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차의 엔진 소리를 기억하던 너에게

가장 춥고 외로웠던 시절, 나를 기다려준 검사소의 진돌이

by 박계장

소독약 냄새 자욱하던 2012년, 그 겨울의 검사소

살다 보면 문득, 아주 오래전 어느 길모퉁이에 두고 온 마음 하나가 불쑥 고개를 들 때가 있다. 내게는 2012년의 축산물 검사소 앞마당이 그렇고, 거기서 만났던 ‘진돌이’가 그렇다.


어느덧 십수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강산도 변한다는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두 차례의 승진을 했고, 여섯 번이나 근무지를 옮겼으며, 장기 교육도 다녀왔다. 그사이 수많은 사람과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지만, 가끔 시청 광장에서 산책하는 강아지들을 마주할 때면 코끝에 검사소 마당의 소독약 냄새가 실려 오는 것만 같다.


소독약 안갯속의 파수꾼

그해 겨울은 폭풍이 휩쓸고 간 뒤의 적막처럼 유독 스산했다. 전년도에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구제역과 조류독감의 큰 불길은 잡혔지만, 우리는 행여나 살아날지 모를 불씨를 감시하느라 팽팽한 긴장 속에 살아야 했다.


검사소 정문을 통과하는 모든 차량은 예외 없이 속도를 줄여야 했고, 바닥에 설치된 노즐에서는 차량 하부를 향해 하얀 소독약이 거침없이 뿜어져 나왔다. ‘치익’ 하며 거칠게 울리던 날카로운 분사음, 그리고 사방으로 흩날리던 맵고 비릿한 살균 약품의 냄새. 그 삭막하고 긴장된 풍경 속에 덩그러니 놓인 회색빛 건물이 바로 내가 근무하던 곳이었다.


부산의 끝자락이자 양산의 초입, 금정산 자락 밑에 위치한 축산물 검사소는 그 이름만큼이나 건조한 공간이었지만, 그 적막함에 생동감을 불어넣던 유일한 존재가 바로 진돌이였다. 녀석은 아키타와 진돗개 사이에서 태어난 믹스견이었는데, 내 눈에는 세상 그 어떤 명견보다 귀한 기품이 넘쳤다. 진돌이의 세계는 소독약 냄새가 배어있는 검사소 앞마당과 그 뒤편으로 펼쳐진 울창한 금정산이었다.


진돌이의 하루는 청사의 일과에 맞춰 엄격하게 흘러갔다. 근무 시간 동안 녀석은 청사를 오가는 방문객들의 안전을 위해 정해진 자리에 묶여 지내야 했다. 녀석은 마치 자신의 임무를 아는 것처럼, 낮 동안은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검사소의 파수꾼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직원들이 하나둘 퇴근하고 정막이 찾아오는 저녁 무렵, 비로소 목줄에서 풀려난 진돌이는 숲의 주인으로 돌아갔다. 밤새 금정산 자락을 거침없이 뛰어다니며 자연의 냄새를 만끽하던 녀석은, 다음 날 다시 일과가 시작될 무렵이면 약속이라도 한 듯 돌아와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너는 나의 엔진 소리를 기억할까

진돌이는 서른 명 남짓한 직원들의 인기척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구별해 냈다. 출근 시간이면 정문 앞을 서성이다가, 멀리서 들려오는 엔진 소리의 미세한 떨림이나 지하철역 쪽에서 다가오는 발소리만 듣고도 누가 오는지 단번에 알아채곤 했다. 녀석에게 그 소리들은 단순한 출근 신호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대신하는 고유한 리듬이었던 셈이다.


녀석은 유독 자기를 예뻐하던 방역팀 박 주사의 차 소리가 들리면 미리 꼬리를 흔들며 마중할 채비를 했다. 차 문이 열리자마자 펄쩍 뛰어올라 가슴팍에 앞발을 얹곤 했는데, 비라도 오는 날이면 박 주사의 옷이 흙투성이가 되기 일쑤였다. 그래도 박 주사는 녀석의 그런 환대를 타박하지 않았다.


가끔 소장님의 SUV가 육중한 소리를 내며 들어올 때면 진돌이의 반응은 가장 뜨거웠다. 소장님 형님 댁에서 데려온 인연 때문인지, 녀석에게 그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보호자와의 재회를 의미했다.


