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근원적 결핍은 가족이다

가족, 미워하기에도 사랑하기에도(1)

by 이십칠도씨
행복한 가정은 비슷비슷하게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만큼 가정에 대해서 잘 표현한 명문도 없을 것이다.

가족, 부모에 대한 글을 시작하며 느끼는 감정은 수치심과 두려움이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이런 공간에도 쓰기가 조심스러운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철학적으로 시작해도 윤리적으로 우회해 비난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일그러진 가족의 초상을 구구절절 글로 써내려가야 할 정도로 이들과 내게 큰 결함이 있는 것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사실 내 부모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지탄받을 사람들은 아닐 수도 있고, 심지어는 시각에 따라 훌륭한 부모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내가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구실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가장 깊은 상처는 가족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다른 커다란 사건으로 인해 상담을 여러번 받아도 결국 최종적으로 다다르는 건 가족에 대한 문제었다. 아마 나의 가장 큰 결핍이자 열등감일 것이다. 그래서 부모에게 대체적으로 감사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사무치게 부러웠다. 왜 나는 가지지 못했나 하는 억울함이 나를 갉아먹어 버릴 것 같다고 느낄 정도로.

어렸을 때 가장 많이 듣던 꾸중은 '말대꾸하지 말라', '어른들 말에 끼어들지 말라'였다. 입바른 말밖에 못하고 할 말을 참는 것에도 재능이 없어 부모님의 분노를 이끌어내는 쪽은 늘 동생이 아닌 나였다. 어렵게 얻은 첫 아이라는 소중함과 함께 찾아온 그런 존재를 어떻게 키워야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들이 나에게 유독 혹독했던 이유였을 거라고 짐작한다. 깎이고 꺾여 점점 말이 없어진 후에는 무서웠던 소리도 잦아들었지만 가끔씩 나도 모르게 부모님을 화나게 할 때마다 어린 내가 떠오른다. 마음 속에 끓어오르는 정체 모를 것들을 어디로 흘러 보내야 할지도 모르던 여섯 살의 내가.




2022/12/30 아빠는 끝없이 바위를 밀어올리는 시지프스


운명에 저항하는 법은 무엇일까.

약한 몸을 키우려 매일 걷기 운동이라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열 개가 아닌 네 개의 손가락으로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인생을 바치는 것일 수도 있다. 이기심을 초월하여 타인을 돕는 것일 수도 있고, 세상이 아니라고 하는 꿈을 향해 도전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신탁을 거스르려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고야 마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일 수도 있다.

방법이 무엇이든 운명에 저항하는 일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야기들의 결말이 성공이든 실패이든 우리는 그들의 인간다움에 항상 감동을 받는다.


운 좋은 소수를 제외한다면 많은 딸에게 아버지란 애증의 존재일 것이다. 나에게도 그렇다. 아버지를 보며 느끼는 슬픔은 연민에 가깝다. 동정은 나와 그가 다르다고 느낄 때, 연민은 나와 그가 같다고 느낄 때 나온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버지와 내가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와 닮은 존재가 내 근원의 두려움을 구성하고 있다는 건 슬픈 일이다. 큰 고함소리, 금방이라도 휘두를 듯 팽팽히 긴장돼 올라간 손, 미간에 골을 만든 채 찡그린 눈썹, 쏘아보는 차가운 눈빛 같은 것들... 내가 좀더 강해지고 그가 좀더 약해진 지금, 그를 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아버지는 거의 십 년 넘게 저녁을 샐러드와 아보카도로만 먹고 있다. 끝나지 않을 절제하는 삶을 스스로 원한다고 열심히 세뇌하고 그것에 성공한 것 같은 아버지... 그를 보며 난 산꼭대기로 바위를 끝없이 밀어올리는 시지프스를 떠올린다. '더이상은 못하겠어.'라고 생각한 적은 없을까? 끝없는 노력/고통/통제의 굴레에서 해방되고 싶었던 적은 없을까? 이걸 궁금해하는 이유는 내가 아버지와 얼굴 뿐만 아니라 성향도 참 닮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음식만이 아니라 난 내 삶의 전반적인 것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싶어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좋아보이는 규칙적인 생활, 욕망의 절제, 성실한 삶, 강박적일 정도의 청소와 소독 모두 그런 통제 욕구에서 기인한 것이다. 하고 싶은 걸 참는 게 예전만큼 고통스럽지 않다고 해서 그러고 싶은 욕망이 더 적어진 것은 아니다. 의지만으로는 영원히 전쟁을 계속할 수 없기에 세뇌라도 시키는 것이다. 내 세뇌가 조금이라도 약해지면 나는 날 영원히 놓쳐버릴 것만 같다. 남은 삶 또한 참는 것의 연속이라면... 하고싶은 것은 하지 못하고 하기 싫은 것은 해야만 하는 순간들 뿐이라면. 살아있음은 지옥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지옥을 살아가는 법을 아는 게 삶을 버틸 수 있는 지혜인지도 모른다.

나와 닮은 아버지, 아버지는 그런 지옥을 평생동안 버텨온 것일까. 아버지에 대한 나의 감정은 두려움과 원망을 거쳐 연민에 닿았다.

작가의 이전글이 강간 용서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