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잡지 한권에서 발견한, 나를 살게 하는 타인의 진심
"공무원은 글로 말하는 사람이야. 자네의 글은 기록이 되고, 그 기록이 쌓여 결국 역사가 되는 거지."
1993년 봄, 갓 입직한 내게 과장님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누누이 말씀하셨다. 그 말은 내게 일종의 신조가 되었다. 공문서를 작성할 때 문맥이 어긋나거나 흐름이 어색하지 않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내 공직 인생 33년을 지배했다. 정책을 입안하는 굵직한 계획서부터 민원인에게 보내는 작은 시행문 하나까지, 혹여 비문은 없는지 혹은 행간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아 오해를 사지는 않을지 살피며 문장 하나하나에 무게를 실었다. 그렇게 세월이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행정 문서를 다루는 일은 내게 숨 쉬는 것만큼이나 익숙하고 자신 있는 '업'이 되어 있었다.
그런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글을 써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도 거침이 없었다. 틈틈이 써두었던 스무 편 남짓의 글을 밑천 삼아, 지난 10개월 남짓, 홀린 듯 글을 쏟아냈다. 발행 버튼을 누를 때마다 그동안 공문서의 칸 안에 가두어 두었던 개인적인 감정들이 쏟아져 나오는 듯했다. 내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뚫리는 기분이 들었고, 타인의 인정을 확인하며 스스로를 들볶았다. 잘 썼다는 누군가의 한마디가 고팠고, 누군가 누른 하트가 하나 둘 차곡 차곡 늘어날 때면 내심 우쭐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공문서라는 딱딱한 껍데기 뒤에 숨겨왔던 ‘나’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는 일에만 열을 올렸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덜컥 겁이 났다. 매일 밤 습관처럼 마주하던 모니터의 커서가 무심하게 깜빡이는데 도무지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이 텅 빈 깡통처럼 웅웅거렸다. 33년 차 공직자로서의 숙련된 기술도, 밤잠을 설치며 쥐어짜 낸 열정도 소용이 없었다. 곳간이 텅 비어버린 것이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이 있지만, 그건 반만 맞는 말이었다. 엉덩이로 버티기 전에 가슴에 들어찬 게 있어야 했다. 농사꾼도 씨를 뿌리고 볕을 쬐어 주어야 가을에 거둘 게 있는데, 나는 파종도 없이 평생 모아둔 기억의 창고를 털어 추수만 하려 들었던 셈이다.
그 무렵, 우연히 월간지 <좋은생각>에 투고한 글이 실리게 되면서 1년간의 정기구독권이 생겼다. 매달 집으로 날아오는 그 얇은 책자는 내게 마른 우물을 적셔주는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되었다. 처음엔 남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내 글은 남들이 끝까지 읽어주길 바랐으면서, 정작 나는 남의 진심 어린 사연 한 줄을 진득하게 읽지 못하는 오만함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잡념이 줄어든 자리에 타인의 목소리가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나는 ‘채움’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책 속에는 내가 흉내 낼 수 없는 진짜 삶의 문장들이 있었다.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자신을 앞이 보이지 않는 몸으로 정성껏 뒷바라지해 준 고모에게, 이제는 어른이 된 조카가 "고모는 내게 고모가 아니라 엄마였다"고 고백하는 대목에서는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함이 밀려오며 눈물이 났다. 늦은 밤 귀가하는 손녀가 걱정되어 어두운 골목을 서성이면서도, 막상 손녀와 마주치면 미안해할까 봐 매번 "볼일이 있어 잠깐 나왔다"며 서툰 거짓말을 건네던 할아버지의 사연 앞에서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것은 잘 꾸며낸 문장이 아니라, 삶의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숭고한 진심들이었다.
유독 시선이 머문 건 귤 한 알에 얽힌 사연이었다. 직장 일에 지친 아내에게 “귤이 안 시고 달더라. 당신 생각이 났어”라며 귤 한 알을 건네는 남편의 투박한 진심 앞에서는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사랑은 거창한 맹세가 아니라, 맛있는 걸 먹을 때 문득 떠오르는 얼굴 같은 사소한 마음에 있다는 것. 그 짧은 사연들이 내가 잊고 지냈던 내 곁의 소중한 풍경들을 다시 보게 했다.
돌이켜보니 내 글이 메말라간 이유는 명확했다. 삶의 방향이 줄곧 밖으로만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정책을 다듬는 일에 매몰되어 에너지를 소진하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었다. 글쓰기마저도 내 안에 남은 것들을 털어버리는 또 다른 배출의 과정으로만 여겼다. 우물은 스스로 솟기도 하지만 하늘의 비를 받아내고 땅속 물줄기와 연결되어야 마르지 않는 법인데, 나는 연결 통로를 닫아둔 채 바닥까지 긁어내고 있었다.
채우지 않고 퍼내기만 하는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 전에, 먼저 잘 채워진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깨닿게 되었다.
매달 초입이면 우편함 안을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그 얇은 책자가 도착할 무렵을 손꼽아 기다리며 남의 삶을 읽고 밑줄을 긋는 동안, 텅 비었던 마음의 곳간에도 다시 무언가 차오르는 기분이다. 쓰는 시간보다 남의 글을 읽는 시간이 길어진 요즘, 역설적이게도 쓰고 싶은 마음은 이전보다 더 단단하고 건강해졌다.
책 표지 위로 가만히 손바닥을 올려본다. 고작 백이십여 페이지에 불과한 얇은 책이지만, 그 속에 꾹꾹 눌러 담긴 타인의 진심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게 전해온다.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내일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때, 무언가 써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은 '한 사람'으로서 세상을 마주하려 한다. 내일 내 곁을 스쳐 갈 수많은 '귤 한 알' 같은 순간들을 기쁘게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