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겨울, 그러나 봄을 향하여

by 박계장

아침 일찍 외근을 나섰다.
첫 일정은 사상구 학장동에 위치한 시립정신병원이었다.


이곳은 민간에 위탁해 운영되고 있지만,
수탁기관은 언제나 병원 운영에 깊은 책임감을 보인다.
나는 그 점이 늘 고맙다.


병원은 독립채산제로 운영된다.
시의 운영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구조지만,
몇 해 전에는 자체 예산을 들여 병원을 전면 리모델링했고,
이후에도 매년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시설을 손본다.


건축된 지 35년이 지났지만
외관과 실내는 여전히 단정하고 깨끗하다.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이기에
더 정갈해야 한다는 그들의 믿음이
병원 구석구석에서 느껴졌다.


이날 방문은
2022년 시비를 투입해 완료한 우수관로 정비공사의
하자 여부를 점검하기 위한 것이었다.


공사를 맡았던 업체 관계자와 함께 현장을 둘러본 결과,
다행히 별다른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어서 병원 관계자의 브리핑이 이어졌다.
주제는 병동 내 스프링클러 설치.


법령 개정으로 인해
2026년 말까지 설치를 마쳐야 하는 상황이지만,
같은 시기 냉난방기 교체 공사도 예정되어 있어
병원 자체 예산만으로는 감당이 어렵다고 했다.


화재 발생 시 조기 진화를 위한 필수 시설임을 알기에
병원의 요청은 절박하게 들렸다.
하지만 시비 지원 여부에 대해
당장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없다는 현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병원을 나와 김해로 향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식사할 곳을 찾았다.


먼저 떠오른 곳은 덕두시장.
강서구보건소에 근무하던 시절,
점심시간이면 자주 찾던 비빔칼국수집이 있다.


갖가지 채소가 듬뿍 들어간 비빔칼국수는
면을 빼고 밥과 계란후라이만 넣어
비빔밥으로도 팔 만큼 속이 알찼다.


아삭한 채소의 식감과 탱글탱글한 면발,
정갈하고 담백한 그 맛에
나는 자주 그 집을 찾았고,
바쁜 하루 속에서 소박한 위안을 얻곤 했다.


요즘엔 방송에도 자주 나왔다고 한다.
줄을 서야 겨우 먹을 수 있다지만,
다행히 이른 시간이라
우리는 여유롭게 식사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김해의 정신의료기관으로 향했다.
야간 시간대 아동·청소년 정신 응급입원 가능 여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한 일정이었다.


부산에는 아직,
야간 시간에 아동·청소년의 정신과 응급입원을
받아줄 병원이 없다.


그래서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병상을 찾아 헤매야 하는 현실이 반복되고,
결국 우리는 김해까지 병원을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병원에 도착하니
행정원장, 의무원장, 담당 의료진이 함께 나와
우리를 맞았다.


담당자 한두 명과 간단한 설명 정도일 거라 생각했기에
생각보다 진지한 분위기와 간담회 규모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병원 측 설명에 따르면
이곳은 야간에도 아동·청소년 정신 응급입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인력과 병상, 대응 시스템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는 말에
마음이 놓였다.


그러면서도
부산에서 겪어온 현실이 다시금 떠올랐다.


병동을 둘러보게 되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약 60여 명의 아이들이 입원해 있었다.


어떤 아이는 TV를 보았고,
어떤 아이는 책을 읽었다.
몇몇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고,
어떤 아이는 창밖을 향해 멍하니 앉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차분하고 평온했지만,
병원 관계자의 설명은 달랐다.


이 아이들 대부분은
입원 당시 자해 또는 타해 위험이 높았고,
외래 치료로는 감당이 어려운 상태였다고 한다.


복도를 천천히 걷던 아이들 가운데
몇몇의 눈빛은
아직 세상과 단절된 채,
안쪽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그 초점 없는 시선 속에서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마음의 고통이 전해졌다.


정신건강 문제는
더 이상 어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동·청소년 중
16.1%가 생애 한 번 이상 정신장애를 경험했고,
현재 시점에서도 7.1%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한 비율은 4.3%에 불과하다.


마음의 병이 있어도
치료받을 공간과 사람이 부족한 현실.
그 안에서 아이들은
조용히 아파하고 있다.


아동·청소년은 성인보다
응급입원이 훨씬 어렵다.


병상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야간이나 주말에는
입원할 병원을 찾는 것조차 기적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는
부산을 벗어나
다른 지역의 가능성을 찾아 나섰고,
오늘 그 길의 한 부분을 직접 걸었다.


돌아오는 길,
차창 너머로 논밭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초여름의 햇살이 무르익어
들판 위로 잔잔히 내려앉았다.


함께 탄 직원들도 조용했다.
각자 창밖 풍경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 순간,
병동 창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한 아이의 옆모습이 떠올랐다.


그 아이의 계절은 아직은 겨율.
냉기 어린 마음속에서
조심스럽게 버텨내고 있을지 모른다.


혹시라도 그 겨울이 너무 오래 머물지 않도록,
우리는 그 곁에
잠시 머물러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겨울은 지나기 마련이다.
누군가의 시선과 손길,
기다림과 애씀이 더해진다면
그 아이의 마음에도
분명 봄은 도착할 것이다.


그 계절을 향해 나아가는 길 위에서
우리는 작은 다리가 되어야 한다.


나는 오늘,
그 길의 한 부분을 걸어왔다.


아직은 겨울.
그러나, 봄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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