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제8회 항공문학상 응모작품
비행기에 들어서자 생각보다는 좌석이 꽤 차 있어 놀랐다. 내 자리를 찾아 숫자와 알파벳을 확인하며 복도를 걸어갔다. 빈 좌석을 무작위로 지정받는 직원용 표이기 때문에 그 순간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든다. 하필이면 팔걸이가 올라가지 않는 맨 앞자리라 기대했던 ‘눕코노미’는 불가능했다. 그래도 원래는 다리를 쭉 펼 수 있어 로얄석이던 자리인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했다. 너무 꼿꼿해 불편한 이코노미 좌석에 앉아 있자니 몇 년 전 출발 직전에 이륙이 연기되어 한 시간을 넘게 꼼짝없이 기다렸던 기억이 났다. 중국 쪽을 지나가는 유럽 노선이 너무 많은 나머지 운행 허가를 차례로 기다리느라 그런 거였다. 다음 비행기로 경유할 시간이 촉박해져 잔뜩 짜증이 났는데, 코로나 시기에는 그 순간마저도 그리웠다. 비행기를 탈 수 있음에 감사해야지.
창문 밖으로 분주히 수신호가 오가고 다른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는 진동이 전해졌다. 내가 탄 비행기도 이륙을 준비하며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바라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은 삶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가장 먼 곳을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라는 교통수단은 인간의 가능성을 극단까지 피워낸 어떤 기념비에 가까울 것이다. 육중한 쇳덩이가 날아오르기 위해 달려가는 순간, 나는 중력을 벗어나려는 인간의 꿈을 본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믿기에 그걸 극복해 내는 힘은 더욱 위대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비행기가 떠오르는 순간은 아무리 겪어도 변함없이 처음처럼 경이롭다. 창문에 시선을 고정하고 오랜만에 보는 인천의 희뿌연 바다와 이름 모를 섬들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이라 그런가, 혼자만의 첫 여행이 많이 떠올랐다. 깜깜한 밤에 도착한 프라하역에서 부랑자들을 보고 얼마나 무서웠는지. 무슨 배짱으로 유심이란 것도 모르고 무작정 떠나서 가끔 잡히는 와이파이만으로 대중교통을 탄 건지. 여기쯤이 분명한데 보이지 않는 숙소에 노숙을 해야 하나 고민하며 얼마나 무서웠는지. 공사 중인 건물에 무단점거하듯 자리 잡은 호스텔을 결국에 찾아내기 전까지 같은 골목을 열 번은 왔다 갔다 헤매며 얼마나 막막했는지. 아무것도 몰랐기에 무모했지만 처음 맛보는 여행의 재미는 정말이지 짜릿했다. 아무런 이름표도 붙어있지 않은 곳, 내 반경에 속하지 않은 낯선 곳에서 생(生)이 이리도 생생한지 처음 느껴보았다.
혼자서 맞닥뜨린 여행의 세계는 여유롭고 화려한 휴양보다는 가난한 고행에 가까웠다. 모두에게 여행이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지는 않겠으나 나는 이 사서 하는 고생이 그리도 좋았다. 어둡고 냄새나는 골목, 돌바닥을 걸어 다니느라 퉁퉁 부은 발목, 추적추적한 안개비와 털털거리는 미지근한 라디에이터, 들쑥날쑥한 항공편에 준비도 없이 공항 벤치 위에서 노숙하던 불면의 밤, 하루를 무사히 살아내야 한다는 생존에의 욕구 따위가 여행의 매 순간을 채웠다. 그렇기에 고된 하루 속에서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낯섦 속에서 선명하게 다가오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넌 무엇을 좋아하니, 무엇을 싫어하니, 어디를 가고 싶니, 어디든 가고 싶은 곳에 가 보자. 이런 질문을 통해 나는 자유를 찾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다. 여행이 주는 이 느낌은 삶에서 찾아낼 수 있는 가장 멋진 것들 중 하나일 것이다.
기내식을 나눠주는 잔잔한 소란이 상념에서 날 깨웠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비행기에는 거의 어른밖에 없었다. 그래서 승무원들이 거의 “와인 드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보며 다녔는데, 아버지뻘의 남자 승무원께서 나에게만 다정스러운 말투로 “주스 줄까요?”라고 물었던 재미난 해프닝이 있었다. 와인을 먹을 수 없는 나이를 지난 지는 한참이 됐지만 그 친절이 고마워서 감사하다고 받았다. 늘 고정이던 비빔밥과 소고기/생선 요리가 아닌 새로운 메뉴여서 반가웠다. 제육쌈밥과 백김치볶음밥. 두 번의 식사를 모두 한식으로 먹었다. 특히 제육쌈밥은 기내에서 보기 어려웠던 신선한 채소가 있어서 더 색달랐다. 2년 동안 별로 수요도 없었을 텐데 많이 노력했구나 싶었다. 중간에 간식으로 바나나와 주먹밥과 과자 중에 고를 수 있어 주먹밥을 받았다. 높은 고도라 미각이 둔해진 걸 감안하고도 약간 짰지만 쫀득쫀득한 식감이 훌륭했다. 비행기를 자유롭게 타던 시절에는 맛없다고 거르기도 하던 기내식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나니 모든 것이 새롭고 소중했다.
식사 시간이 끝나고 승무원들도 사라지면 소등된 기내에는 어둠과 나지막한 소음만이 남는다. 여행의 시작인 비행이 죽음과 비슷하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운이 좋아 기절하듯 잠이 들든, 그러지 못해 비몽사몽 눈만 감고 있든, 어두운 비행기에서 기나긴 밤을 견딜 때면 꼭 죽어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비행기의 불이 켜지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착륙을 하고, 공항의 밝은 조명 아래로 캐리어를 끌고 걸어가면, 죽음에서 다시 태어난 것 같다. 그 느낌이 좋다. 겁 많고 소심한 내가 여행 중에는 용감하고 적극적인 사람으로 변한다. 낯선 사람과 웃으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안 되더라도 우선 도전해 보는 모험가가 된다. 여행 후에는 나 자신이 성장해서 이전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인간에게도 번데기가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두운 고치 안의 시간을 거쳐야만 새로운 나로 거듭날 수 있으니까. 두려움으로 시작했던 첫 여행을 거치며 비로소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넘어올 수 있었던 것처럼, 이번 여행도 어떤 관문이 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귀국하고 나면 다시 발걸음을 뗄 용기가 날 것 같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전공 수업에서 들었던 문장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하나가 있다. 문학은 ‘그곳’으로 나아가려는 미완의 운동이라는 말이다. 이는 문학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모든 것들에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게 여행과 비행은 찾지 못할 삶의 정수를 찾아다니는 방황이며 그 과정 자체로 이미 온전한 결실이다.
14시간 35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지나 비행기는 파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다시, 여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