나와 진돌이의 사이도 다른 누구 못지않게 각별했다. 당시 나는 검사소의 회계와 서무를 도맡아 청사의 살림을 챙기고 있었다. 실험용 닭이나 토끼의 사료를 구매할 때면, 잊지 않고 진돌이가 좋아하는 간식 몇 봉지를 함께 사 오곤 했다. 그것은 팍팍한 업무 속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이자, 녀석에게 전하는 소박한 애정 표현이었다.


당시 나는 승진에서 누락된 채 시청에서 사업소로 내려온 터라, 패배감에 젖어 마음이 한없이 헛헛하던 시절이었다. 그럴 때 진돌이의 정수리에 손을 얹으면, 녀석은 아무 말 없이 자기 머리를 내 손바닥에 밀어 넣었다. 그럴 때면 묵직한 온기가 전해졌다. 녀석이 내 사정을 알 리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그저 내 발소리를 기억해 주고 나를 온전히 반겨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시간은 야속하게도 이별의 순간을 데려왔다. 2013년 여름, 1년 6개월의 근무를 마치고 검사소를 떠나던 마지막 날이었다. 차에 오르기 전, 내게 큰 위로가 되어준 진돌이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녀석은 여느 때처럼 꼬리를 살랑이며 나를 쳐다봤다. 아마 녀석은 몰랐을 것이다. 이제 이 엔진 소리가 들리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내일도 모레도 녀석이 기다리는 그 소리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차 문을 닫고 시동을 걸었을 때, 백미러 속에 비친 진돌이의 모습이 자꾸만 밟혔다. 녀석은 내가 멀어져 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진돌이는 이미 이 세상에 없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진돌이는 여전히 그 마당에서 귀를 쫑긋 세운 채, 멀리서 들려오는 차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미안함, 그리고 뒤늦은 깨달음

요즘 시청에서 막역하게 지내는 어느 팀장은 내게 자식 같은 반려견 '훈이' 이야기를 종종 들려준다. 사전 설명 없이 들으면 영락없는 늦둥이 아들 자랑이다. 퇴근길 현관문 여는 소리만 들려도 마치 그가 세상의 전부인 양 달려 나오는 녀석. 그 맹목적인 사랑 덕분에 품을 떠난 자식들의 빈자리가 무색해진다는 그의 고백 속에서, 훈이는 단순한 반려견 그 이상의 존재처럼 느껴진다


점심시간, 시청 녹음광장을 주인과 발맞춰 걷는 개들, 예쁜 옷을 입고 유모차에 올라탄 강아지들, 그리고 녀석의 눈을 맞추며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사람들의 모습. 훈이를 향한 팀장의 각별한 마음과 이런 풍경들이 겹쳐질 때면, 나는 자연스럽게 그 시절의 진돌이가 떠오른다.


이제 개는 집을 지키는 파수꾼이 아니라 삶을 공유하는 동반자가 되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헐거워질수록, 우리는 역설적으로 말 못 하는 짐승에게서 더 큰 위로를 얻는지도 모른다. 복잡한 셈법이나 체면 없이, 오직 나라는 존재를 온몸으로 반겨주는 그 조건 없는 사랑. 어쩌면 우리는 그 순수한 온기 앞에서야 비로소 무장을 해제하고 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풍경을 보며 흐뭇해하다가도, 문득 진돌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밀려온다. 녀석에게도 차가운 시멘트 마당이 아닌 따뜻한 거실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서른 명 남짓한 사람들의 발소리와 차 소리를 일일이 구별하며 온 신경을 돋우지 않아도 되는 삶이었다면, 오직 한 사람의 지극한 사랑만을 받으며 살았다면 녀석의 견생은 조금 더 포근했을까.


진돌이가 바란 건 거창한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자기를 잊지 않고 다시 찾아와 줄 거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었을 테다.


‘여기 그대로 있어’, ‘내일 또 올게’ 같은 소리 없는 약속들 말이다.


그때는 내 코가 석 자라, 그 작은 녀석이 온몸으로 건네던 기다림의 무게를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꼭 내 집 마당에 묶어두고 '내 개'라고 불러야만 가족이 되는 건 아니었다. 서로의 발소리를 기억하고 반가워했던 그 마음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깊은 사이였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오늘도 도로 위엔 수많은 차가 달린다. 시동을 걸 때마다 느껴지는 이 작은 진동이, 가끔은 오래전 그 마당에 두고 온 미안함을 툭 건드린다. 삶은 계속 흐르고 만남은 흩어졌지만, 어떤 기억은 끈질기게 그 자리에 남아 누군가 다시 시동을 걸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