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부스, 찬성과 반대 사이
내년도 주민제안 사업 공모 접수 현황이 부서로 통보되었다.
각 제안에 대해 실현 가능성과 타당성을 검토한 뒤, 그 결과를 제안자에게 회신해야 한다. 주민제안 사업은 일정 요건만 충족되면 우선 편성도 가능한 구조다 보니, 시민 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실제 정책으로 연결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래서인지 목록을 훑을 때마다 자연히 시선이 머무는 항목이 있다.
눈에 들어온 건 두 가지였다.
지금 내가 속한 정신건강팀의 업무와 관련한 청소년 정신건강 검진 지원 요청, 그리고 예전에 내가 실무자로 담당했던 금연사업과 관련된 제안이었다. 금연구역 확대 지정, 실외 흡연부스 설치 등 익숙한 문구들이 다시금 목록에 올랐다.
연지동 골목길, 경남공고 옆 학원가, 마을버스 정류장 인근의 좁은 인도... 자신이 매일 지나다니는 일상의 공간에서 담배 연기에 불편을 느끼며 그 해법으로 흡연 부스를 요청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였다.
금연사업을 맡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도 비슷했다.
"금연구역은 왜 이 거리엔 없습니까?"
"흡연자들이 왜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우게 하냐고요!"
"흡연 부스를 설치해야 합니다!"
하지만 흡연 부스를 설치하자니 곧바로 반발이 돌아왔다.
"세금으로 흡연 편의를 제공하는 것입니까?"
기억에 남는 민원이 하나 있다. 퇴근길 연산역 1번 출구, 계단을 오르자마자 담배를 꺼내 무는 흡연자 때문에 매일 간접흡연에 시달린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시간, 같은 지하철 칸, 같은 동선이라며 민원이 접수되었다.
민원을 접수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자주 동일인과 퇴근을 같이하게 되는지 의아하기도 했지만, 지하철 출입구 10미터 이내는 명백한 금연구역이었고, 임신 중이라는 민원인의 신고는 충분히 정당한 것이었다.
해당 민원은 시청을 거쳐 구청으로 이첩되었고, 단속공무원이 실제로 현장에서 단속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후로는 같은 내용의 민원이 더 이상 접수되지 않았다.
흡연자의 입장에서 보면 지하철에서 긴 시간을 참다가 막 지상에 올라와 겨우 담배를 피우게 되는 상황일 수도 있다. 다만 출입구로부터 10미터를 벗어나지 않은 장소에서 흡연을 시작하는 것은 명백한 위반이며, 법의 경계를 단지 몇 걸음 차이로 나누는 이 구조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다.
실외에서의 흡연을 금지해달라는 요청과 정해진 공간을 마련해달라는 요구는 늘 엇갈려 존재한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시민이고 그 연기를 피하고 싶은 사람도 시민이다.
부스를 설치하자는 의견은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공간을 분리해 불필요한 충돌을 줄이자는 요청이며, 설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는 흡연 자체를 정당화하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겨 있다.
지자체의 입장에서는 이 상반된 목소리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
흡연 부스를 설치하면 세금으로 흡연을 장려한다는 비판이 뒤따르고, 설치하지 않으면 거리 곳곳에서의 흡연과 그로 인한 시민 불편은 여전하다.
더욱이 실외는 법적으로 금연구역이 아닌 이상 흡연을 금지할 수 없기 때문에, 흡연 부스가 없으면 사실상 공공장소 전체가 흡연 가능 구역이 되는 상황도 마주하게 된다.
흡연 부스 설치는 단순한 시설 확충이 아니라 흡연권과 비흡연권 사이에서 행정이 제시할 수 있는 절충안이다.
그러나 그 절충이 성공하려면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예산과 공간의 문제는 물론 부스를 통해 무엇을 실현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흡연 부스가 단지 흡연자만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 거리의 담배 연기를 줄이고 간접흡연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공공의 장치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은 현실의 벽 앞에서 머뭇거린다.
실외 금연을 원칙으로 삼고 흡연은 지정된 공간에서만 하도록 하려면 일본처럼 관련 법령의 정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담배는 여전히 국가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기업을 통해 생산과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여기서 발생하는 세수는 결코 적지 않다. 담배세와 건강증진부담금 등으로 확보되는 예산 규모는 연간 수조 원에 이르고, 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 기반이기도 하다.
건강에 해로운 담배를 아예 생산도 판매도 하지 말자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흡연으로 인한 공중보건 비용, 환경오염, 간접흡연 피해 등을 고려하면 타당한 제안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면 금지 정책은 여러 현실적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흡연자의 강한 반발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생계 문제
정부 재정 수입 감소
불법 시장의 형성 가능성
더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동시다발적인 정책 추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국제 통상 마찰이나 밀수입 확대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담배 문제는 한 국가만의 정책으로 해결되기 어렵고, 전 지구적 합의와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한층 복잡한 양상을 띤다.
흡연율을 낮추는 데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흡연 자체를 완전히 없애는 데에는 제도적, 현실적 한계가 따른다.
행정은 늘 그 틈에서 줄타기를 한다. 한쪽으로만 기울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지금은 금연 업무를 떠났지만, 이번 공모 목록을 보며 다시금 실무자 시절의 고민이 떠올랐다. 시민들의 요청은 여전히 유사했고, 행정의 고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는 지금 정신건강팀에 있다.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 역시 사회적 환경과 맞닿아 있다. 단순히 개인의 성향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문제다.
흡연도 마찬가지다. 담배 연기로 인한 불편은 단지 개인의 습관만이 아니라, 그것이 발생하는 환경과 제도의 틈 속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다.
흡연을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금연이라는 원칙 아래 모두의 권리를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 그 균형점을 찾는 일이 행정의 몫이라는 점을 다시금 되새긴다.
흡연 부스는 어쩌면 흡연 문제의 복잡한 현실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장치이자, 지금으로선 가장 타협적인 대안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를 사회가 어떤 시선으로 받아들이고 행정이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고 설명해 나가느냐다.
그 작은 공간 하나에 담긴 수많은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을 때, 우리는 조금 더 숨쉬기 편한 도시, 서로의 일상이 덜 부딪히는 도시를 만들어갈 수 있다.
부산이 그런 방향으로 천천히 나아가길,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