 소리와 장수들의 호령이 좁은 방 안을 휘젓는 사이, 나는 얇은 홑이불 밖으로 코만 내민 채 실눈을 떴다. 환하게 불을 켠 방 아랫목에는 두 노인이 그림자처럼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황금색 바탕에 비취색 고려청자가 그려진 ‘청자’ 담배를, 할아버지는 칠이 벗겨진 분유 통 안에서 엽연초 한 줌을 꺼내 놓고 계셨다. 할머니의 기성품 담배가 그나마 매끄러운 냄새를 풍겼다면, 할아버지의 엽연초는 날것 그대로의 비릿하고 독한 풀 냄새를 뿜어냈다. 서슬 퍼런 연초전매법도 시장통 좌판에서 신문지에 둘둘 말려 팔려나가는 그 ‘썰담배’의 생명력을 막지는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생경한 풍경이지만, 40여 년 전, 그때는 담배 연기가 공기의 일부와 같았다. 버스나 기차는 말할 것도 없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 안에서도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간접흡연이라는 낯선 용어나 타인의 폐를 염려하는 배려 같은 것이 끼어들 틈이 없던, 무던하고 무지했던 시대였다. 어린 손주가 지척에서 단잠을 자고 있어도 노부부의 성냥은 주저 없이 그어졌다.


할아버지의 무릎 앞에는 낡고 두꺼운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영어 콘사이스’. 가끔 들르던 아버지는 내게 그 사전을 어루만지며 말하곤 했다. “이기 내 국민학겨 졸업할 쩍에 교육감 상 받고 탄 기다. 도지사 상 다음인기라.”


두꺼운 가죽 표지를 넘기면 누렇게 바랜 속지 정중앙에 푸른 도장으로 찍힌 ‘상(賞)’ 자가 선명했다. 아버지는 그 글자를 훈장처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그 낡은 영광은 매일 새벽 할아버지의 손끝에서 한 장씩 찢겨 나갔다. 사전의 얇고 질긴 종이는 엽연초를 말아 피우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재료였다.


할아버지는 찢어낸 영어 단어들 위로 썬 담배를 올리고, 투박한 손바닥으로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까지 싹싹 쓸어 담았다. 혀끝으로 침을 발라 종이를 봉한 뒤, 향로 그림이 그려진 성냥을 그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매캐한 유황 냄새가 번졌다. 할머니는 익숙하게 고개를 숙여 영감님의 담배 끝불에 당신의 청자를 맞대셨다.


두 분이 뿜어내는 희뿌연 연기 사이로 라디오 속 영웅호걸들은 천하를 논했고, 부모가 장터에 나가고 없는 빈자리를 채우는 건 그 묵직한 침묵과 연기뿐이었다. 어린 나는 그 매캐함이 싫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냄새가 코끝에 닿아야 비로소 안심하고 다시 잠들 수 있었다.아버지가 그토록 자랑하던 영어 사전이 하얀 재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지는 걸 보며, 하루의 시작을 기다렸다.


큰집에서의 여름 생활은 다 좋았지만 밥상이 유일한 곤욕이었다. 짭짤한 젓갈이 대부분인 반찬은 어린 입에 맞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찬물에 밥을 말아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었다. 며칠을 그렇게 먹었더니, 할머니는 내가 풋고추를 유달리 좋아하는 줄 아셨다.


“야야, 니 함 봐라. 야가 마카 안먹고 요거르 그캐 좋아한다이.”


아버지가 오시는 날에도 할머니는 밥상 한가운데 풋고추를 수북이 쌓으셨다. 입에 안 맞아 그런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확신에 찬 할머니의 눈빛 앞에서 나는 그저 말없이 고추를 베어 물었다. ‘아삭’ 하는 소리와 함께 알싸한 매운맛이 입안에 퍼졌다. 그해 여름 내내 나는 원 없이, 혹은 속절없이 풋고추를 씹어야 했다.


그 계절이 지나고 2년 후, 할아버지는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평생을 마주 보고 연기를 피워 올리던 짝을 잃은 뒤에도 할머니는 담배를 놓지 않으셨다. 오히려 더 깊게, 더 자주 태우셨다. 할아버지를 삼킨 그 독한 연기를 들이마시면서도 할머니는 20년을 더 사셨다. 거동이 힘들어져 윗목에서 아랫목으로 몸을 옮기는 것조차 버거운 말년에도, 앙상한 손가락 사이에는 늘 하얀 막대가 끼워져 있었다.


이제 두 분은 모두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가 아끼던 콘사이스 사전도, 지직거리는 라디오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길을 걷다 눅진한 담배 냄새가 스치면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춘다. 남들에게는 그저 고약한 연기일지 모를 그 냄새 속에서 나는 선명한 새벽을 본다.


해가 짱짱한 여름 날이면 찬물에 밥을 말아 된장 찍은 풋고추를 한 입 베어 물고 싶어진다. 입안 가득 매운 향이 퍼지면, 사전 한 페이지가 타들어 가던 그 새벽의 자욱한 연기 냄새가, 할머니의 구수한 경북 사투리가 환청처럼 들려올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