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

공직사회를 대하는 이중 잣대

by 박계장

퇴근 시간이 가까웠다. 오랫만에 약속이 생겨 평소보다 조금 이르게 책상을 정리하던 참이었다. 그때 식품안전팀 쪽에서 전화 통화하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이어지는 직원의 짧고 단호한 말투에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어제 통화하셨던 담당자가 지금 외근 중입니다. 제가 전달하겠습니다.”
“그건 구청에서 처리할 일입니다.”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전화기 너머의 민원인은 여전히 통화를 이어가고 있는 듯했고, 결국 직원은 “욕설을 하시기 때문에 지금부터 녹음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 통화음이 더 날카로워졌다. 통화 내용을 직접 들은 건 아니었지만, 직원의 응대만으로도 민원인의 주장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식당에서 사용하지 않은 식재료를 사용한 것처럼 광고했다며 기망행위라 주장하고, 구청의 대응이 부실하다고 항의하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받던 직원의 말투에서 당황스러움과 짜증이 동시에 묻어났다. 그는 담당자도 아니었고, 처음 듣는 민원이었지만 민원인의 분노는 그런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상대가 누구든 간에 자신의 감정을 풀 대상이 필요했던 셈이다.


이런 민원은 감정의 충돌이라기보다 힘의 문제로 느껴질 때가 많다. 말보다 태도에서 우위에 서려는 기색이 드러나고, 상대를 몰아붙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공무원은 개인이 아닌 국가나 제도를 대신하는 사람으로 여겨지기에, 존중보다는 불만의 표적이 되기 쉽다.


이런 민원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업소 간 경쟁이나 개인적인 갈등에서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행정기관을 문제 해결의 창구가 아니라, 상대를 처벌하기 위한 수단처럼 여기는 태도는 정당한 민원이라고 보기 어렵다. 감정에 치우친 반복적인 민원 제기는 결국 누군가를 괴롭히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식품안전팀은 다른 과이지만 우리 팀과는 파티션 하나를 두고 붙어 있다. 전화기 앞에 앉은 직원의 말소리가 내 자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무력감이 배어 있었다. 아무리 설명해도 상대의 분노는 잦아들지 않았고, 그 상황을 버텨야 하는 책임은 고스란히 직원의 몫이었다.


나는 보건직 공무원으로 33년째 일하고 있다. 식중독 예방, 감염병 관리, 위생업소 및 의료기관 관리 등의 일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종종 주민과 부딪히기도 했고, 설명이 통하지 않는 상황도 겪었다. 지금까지 다행히 욕설을 직접 들은 적은 없었지만, 그건 단지 운이 좋았던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시각, 누군가는 감당하기 힘든 언어의 무게를 견디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이런 일도 공무원이니까 참아야 한다는 말로 넘기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욕설과 폭언은 더 이상 ‘직업상 감수해야 할 일’로 치부되지 않는다. 실제로 한 직원은 반복적인 협박성 민원을 형사 고소했고, 법적 판단까지 이어졌다. 그것은 단지 대응이 아니라, 존엄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공무원도 노동자다. 일정한 시간에 노동을 제공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다. 민간에서는 고객의 부당한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문화가 빠르게 자리 잡고 있지만, 공공 영역에서는 여전히 “참아야지”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결과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노동자가 제도 안에서 가장 먼저 지치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조직의 태도다. “그냥 좀 참아”라는 말은 때때로 방관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악성 민원인이 사무실에 찾아왔을 때, 자리를 피하던 상사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그런 침묵은 일선 직원에게 보호받지 못한다는 무력감으로 남고, 시간이 지나면 자조와 냉소로 바뀐다.


물론 반대의 모습도 있다. 민원인을 자리에 앉히고, 음료 한 잔과 함께 이야기를 차분히 듣던 과장도 있었다.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더라도, 상대는 자신의 말이 ‘들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존중받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것이 행정의 첫걸음이 아닐까.


요즘 젊은 직원들이 공직을 떠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낮은 처우나 과도한 업무만이 원인은 아니다. 무기력한 대응, 반복되는 민원, 그리고 그걸 감당하는 방식에서 오는 소진도 한몫을 한다. 성실하고 조용하던 직원이 아무 말 없이 사라졌던 날, 조직은 무엇을 했는가. 그 침묵은 때로 더 큰 책임으로 돌아온다.


공무원은 감정이 없는 존재가 아니다. 주민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애쓰고, 때로는 그 과정에서 상처도 입는다. 그들의 목소리는 존중받아야 한다. 욕설보다 중요한 건, 그것을 견디는 사람의 이야기다. 공직자의 존엄이 지켜지는 사회만이 진정한 공공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그것은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아니라, 모두가 사람답게 대우받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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