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내어준 부모 마음

'소중한 생명팀'이라는 예쁜 이름을 버린 이유

by 박계장

1. 일곱 식구 중 가장 애틋한 사이

2026년 1월, 해가 바뀌며 사무실 풍경도 달라졌다. 우리 과는 이제 총 7개 팀이다. 가장 안쪽 주무팀을 제외하고 나머지 팀들은 파티션을 사이에 두고 한 줄씩 마주 보는 구조가 되었다.


우리 정신건강팀은 이번 개편 때 원래 쓰던 자리를 내어주고 오른쪽 줄로 옮겨 앉았다. 그리고 비워진 왼쪽 줄, 파티션 바로 건너편에 신설된 '자살예방팀'이 짐을 풀었다. 이제 우리는 파티션 하나를 사이에 두고 기찻길처럼 나란히 앉아 있다.


물리적 공간은 분명히 나뉘었다. 내가 속한 오른쪽 줄은 정신건강증진, 중독예방, 요양·재활 시설 관리 업무를 맡아 묵묵히 제 몫을 해내고 있다. 반면 왼쪽 자살예방팀은 막 신설된 탓에 쏟아지는 현안들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하지만 이름만 나뉘었지 우리는 동전의 양면이나 다름없다. 정신적 어려움은 자살 위기로 이어지고, 위기를 넘긴 사람은 다시 마음 치유가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시작이자 끝인 셈이다.


작년까지 우리 팀에서 홀로 자살예방 업무를 맡았던 김 주무관도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혼자서 감당하던 일을 이제 셋이 나누었으니 짐이 좀 가벼워져야 할 텐데, 사업 계획을 세우고 이런 저런 회의 준비 때문에 파티션 너머로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2. 아픈 현실을 직시하다

작년 이맘때, 1년간의 장기교육을 마치고 내가 정신건강팀장으로 갓 발령받았던 때가 생각난다. 다행히 정신건강 업무는 실무자 시절 오랫동안 해오던 일이라 생소하지는 않았지만, 맡은 일만 하던 때와 달리 팀장으로서 시의 정신건강 사업 전반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감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그 무렵 시장님께서 "인력이나 조직을 확대해서라도 자살 예방에 총력을 다하라"는 지시를 내리셨다. 그 한마디는 내게 단순한 업무 지시가 아니었다. 꽉 막혀있던 인력 문제를 뚫을 수 있는,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명분'이었다. 실무자 시절부터 숫자로 전해지는 수많은 죽음의 무게를 감당하며 느꼈던 무력감, 그 빚을 갚을 기회가 드디어 온 것이다.


우리는 즉시 전담팀 신설 준비에 들어갔다. 과장님과 머리를 맞대고 팀 명칭을 두고 치열하게 고민했다. 처음엔 '소중한 생명팀'이라는 따뜻한 이름을 떠올렸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주는 거부감과 공포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긴 논의 끝에 우리는 아픈 현실을 에둘러 포장하지 말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죽음을 막는 일은 듣기 좋은 말잔치가 아니라, 가장 처절한 현실과 마주하는 싸움이다. 중앙부처가 굳이 '자살예방정책과'라는 직설적인 명칭을 쓰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치기로 했다. '자살예방팀'. 그것은 우리의 선전포고였다.


팀 신설을 요구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반론은 "부산시로 부터 전문기관이 업무를 위탁받아 사업을 추진하는 ‘광역자살예방센터’가 있는데, 굳이 시청에 팀이 또 필요하냐"는 것이었다. 모르는 소리다. 센터의 전문가들이 상담하고 현장을 뛰지만, 그들은 엄연한 민간인 신분이기에 행정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경찰, 소방, 복지 부서와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예산을 확보하며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를 거는 건 결국 행정이 해야 할 몫이다. 손발이 아무리 훌륭해도 머리와 심장이 없으면 뛸 수 없다. 자살예방팀은 바로 그 행정적 컨트롤 타워가 되어야 했다.


우리는 시장님의 지시사항과 이 분명한 당위성을 무기로 삼아 조직관리팀에 팀 신설을 강력히 요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차가웠다. 조직관리팀은 "시장님의 지시는 무조건적인 조직 신설이 아니라, 기존 조직을 진단하고 효율적으로 재편하라는 뜻 아니겠느냐"며 우리의 요구를 일축했다. '총액인건비'라는 절대 원칙 앞에서는 시장님의 말씀조차 방패가 되지 못했다. 결국 팀을 신설하려면 기존의 다른 팀을 없애거나 업무를 통폐합해 정원을 확보해오라는 숙제만 되돌려 받았다. 생명을 살리자고 시작한 일인데, 다른 조직의 생존을 위협해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씁쓸했다.


