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 일상 속 햇살처럼 스며든 후배와의 재회
어제였다. 퇴직하는 동료의 송별회에 가기 위해 나서던 참이었다. 2025년의 끝자락, 부산시청의 복도는 늘 그렇듯 분주하면서도 어딘가 들떠 있었고, 한 해를 무사히 넘긴 이들의 안도감이 공기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퇴근 무렵의 엘리베이터는 층마다 멈춰 서며 사람들을 실어 나르느라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좁은 공간 안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어깨에 얹은 채 숫자판만 바라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또 한 번 멈췄다. 약속 시간은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괜히 시계를 들여다보며 조급해했을 순간이었다. 하지만 어제는 이상하게도 그러지 않았다. 그저 연말의 들뜬 분위기 탓이라 생각하며 로비로 걸어 나갔다. 그때였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유난히 활기찬 기운을 뿜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 것은.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아니, 유난히 밝고 성실했던 모습으로 기억에 남은 얼굴이었다. 찰나의 순간, 옛 기억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10여 년 전의 풍경이 떠올랐다. 내가 6급으로 승진해 구청으로 내려갔을 때 만났던 서무였다. 당시 그 친구는 막 신규 딱지를 뗀 풋풋한 공직자였다. 하는 일마다 경쾌했고, 발걸음에는 늘 활기가 넘쳤다.
구청의 서무라는 자리는 ‘부과장’이라 불리며 치켜세워지지만, 실상은 온갖 잡무와 민원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자리다. 그런데도 그 친구는 늘 웃으며 그 일들을 묵묵히 해냈다. 실수조차 밉지 않을 만큼 매사 열심이었다. 그 친구를,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시청 로비에서 우연히 다시 마주한 것이다.
오랜만의 만남이었지만 어색함은 없었다. 그 친구는 6급 장기 교육을 마치고 복귀했고, 모임을 위해 동기들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빠져나간 자리를 메운 세대. 내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2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에 비하면, 훨씬 빠른 속도로 그곳에 닿은 이들이다. 시대가 달라졌고, 그만큼 감당해야 할 무게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친구에게선 예전과 다르지 않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팀장님, 저 그때 결혼했었잖아요. 애들이 벌써 열두 살이에요.”
자랑스레 내민 휴대폰 화면 속에는 쌍둥이 아들 둘과 환하게 웃는 네 식구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성실하게 쌓아온 삶의 시간이 그 사진 한 장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구청 복도를 바삐 오가던 그 후배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이자 조직의 든든한 허리가 되어 있었다. 신기하게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맑고 긍정적이었다.
다음 날 아침까지도 그 만남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짧은 안부 문자를 보냈다. “어제 반가웠다. 예전 그 모습이 여전해서 보기 좋더라.” 잠시 후 도착한 답장이 휴대폰 화면을 가득 채웠다.
“팀장님, 어제 진짜진짜진짜 반가웠어요. 2026년은 팀장님께 럭키비키한 한 해가 될 거예요.”
활기찬 인사와 귀여운 이모티콘들이 화면을 채웠다. 그것은 단순한 새해 덕담을 넘어, 매 순간을 긍정적으로 대하는 그 친구만의 삶의 태도처럼 느껴졌다. 늘 딱딱한 공문서와 건조한 업무에 익숙해진 나에게, 그 생동감 넘치는 문자는 삭막한 틈새로 불어온 봄바람처럼 신선했다. 덕분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마음이 따뜻하게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문득 부끄러워졌다. 나는 누군가에게 저런 기운을 건네본 적이 있었던가. 연차가 쌓일수록 우리는 종종 자신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알리기 위해 애를 쓴다. 회식 자리에서 필요 이상으로 목소리를 높이거나, 선배라는 이유로 괜히 어깨에 힘을 주기도 한다. 별로 재미없는 말에도 분위기를 띄우려 억지로 맞장구를 치곤 한다. 하지만 그런 억지스러움은 오래 가지 않는다. 오히려 곁에 있는 사람을 쉽게 지치게 만들 뿐이다.
그에 비해 그 후배의 밝음은 달랐다.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한 기운이었다. 결코 타인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가만히 주변을 따뜻하게 만드는 빛. 소란스럽지 않아도 충분히 환한, 그런 종류의 존재감이었다.
정신건강팀장으로서 늘 시민의 마음을 살피겠다고 말해 왔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동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후배의 문자를 보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럭키비키’란 단순히 운이 좋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의 조각을 찾아내 스스로를 웃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
어느덧 30년을 훌쩍 넘긴 공직 생활을 돌아본다. 수없이 작성한 검토 보고서와 결재 서류들은 차가운 서버 속 데이터로만 남아 있다. 하지만 사람에게 진정으로 남는 건 실적이나 숫자가 아니다. 힘들 때 건넨 눈빛의 온기, 스치듯 나눈 말 속에 담긴 배려 같은 것들이다. 10년이 지나도 좋은 기억으로 남은 그 후배가 이를 증명한다. 그 친구가 머물던 자리는 늘 환했고, 덕분에 주변 사람들의 마음까지 덩달아 밝아지곤 했으니까.
시청 로비의 불은 밤이 되면 꺼지겠지만, 사람 사이에 오간 따뜻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 한구석에 차곡차곡 쌓여, 언젠가 찾아올 쓸쓸한 날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10년 만에 다시 만난 후배는 내게 과거의 기억만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조용한 이정표를 건네주었다.
다가오는 해에는, 나는 조금 덜 말하고 조금 더 밝게 살고 싶다. 목소리를 높여 나를 증명하기보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빛을 발견할 수 있도록 배경이 되어주는 사람. 우연히 마주쳤을 때 먼저 웃으며 손을 흔들 수 있는 선배 말이다. 그것이 내가 뒤늦게 배운 ‘럭키비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