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이라는 이름의 무게

by 박계장

“뭐니 뭐니 해도, 승진이 최고 아입니꺼?”


최근 시청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당선된 후보가
유세 때마다 외치던 구호다.


“자리를 많이 만들겠습니다!”라는 말에
“그렇지, 그렇지” 하며 박수치는 이도 있었고,
“아서라, 자리가 무슨 두부도 아이고 썰면 나오나”
고개를 젓는 이도 있었다.


공무원에게 승진은
단순한 직급 상승이 아니다.


존재에 대한 인정이고,
시간과 경력에 대한 보상이며,
때로는 조직 안에서 나의 무게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말한다.
“난 승진에 연연하지 않아.”


하지만, 정말 그럴까.
속마음은 다르다.
기대했다가 실망하지 않기 위해
애써 무심한 척할 뿐이다.


그 말에는
체념도, 자기방어도 함께 스며 있다.


승진은 언제나 민감한 문제다.


입직 연도가 빠른 사람은
오랫동안 조직을 지켜온 자신을 내세우고,
늦게 들어온 사람은
성과와 실적으로 자격을 주장한다.


각자의 논리는 분명하고,
기대 또한 간절하다.


하지만 자리는
언제나 한정되어 있다.


승진은 인사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예정 인원이 정해지면,

그보다 많은 후보가 오른다.
1자리를 두고 7명이 경쟁하는 일도 있다.


형식적으로는
그 안에 들면 누구에게나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만,
사실 그 안에서도
이미 서열은 나뉘어 있다.


성과가 특별하지 않다면
결국 평정순위가 당락을 가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일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공직사회에서의 평정은
단순한 업무 평가가 아니다.


성과는 기본이고,
얼마나 눈에 띄었는지,
누구와 함께 일했는지,
평가자와의 관계는 어땠는지,


여러 요소가 점수의 이면을 채운다.

때로는
일의 내용보다
그 일이 어떻게 ‘보였는지’가 더 중요할 때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업무 외적인 부분까지 신경 쓴다.


부서장이 술을 즐기면
퇴근 무렵 자연스럽게 자리를 마련하고,
늦은 밤엔 택시를 불러 요금까지 챙긴다.


정치 성향이 달라도
상사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자기 생각은 조심스레 접어둔다.


명절이면 작은 선물에 안부 인사를 더해
마음을 전한다.


그 모든 행동의 바탕엔
괜히 미운털 박히지 않으려는 마음,
그리고 놓칠 수 없는 기회를 위한
나름의 생존 방식이 깔려 있다.


그렇게까지 애쓰는 이유는
작은 차이 하나가
큰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6급이나 5급 승진은
단순히 부서장의 판단에 그치지 않는다.


소속 국 전체 과장들의 의견이 더해지고,
누가 승진할지를 가르는 기준은
더 복잡해진다.


이를 아는 직원은
평소 교류조차 없던 옆 부서 과장을 찾아가
낯선 인사를 건네며 지지를 부탁한다.


서툴고 어색한 순간이지만,
그만큼 절실하다는 뜻일 것이다.


평정 결과에 이의가 있을 경우
소명의 기회가 주어진다.


왜 자신의 순위가 부당한지,
비교 대상자는 어떤 점에서 적절치 않은지를
조목조목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의가 받아들여지는 일은 드물다.
결과는, 이미 정해진 듯 움직인다.


나는 다행히
후배와 다투는 불편한 상황은 겪지 않았다.
오히려 선배보다 평정이 앞서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사무관 승진을 앞두고
유력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6개월을 더 기다려야 했다.


결과는 숫자로 정리되지만,
그 시간은 생각보다 길게 느껴진다.


나의 경험이 특별했던 건 아니다.
많은 이들이 그런 시간을 통과한다.
평정 발표일마다
사무실의 공기는 미묘하게 달라진다.


겉으로는 평소처럼 일을 하지만,
자리마다 긴장감이 감돈다.


누군가는 말을 줄이고,
누군가는 애써 웃어 보인다.


그런 날에는
평가에 억울함을 느낀 직원이
과장이나 국장을 찾아가
이유를 묻기도 한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았다는 서운함에
며칠간 휴가를 내고
모습을 감추는 이도 있다.


승진자가 발표된 뒤에는
공정하지 못한 방식으로 평정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한다.


공무원의 승진은
정해진 기준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과정에는
언제나 해석의 여지가 있다.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고,
받아들이는 감정도 다르다.


그래서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는 바란다.


정직하게 일한 사람이
불이익을 받지 않고,


성과와 실력만으로도
평가받을 수 있는 조직이기를.


그런 조직이
내가 속한 조직이기를.

이전 14화균형의 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