부산의 자살률은 특·광역시 중 줄곧 1, 2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데, 우리는 출발선에도 서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속만 타들어가던 여름, 꽃다운 아이들 셋이 함께 세상을 등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가 주저하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이 벌어진 비극이었다. 그 아픔이 지역사회를 뒤흔들고 나서야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규정보다 생명이 먼저라는 당연한 사실이 증명되기까지 참으로 긴 시간이 걸렸다.

그 뼈아픈 계절을 지나, 마침내 2026년 1월, 내 왼쪽 줄에 ‘자살예방팀’이 탄생한 것이다.


3. 안방 내어준 부모 마음

그렇게 힘들게, 정말 어렵게 만든 팀이다. 그런데 막상 안방 내어주고 옆으로 비켜앉으니 기분이 참 묘하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김 주무관과 내 왼쪽에 앉은 신임 팀장이 뭔가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내 옆에 붙어 앉아 "팀장님, 이거 어떡합니까" 하고 꼬치꼬치 물어봤을 일들을, 이제는 자기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의논하여 결정한다.


이게 꼭 자식 장가보낸 부모 마음 같다. 데리고 살 때는 방 좁다고 빨리 나가라고 등 떠밀었는데, 막상 짐 싸서 나가니까 집이 너무 휑해 보인다. 밤늦게까지 불 켜놓고 예산 조금 더 따보겠다고 씨름하고, 의회 질의서 붙들고 끙끙대던 기억들이 저 왼쪽 줄, 그 치열했던 자리에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토록 힘들다며 진저리를 쳤는데, 그 치열함조차 삶의 비늘처럼 몸에 박혀버린 모양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아니면 안 된다’, ‘우리 팀이 제일 고생한다’는 그 오만하고도 절박했던 착각이, 지난 시간을 버티게 한 유일한 닻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는 오른쪽 자리에서 '정신건강팀장'으로서의 업무에 집중한다.


4. 파티션 너머의 응원

오후 업무를 보다가 잠시 고개를 들어 파티션 너머를 바라봤다. 신임 팀장이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아마도 자살예방대책추진TF의 운영 방안이나, 굳어버린 자살률 그래프를 꺾을 획기적인 사업을 구상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다.


순간, '내가 하던 일인데', '내가 더 잘 아는데' 하는 묘한 감정이 습관처럼 불쑥 고개를 든다. 하지만 솔직해져야 한다. 그것은 책임감이 아니라 미련이고, 일종의 오만이다. 내가 비운 자리는 이미 그의 열정과 새로운 시각으로 채워졌다. 그는 시청의 핵심 부서를 두루 거친 베테랑 행정직이라 나보다 행정 절차에 밝고, 보고서의 군더더기를 쳐내는 솜씨도 매끄러울 것이다. 내가 뜨거운 감정으로 붙들고 씨름했던 일들을, 그는 차분하고 이성적인 행정의 언어로 풀어내리라 믿는다.


파티션은 우리를 갈라놓은 벽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각자의 전문성을 단단하게 지탱해 주는 등받이다. 내가 오른쪽에서 정신건강의 토양을 단단히 다져놓아야, 왼쪽의 그들이 급류에 휩쓸린 사람들을 건져 올릴 때 발을 디딜 수 있다. 반대로 그들이 위급한 불길을 잡아야, 우리가 그을린 마음들을 치유할 수 있다. 우리는 둘로 나뉘었으나, 결국 하나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등을 맞대고 선 전우들이다.


이제 내 역할은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시어머니'가 아니다. 그들이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우다 지칠 때, 언제든 돌아와 숨 고를 수 있는 든든한 후방 기지가 되어주는 것이다.


보고서와 씨름하는 신임 팀장에게 다가가 "바람이나 쐬러 갑시다"라며 말을 건네야겠다. 거창한 위로 대신 사무실 밖을 잠시 함께 걷는 것. 딱 그 정도의 담백한 응원이면 충분할 것이다.

이전 06화깨진 채 멈춰버린 할아버지의 '라도 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