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점에서 영화표를 사고

정가의 절반, 초대권

by 박계장

서면 분식집 벽에서는 설레는 입장권이었고, 대저동 식료품점 벽에서는 그저 구겨진 종이 쪼가리였다. 똑같은 배우가 웃고 있었지만, 서면의 미소는 유혹이었고 대저동의 미소는 얼룩이었다. 1986년, 열여섯의 나는 버스를 갈아타며 그 두 세계를 오갔다.


토요일 아침 교실은 일주일 치 땀 냄새로 후텁지근했다. 외박을 나가는 날이라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었다. 칠판의 글씨도, 선생님의 목소리도 귓등을 스칠 뿐이었다. 오전 수업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즈음 4교시 마침 종이 울렸다. 종례 시간, "사고 치지 말아라" 하는 담임 선생님의 당부를 뒤로한 채 우리는 서둘러 교문을 빠져나갔다.


내가 다니던 부산기계공고에는 2,700여 명의 학생이 있었다. 고등학교라기보다는 작은 대학 캠퍼스 같았다. 학년별 교사와 실습동, 도서관이 줄지어 있었고 절반 이상의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했다. 서부 경남 출신이 많았지만, 부산 토박이인 나도 통학이 불편해 기숙사를 택했다.


맑은 날, 학교에서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1학년 건물 창가에 서면 대마도가 손에 잡힐 듯 선명했다. 너무 가까워 보여서 정말 저곳이 일본 땅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헤엄쳐서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종종 창가에 서서 멍하니 그 섬을, 닿을 수 없는 바깥세상을 바라보곤 했다.


집은 강서구 대저동이었다. 307번 좌석버스로 한 시간 반이 걸리는 그 거리에서 열여섯의 주말 대부분이 흘러갔다. 어느 토요일, 해운대 종점에서 나는 집으로 가는 307번 대신 40번 버스에 올랐다. 수영교차로와 문현동 고개를 넘어 서면 일번가에 내렸다.


골목 안쪽, 칠이 벗겨진 분식집 문을 열자 익숙한 기름 냄새와 멸치 육수 향이 훅 끼쳐 왔다. 나는 습관처럼 벽면을 훑었다. 최신 영화 포스터가 빈틈없이 붙어 있었다.


"아줌마, 표 있어요?"


주방에서 나온 아주머니가 앞치마에 젖은 손을 쓱쓱 닦으며 계산대 밑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영화 초대권이었다. 어떤 경로로 흘러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가격은 정가의 절반이었다. 서면 분식집에서 그 포스터는 표를 판다는 암묵적인 신호였다. 포스터가 붙은 곳에선 으레 초대권을 구할 수 있었으니, 내게 그것은 곧 입장권이나 다름없었다. 아주머니의 퉁명스러운 손끝에서 빳빳한 종이 한 장을 건네받고, 나는 칼국수 한 그릇을 시켰다.


배를 채우고 극장으로 들어갔다. 객석의 불이 꺼지고 어둠이 내렸다. 그제야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스크린 속, 내가 가본 적 없는 도시의 보도블록 위로 주인공의 구두 굽 소리가 또각또각 울렸다. 양복 입은 남자들, 하이힐 신은 여자들이 활보하는 그곳에는 흙 냄새도, 거름 냄새도 없었다. 대저동의 질척한 논길도, 투박한 장화도 없었다. 나는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그 화려한 도시의 일원이 되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섰다. 구포행 버스를 타고, 다시 김해로 가는 시외버스로 갈아탔다. 버스가 구포다리에 올라설 때쯤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덜컹거리는 진동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차창 밖으로 낙동강이 붉게 물들고, 강변의 비닐하우스들이 노을을 받아 번들거렸다. 다리가 끝나고 넓은 논밭이 펼쳐지자 버스 안으로 익숙한 거름 냄새가 스며들었다. 대저동이었다.


우리 집은 대저 서연정마을 한가운데 있는 작은 식료품점이었다. 어느 날 영화 홍보업자가 찾아와 가게 벽에 포스터를 붙이고는 초대권을 주고 갔다. 업자가 양동이에서 붓을 꺼내 쓱쓱 풀을 바르자 회색 벽면이 순식간에 반들거렸다. 포스터를 펼쳐 붙이니 얇은 종이가 풀을 먹어 금세 우글쭈글해졌다. 서면 분식집 벽에서 봤던, 바로 그 포스터였다.


가게를 드나들 때면 그 포스터가 보였다. 하지만 여기, 우리 가게 밖 벽에 붙은 포스터는 그저 비에 젖고 햇볕에 바래갈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배우의 미소는 어색했고, 풀 먹은 종이의 구겨진 자국만이 선명했다.


흙 묻은 장화를 신은 손님들은 포스터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들에게 저 종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나만 알고 있었다. 저것이 서면의 어둠 속에서는 얼마나 반짝거리는 꿈이었는지를.


지금도 구포다리를 지날 때면 그때가 떠오른다. 멸치 육수 냄새가 배어 있던 초대권, 극장의 서늘한 어둠, 그리고 붉게 저물어가던 낙동강. 서면에서는 입장권이었으나 대저동에서는 그저 구겨진 종이였던 그것. 같은 것도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는 것을, 나는 그 흔해 빠진 포스터 한 장에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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