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독립을 하면 행복할 줄 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 같으니 말이다. 나는 대학교 때부터 이런 지인(엄마의 잔소리와 간섭이 싫다는 선배, 자유를 찾고 싶다던 후배, 일탈을 하고 싶다던 동기 등)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는데, 나는 항상 이렇게 조언해왔다. 다시 한번 생각해 봐.
외로움이라는 큰 벽은 생각보다 넘기 힘들다. 그래서 나에게 조언을 구했던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집으로 들어가던지, 룸메이트를 구했다. 룸메이트를 구했던 이들은 룸메이트와 다투고 집으로 들어갔다. 일반화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일반적인 사람의 독립은 충분한 생각을 거친 뒤에 결정하여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의하면 나는 특별한 경우에 해당한다.
나는 태생적으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모임에 나가는 것을 싫어하고, 혈액형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하고, 남의 비위 맞추는 것에 재능이 없다. 하기 싫으면 얼굴 표정에 다 드러나 타인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에 그냥 혼자 있는 것이 마음 편하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혼자서도 너무나 잘 논다. 대학생이 되어 20살 때부터 혼자 살았던 나는 혼자 있어도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었다. 날이 좋으면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었고, 날이 안 좋으면 집에서 혼술을 하였다.
그때부터 보았던 영화들과 책들이 나를 키웠다. <대부>, <레옹>, <포레스트 검프>, <시네마 천국>, <쇼생크 탈출> 등은 나의 감정을 풍요롭게 하였고(모두 다섯 번 이상 보았고 지금도 가끔 본다.) 『죄와 벌』,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양철북』, 『호밀밭의 파수꾼』, 『시계태엽 오렌지』, 『위대한 개츠비』, 『나무 위의 남작』등의 위대한 명작들은 나의 사상을 살찌우게 하였다. 내가 사랑했던 홀든 콜필드의 바람처럼,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살고 싶었고 나무 위의 남작 코지모처럼 나무 위에서 타인의 의지에 종속되지 않고 살아가는 것 또한 멋있어 보였다.
이러한 나의 천성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할 때까지도 바뀌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40대 정도가 되면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자연인들처럼 자연 속에 집을 짓고 소일거리로 농사나 지으면서 살아갈 생각이었다. 집이 클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혼자 살 생각이었으니까.
허나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나를 보며 아무런 조건 없이 웃어주는 천사, 우리 딸까지 태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계획을 바꾸기로 하였다. 원래 지으려 했던 집보다 조금 크게 지을 생각이다.
나는 혼자서도 잘 살았다. 하지만 지금이 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