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은 정교해졌으나 위로의 밀도는 낮아진, 어느 미식의 뒷모습
어느 날 마트의 라면 매대에서 익숙한 주황색 봉지를 발견했다. 과거 우지(牛脂) 파동으로 사라졌다가, 최근 예전 맛을 살려 한정판으로 재출시되었다는 라면이었다. 유년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장바구니에 담았다. 요즘 나오는 다른 라면들에 비해 제법 비싼 가격표가 붙어 있었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그 시절의 맛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만 있다면 그만한 비용은 충분히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냄비를 올리고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봉지를 뜯자마자 풍기는 특유의 고소한 쇠고기 기름 향이 주방을 채웠다. 물이 끓고 면이 익어가는 동안, 나는 드디어 그토록 그리워하던 유년의 맛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정작 조리가 끝나고 첫 국물을 입에 대는 순간, 기대는 이내 생경한 괴리감으로 바뀌었다. 라면 자체가 맛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기술의 발전 덕분인지 면발은 더 쫄깃했고 국물은 예전보다 훨씬 정교하고 깔끔하게 갈무리되어 있는 듯 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 맛'과는 분명한 거리가 있었다.
음식의 맛은 단순히 혀끝에 닿는 물리적인 성분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그 음식을 먹던 당시의 주변 공기, 온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 한 그릇을 마주하던 마음의 간절함이 맛의 기억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나의 기억은 부산 용호동, 가난이 일상처럼 넘실대던 그 빛바랜 마을에서 시작된다. 당시 우리 가족이 살던 동네는 풍요와는 거리가 아주 먼 곳이었다.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집 근처에 있던 통조림 공장에 다니셨다. 대기업의 이름을 빌려 제품을 생산하던 하청 공장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가끔 어머니가 가방에 넣어오시던 ‘쌕쌕 오렌지’ 캔은 우리 형제들에게 최고의 사치였다. 텔레비전 광고에서나 보던 그 귀한 음료 속 알알이 씹히던 과육을 맛보며, 우리는 잠시나마 우리를 둘러싼 가난의 무게를 잊곤 했다.
공장 직원들에게만 저렴하게 판매하던 ‘민캔’ 통조림들은 우리 집 식탁을 지탱하던 중요한 보급품이었다. 겉에 상표나 종이 포장이 되지 않은 민얼굴의 캔들은 투박했지만, 그 속에는 어머니의 땀방울이 담겨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굴통조림이다. 캔을 따면 굴을 삶은 듯한 뽀얀 국물과 함께 어른 엄지손가락만큼 큼직한 굴들이 들어 있었다. 요즘 시장이나 마트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크기였다. 어머니는 그 통조림의 내용물을 국물 한 방울 버리지 않고 그대로 냄비에 부어 라면을 끓여주셨다. 쇠고기맛 라면의 짠맛에 굴의 진한 감칠맛이 배어들고, 우지의 고소함과 굴의 깊은 풍미가 만났을 때의 그 맛은 어린 내게 우주적인 감동을 선사했다. 고된 공장 노동을 마친 어머니가 자식들을 위해 차려낸, 가난한 집안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풍성한 성찬이었다.
만화가 허영만은 그의 작품 『식객』 중 ‘라면 한 그릇’ 에피소드에서 음식의 본질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주인공 성찬의 질문에 한 인물은 구타와 얼차려가 일상이던 군 시절의 라면을 인생의 맛으로 꼽는다. 온몸이 구타로 만신창이가 된 졸병에게 선임은 사과나 위로 대신 라면 한 그릇을 내민다. 아무런 설명 없이 그저 “먹으라”는 명령과 함께 주어졌던 그 라면은, 모진 시간을 견뎌내고 내일을 맞이해야 했던 생존의 음식이었다. 국물은 뜨거웠으나 마음은 한없이 차가웠던 그 순간, 그는 울음 대신 라면을 삼키며 삶의 비정함과 생존의 본능을 동시에 경험한다. 그 라면이 맛있었는지 싱거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음식은 존엄이 짓밟힌 바닥에서도 끝내 버텨내야 했던 시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나의 용호동 굴라면 역시 그 군대 라면과 정서적 궤를 같이한다. 비록 직접적인 폭력은 없었을지 몰라도, 가난이라는 현실은 어린 영혼을 짓누르기에 충분히 가혹했다. 어머니는 차가운 통조림 공장에서 퉁퉁 불은 손으로 캔을 만지며 하루의 고단함을 삭였고, 타지에서 허릿병을 얻어 돌아온 아버지는 집안의 여포가 되어가는 방식으로 당신의 무력감을 표출하곤 하셨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끓여낸 그 진한 굴라면의 국물을 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삶의 무게를 버텨내셨다. 그때 우리가 먹은 것은 라면이라는 인스턴트 식품이 아니라 ‘허기’ 그 자체였고, 결핍 속에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던 절박한 생존의 방식이었다.
결국 라면의 맛은 조리법이나 재료가 아니라 그 음식을 먹었던 순간이 완성하는 법이다. 지금 다시 출시된 우지라면에서 그때의 맛이 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내게는 더 이상 그때만큼 절실한 허기가 없으며, 냄비 하나를 둘러싸고 온 가족이 나누던 그 팽팽한 결속이 풍요의 시대 속에서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언제든 라면을 먹을 수 있고, 원한다면 더 비싼 재료를 얹어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재료가 고급화될수록 그 시절 국물 한 방울이 주던 위로의 밀도는 낮아졌다.
현대인들은 맛있는 음식을 찾아 전국을 헤매고 미식에 열광하지만, 정작 영혼 깊숙이 각인되는 것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마주한 소박한 식탁이다. 가난이 넘실대던 용호동의 좁은 단칸방 안을 채우던 굴 향과 라면 냄새는 이제 내 인생의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되었다. 다시 나온 우지라면을 끓여 먹으며 깨달은 사실은, 내가 그리워한 것이 라면의 물리적 성분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나는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젊음을 고스란히 바쳤던 어머니의 세월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외투에 배어 있던 눅눅한 공장 냄새와 비릿한 소금기는, 사실 차가운 현실의 바람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던 가장 따뜻한 담벼락이었다.
다시는 끓일 수 없는 그 맛을 추억하는 일은, 내가 걸어온 길을 가만히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그 고통스러운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누리는 평범한 밥상이 얼마나 많은 희생 위에 차려진 것인지 잊지 않게 된다. 인생의 바닥에서 삼켰던 그 뜨거운 국물은 내 몸속에 녹아들어 지금까지 나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되었다.
그 시절 라면의 진실은 좋은 우지나 커다란 굴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자식들이 배고픔에 기죽지 않기를 바랐던 어머니의 헌신과, 그 고단한 사랑이 라면 수프처럼 진하게 녹아든 세월에 있었다. 이제는 세상 그 어디에서도 그 맛을 재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나는 남은 라면 국물을 내려다보며 창밖의 어둑해진 풍경을 응시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라면 맛이 아니라, 서로의 눈빛을 보며 천천히 허기를 나누던 그 가난하고도 따뜻했던 시간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