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넓고, 마음은 좁고

by 박계장

얼마 전, 후배와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1년에 한두 번, 며칠간의 짧은 휴가를 내어 혼자 서울로 떠난다고 했다.


한강변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사람들 사이로 흐르는 기운을 느끼며
하루를 보낸단다.


"서울이 좋더라구요."
후배의 말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감정 하나를 떠올렸다.
‘살아 있음’이라는, 단순하지만 아득한 감정이었다.


그가 말한 생기.
낯선 도시에서 스며든 기운 같은 것이
우리에겐 점점 흐려지고 있는 듯했다.


한강에서 그는 젊음의 호흡을 느꼈지만,
나는 하루를 버티는 데만 집중한 채
그런 기운과는 점점 멀어져 있었다.


부산은 분명 좋은 도시다.
해운대와 광안리는 계절마다 사람들로 붐비고,
남포동 골목마다 외지인의 감탄이 묻어난다.
돼지국밥 한 그릇, 밀면 한 사발에도
누군가는 잊지 못할 추억을 담아간다.


그런데 정작 이곳에 사는 우리는
그 '좋음'을 체감하지 못한 채
지나치듯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부산은 지금,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노인의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자살률 또한 높은 편이다.


오래도록 버텨낸 이들이
어느 날, 조용히 삶의 끈을 놓는다는 사실은
참 무겁다.


우리는 여전히, 노인의 죽음 앞에서 서툴다.
견디고 또 견디며 살아온 어르신들이
남몰래 삶을 마감하는 일이 반복되는데도
그 죽음을 막기 위한 움직임은 좀처럼 커지지 않는다.


외로움, 건강, 생계, 관계.
삶을 놓게 되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그래서 더 어렵고, 그래서 더 절실하다.


공무원으로서 이 문제를 마주할 때
무거운 건 마음보다 예산이다.


자살예방센터 예산은 줄어들었고,
추경을 요구했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예산이 줄면, 일도 줄여야 하는 게 행정의 논리지만
그 논리가 마음까지 설득하지는 못한다.


자살예방업무는 멈출 수 없는 일이다.
특히 노인의 삶을 지키는 일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독거노인을 찾아가
안부를 묻고, 마음을 나누는 일.
그런 일들은 줄여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어지고 넓어져야 할 일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일조차 지켜내기 어려운 현실 앞에 서 있다.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 가운데
노인의 비율이 가장 높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오래 머문 외로움,
쓸모없어졌다는 느낌,
기다리는 이 하나 없는 일상.
사람은 그런 빈자리 속에서
조금씩 살아갈 이유를 잃는다.


그래서 오늘도 생각한다.
이 도시 어딘가에서 조용히 늙어가고 있는
누군가의 마음이
외롭지 않기를.


누군가는 오늘 처음 혼자가 되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오랜 일상을 잃었다.


그 빈틈을 그냥 두면
그 마음엔 찬바람만 스민다.


서울은 젊은 도시다.
사람이 모이고,
웃음이 오가고,
움직임이 있는 곳엔
기운이 흐른다.


부산에도 그런 바람이 필요하다.
노인이 많다는 건
슬픈 통계가 아니라
우리가 언젠가 도달할 미래다.


그 길을 먼저 걸어준 이들의 삶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죽음보다 삶이 먼저 떠오르는 도시.


누구나 존중받고,
아무도 소외되지 않고,
홀로 아프지 않은 도시.


그 바람이 멀지 않은 날에 닿기를,
나는 오늘도
작은 바람 하나 가슴에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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