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장 사거리 벚꽃나무 두 그루는 매년 다른 나무들보다 일주일 정도 먼저 핀다. 금요일까지만 해도 단단히 닫혀있던 꽃망울이 월요일에 조금 열리는가 하더니, 하루 사이에 완전히 개화했다. 청사 앞 다른 벚꽃나무들은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있다. 한 나무는 피고, 다른 나무는 아직 준비 중인 모습. 변화는 갑자기 오지만, 그 시기는 각자 다르다.
보건소에서의 2년과 장기 교육 1년 과정을 마치고 시청으로 다시 발령받은 지 석 달. 그동안 직원들과의 회식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요즘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26층 후배의 말엔 당연함과 아쉬움이 함께 묻어 있었다. 퇴근 후에는 각자의 시간을 지키는 게 자연스러워진 시대. 고개를 끄덕이며도, 어딘가 허전했다.
얼마 전 치러진 공무원노조위원장 선거. 후보들의 공약 중 눈에 띄는 한 문구—‘건배사 근절 신고센터 운영’. 그 말을 보는 순간, 마음속에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건배사라는 말과 ‘근절’, ‘신고센터’라는 단어의 조합은, 마치 익숙한 회식 문화가 부적절한 행위로 치부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창밖 풍경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 안의 분위기는 분명 달라졌다. 젊은 직원들의 의원면직 소식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공직은 급여는 적고, 업무의 강도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현실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정시 퇴근 후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흐름은 더욱 분명해지고, 회식은 점심 식사 모임 정도로 간소화된다.
‘오늘의 주인공! 한마디 해라!’ 술잔을 든 채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던 그 의례는, 누군가에게 큰 부담이었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그 시간들이 남긴 따뜻함까지 모두 부정할 수는 없다. 업무의 긴장을 풀고, 서로의 마음을 조심스레 내보이던 그 밤의 온기들. 지금은 적절한 거리와 예의가 존중의 미덕이 되었지만, 그 틈 사이로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 건 아닐까.
세상은 변하고 있다. 일과 삶의 균형, 개인의 경계와 권리라는 흐름 속에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고 있다.
얼마 전, 다른 부서의 과장님이 같은 직렬인 우리 부서 직원들과 점심을 함께했다. 우리 팀 네 명과, 다른 팀 소속 직원 한 명이 자리했다. 식사 후 감사의 의미로 커피를 사기로 했는데, 나중에서야 그 직원에게도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더치페이가 요청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순간, 크지 않지만 분명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정확하고 공정한 회계, 명확한 공사 구분. 중요하다. 하지만 때때로 그런 원칙 사이 어딘가에는 ‘애매한 온기’가 필요하다. 숫자 하나가 관계의 거리를 만드는 순간, 조금은 서운해진다.
예전 기억 하나. 행정박람회를 앞두고 예고 없는 휴일근무가 내려왔다. 나는 미혼 여직원 둘에게 요청했다. 당시에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한 직원이 노조에 고발해야 하냐며 상의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당혹스럽고 괘씸하기까지 했다.
결국 정해진 순서를 다시 고려하며 사과했고, 해당 직원은 그냥 자기가 하겠다고 했다. 그 일 이후, ‘미혼이니까 가능하다’는 가정도, ‘기혼은 배려받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분위기도 이제는 더 이상 쉽게 통용되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다.
조직문화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 변화 속에서 따뜻함이 배제되지 않도록,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열정페이도, 무조건적 희생도, 더는 미덕이 아니다. 건배사의 부담이 진정한 소통을 방해했던 건 아닐까.
그럼에도 여전히 회의실에서 터지는 웃음, 복도에서 나누는 안부, 문제를 함께 해결하며 생기는 유대. 그런 순간들이 ‘우리’를 만들어간다.
오늘 본 벚꽃은, 시간 속에 사라져가는 어떤 문화 같았다. 하지만 그 잎들이 땅에 내려앉아 새로운 흙이 되듯, 건배사의 시대는 저물어가도 그 속의 온기는 다른 형태로 이어질 것이다.
나무는 계절마다 다른 옷을 입지만, 뿌리는 언제나 같은 자리를 지킨다. 직장의 문화가 변해도, 서로를 향한 마음만큼은 그대로 남아 있으리라.
이제는 누군가 억지로 잔을 들게 하지 않아도 된다. 진심 어린 눈빛 하나, 조용한 응원의 말 한마디가 따뜻한 흔적을 남길 수 있다.
벚꽃이 흩날리는 녹음광장을 걸으며, 나는 저물어가는 노을 너머 또 다른 새벽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