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無我), 나를 비워야 비로소 채워지는 것들

음악감상실 '무아'의 추억과 하모니카 선율에 담은 그리움에 관하여

by 박계장

1991년 부산 광복동, 용두산공원으로 향하는 시멘트 계단 옆에는 ‘무아(無我)’가 있었다. 스물한 살의 나는 낡은 계단의 균열을 조심스럽게 딛으며 그곳으로 스며들곤 했다. 입장료 이천 원. 그 돈으로 내가 사려던 것은 목을 찌르는 콜라 한 잔이 아니라, 도시의 소음을 단번에 소거해 줄 농밀한 어둠이었다.


무거운 암막 커튼을 젖히고 들어가는 순간, 등 뒤의 빛은 가차 없이 잘려 나갔다. 내부의 열기는 환기되지 않은 수백 명의 숨결로 텁텁했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빛을 발하는 섬은 구석진 DJ 박스뿐이었다. 마이크를 잡은 DJ의 목소리는 스피커를 타고 내려와 손님들의 어깨 위에 묵직한 먼지처럼 내려앉았다. 부산 사투리가 시장통의 거친 언어라면, 그의 매끄러운 서울 말씨는 어둠 속에서만 유효한 비밀스러운 신호였다.


나는 당대의 최신 가요보다 7080의 통기타 선율에 몸을 파묻었다. 나무 울림은 시대를 앞지르려 애쓰지 않았고, 딱 우리가 걷고 싶어 하는 속도로 천천히 넘실거렸다. 가끔 무대로 올라온 손님들이 서툰 기타를 치다 박자를 놓쳐도 누구 하나 야유하지 않았다. 그 투박한 음 이탈이야말로 그 시절이 가진 정직한 얼굴이라고 믿으며, 나는 무아의 고인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2018년 여름, 중앙동 뒷골목 호프집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다 건너편 건물의 한구석을 보았다. ‘무아’라는 간판이 박제된 채 걸려 있었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스물한 살의 계단과 어둠 속 목소리들을 쏟아냈지만, 함께 있던 상사는 그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내 기억은 공유될 곳을 찾지 못한 채 맥주잔 속에서 솟구치는 기포처럼 허망하게 흩어졌다. 내가 형님이라 부르며 따랐던 그 상사마저 퇴직 후 세상을 떠나자, 무아의 어둠은 이제 나만의 고독한 영토가 되었다.


2024년 전북 완주, 낯선 교육원의 적막을 채우기 위해 하모니카를 손에 쥐었다. 처음엔 가벼운 소품인 줄 알았으나, 그것은 내 숨의 미세한 떨림까지 가감 없이 폭로하는 예민한 거울이었다. 하모니카가 열 개로 늘어날 무렵, 나는 조영남의 <제비>라는 곡 앞에 멈춰 섰다.


<제비>의 주선율은 매끄럽지만, 그 이면에는 반음(半音)의 굴곡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 C키와 C#키 두 대를 겹쳐 쥐고, 그 좁은 틈새 사이로 정확한 양의 공기를 밀어 넣어야 했다. 조금만 숨이 넘쳐도 음은 거칠게 깨졌고, 모자라면 리드는 침묵했다. 상하로 바쁘게 오가는 호흡 속에서 입술은 금속의 서늘한 감촉에 익숙해져 갔다. 화려한 기교보다 중요한 것은 숨을 참고 견디며 다음 음을 기다리는 절제였다.


반복되는 연습 끝에, 두 대의 하모니카는 어느덧 손바닥의 일부처럼 맞물렸다. 그때 깨달았다. 인생의 한 곡은 반듯한 메이저(Major)의 선율뿐만 아니라, 그 사이를 메우는 굴곡진 반음의 호흡들이 모여 완성된다는 것을.

마지막 마디를 불어 끝냈을 때, 악기를 타고 흐르던 미세한 진동이 멈췄다. 스물한 살 무아의 어둠 속에서 타인의 목소리로만 소비하던 노래가, 이제야 내 정밀한 호흡을 통과해 온전한 나의 선율로 터져 나왔다. 이제 나에게는 시절을 증명해 줄 목격자 따위는 필요치 않다. 내 입술에 닿았던 하모니카의 단단한 감촉과, 스스로 제어해 낸 이 정직한 숨이 곧 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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