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운이 누군가에게는 뜻밖의 행운이 되는 아이러니
2년 전 5월, 서울역. 지하철 개찰구를 빠져나왔을 때 시계는 17시 0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컨퍼런스 발표 순서가 지연되면서 열차 시간은 벼랑 끝으로 몰렸다. 주말 오후, 지하 2층에서 지상 2층 승강장까지 3분 안에 주파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음 열차는 전석 매진. 선택지는 없었다. 나는 뛰었다.
에스컬레이터를 두 칸씩 밟아 오르자 심장이 흉곽을 두드렸고 셔츠 등판이 땀으로 축축하게 감겼다. 승강장 입구에 다다랐을 때, 이미 출발 시각을 1분 넘기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려는 찰나, 앞서 달리던 사내의 서류가방이 보였다. 어깨너머로 날리는 넥타이, 대리석 바닥을 찍어 누르는 구두 굽 소리. 그가 포기하지 않았기에 나도 멈추지 않았다.
승강장에 들어서자 역무원이 손을 들어 외쳤다. "빨리요!" 앞선 사내가 닫히려는 문틈으로 몸을 던졌고, 나도 그의 등을 밀치듯 뒤따라 굴러 들어갔다. 등 뒤에서 금속음과 함께 문이 닫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닫힌 문을 바라보는데,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내가 탑승할 수 있었던 건 내 속도 때문이 아니었다. 앞선 사람들이 문을 가로막고 지체해 준 덕분에, 그 틈새가 아주 잠시 나에게 허락되었을 뿐이다. 그 순간, 3년 전 겨울의 기억이 겹쳐졌다. 그때 나는 승진 심사라는 열차를 놓쳤다.
당시 내 이름은 심사 대상자 명부의 붉은 선 아래에 있었다. 승진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연말 퇴직 예정자들이 명부의 상단을 채웠고, 나는 정확히 그 인원수만큼 밀려났다. 심사가 해를 넘겨 1월에만 열렸어도 퇴직자들의 자리는 공석이 되어 내 차례가 되었을 것이다. 고작 며칠의 차이였다.
승진자 명단이 발표된 다음 날, 나는 도망치듯 연가를 냈다. 무작정 핸들을 꺾어 도착한 곳은 철 지난 해수욕장이었다. 차창을 내리자 소금기 머금은 바람이 뺨을 때리듯 들이닥쳤다. 편의점에서 산 식은 캔커피를 쥐고 파도를 보았다. 거품을 물고 부서지는 파도가, 밀려나고 또 밀려나는 내 처지와 닮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복기해 보니, 그때의 '낙오'는 단순한 불운이 아니었다. 내가 1년 동안 승강장에 남아 기다린 덕분에, 다음 열차의 문은 더 넓게 열렸다. 내가 턱걸이로 승진해 버렸다면 닫혔을 문이, 내가 밀려남으로써 이듬해 여러 명의 동료를 한꺼번에 태울 수 있는 광폭의 문이 되었다. 심사 대상 범위가 확장되면서 후순위였던 동료들까지 구제받았다. 나의 정체가 누군가에게는 소통(疏通)이 된 셈이다.
올해 인사위원회는 1월 7일에 열렸다. 연말로 예정됐던 심사가 연초로 밀린 것이다. 사무실에서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2년 전 서울역에서 헐떡이며 맡았던 매캐한 먼지 냄새를 떠올렸다. 이번에는 늦어진 그 며칠 덕에, 누군가는 예상보다 빨리 명부에 이름을 올렸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시간을 빚지며 산다. 그때 내가 KTX 좌석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던 건, 누군가가 문을 잡고 버텨준 덕분이었다. 반대로 나의 실패와 지체됨이, 내 뒤에 오는 누군가에게는 절호의 타이밍이 되기도 한다. 열차는 달리고,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열린 문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