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강간 용서 되나요?

170906 1년 후 그날의 기억

by 이십칠도씨

순수라는 것은 과연 미덕일까?

아니면 어린 날의 무지와 치기를 예쁘게 포장해주는 자기기만일까?

그날의 나에게 순수란 어떤 의미였나.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쉽고도 가벼운 일이었는가.

끝없는 상념의 안개 속에서 단 하나 확실한 것은, 무지이든, 치기이든, 순수함이든 그 어떤 것도 그 일을 '당해도 싸다'는 당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을 믿었다고 해서 범죄를 당했고, 그 믿음이 사회 통념에 비추어 보았을 때 지나치게 ‘순수’한 것이라면, 피해자의 억울함은 누가 보상해줄 수 있을까?

사람을 너무 믿은 피해자의 탓인가 아니면 그 무구한 믿음을 악용한 가해자의 탓인가.

나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그 날은 한여름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9월의 초입이었다. 나는 부산에 홀로 여행을 와있었다. 별 준비 없이, 집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급한 대로 찜질방에서 자기도 했고 돈을 아끼려 발이 욱신거릴 때까지 걷기도 했다. 혼자서 온 찜질방은 엄마와 왔을 때와 달리 즐겁지 않았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저편에 빛나는 마린시티의 야경은 참 야속했다. 혼자인 외로움을 잘 버틴다고 자부했지만 나는 슬슬 외로움에 지쳐가고 있었다. 버스 좌석에 앉아 이리저리 덜컹거리면서, 큰 비가 올 것처럼 유난히도 먹빛이었던 부산의 하늘을 쳐다보면서, 나는 세상에 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고독의 끝자락을 체험하는 듯했다. 누구든 아는 사람이 찾아온다면 정말 반가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연락이 왔을 때, 과하다 싶을 정도로 기뻐했다.

그 날의 나는 사람의 선함을 맹신했고, 내 안의 상식이 다른 사람에게도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 사람은 술을 가지고 자기가 좋아하는 부둣가로 나를 데려갔다. 새벽 속에서 바닷바람은 고요했다. 비릿한 소금기는 명멸하는 등대의 불빛과 잘 어울렸다. 아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와 내가 나눴던 비밀 얘기와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한 조언이 고요한 바닷가 위를 유영하고 있었다. 종아리를 물어뜯는 억센 모기를 그냥 무시하고 싶을 정도로 그 순간만큼은 즐거웠다. 그가 권해 억지로 들이킨 술 몇 잔 때문인지 새벽 바다의 고요함 때문인지 그동안의 고된 여행 때문인지 나는 취해갔다. 너무 졸렸고 피곤했다. 어디든 누워서 쉬고 싶었다. 그 사람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그만 가자 했고 택시를 타고 서면을 향했다.

그 날 모텔에 들어가며 내가 저항하지 않았다고, 그는 진술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나는 어디든 누워서 쉴 생각뿐이었으니까. 그래서 태어나 처음 내딛는 모텔 방에 그렇게 두렵지 않았다. 참으로 조잡하게 꾸민 붉은 방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바로 침대에 누웠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푹신한 매트리스의 감촉에 행복했다. 그러나 그 행복감을 만끽하기도 전에 그 사람이 씻지도 않고 눕느냐고 핀잔을 줬다. 집에서 굉장히 깨끗하게 키웠나보다 생각하며 씻었다. 그리고 마침내 잠이 들려고 할 때쯤 무서운 일이 시작됐다. 이불 속에서 그 사람의 우악스러운 손이 옷을 벗겨내려 했다. 내가 느낀 첫번째 감정은 두려움을 넘어선 황당함이었다. 왜 이러지? 쉬러 온 것 아니었나? 이성을 유지하려 애쓰며 내뱉었다. "이러려고 여기 데려온 거에요?" 그 사람은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고 대답했다. 맞다. 너는 나쁜 사람이 맞다. 그런데도 그는 끝까지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다리를 벌리려는 손아귀에 반항하며 버티고 또 버텼다. 왜 이렇게 힘이 세냐며 그 사람은 투덜거렸다. 그러나 곧 나는 지쳐버렸다. 지쳐버렸다. 그 후 많이 아팠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고통. 머릿속에 생각이 정지되었다. 영리하다고 칭찬 받던 머리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무감각해진 듯 하면서도 아픔만이 생생했다. 흔들리는 눈 속 모든 풍경은 물컹거리는 붉은 색이었다. 붉고, 붉고, 또 붉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내 피도 붉었고 머릿속도 사이렌이 켜진 듯 온통 붉었다. 내 안에 무언가가 죽어버린 기분이었다.

그 날 나는 바보같을 정도로 착했다. 그가 열이 나는 것 같다며 일어나지 못하자 나는 수건을 찬물에 적셔 이마에 올려주었다. 그 사람은 잠이 들었다. 어두컴컴하고 창문 하나 없는 모텔 방에 있자니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밖으로 나왔다. 서면의 하늘은 회색이었다. 미세먼지가 많아서 콜록거리면서도 나는 계속 걸었다. 무언가 이건 아니야 하는 느낌에 계속 들었다. 이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어디서 기인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젯밤부터, 뇌가 마비된 것 같다. 어지러워서 생각을 포기하고 싶었다. 힘을 너무 많이 준 탓에 허벅지는 후들거렸다. 어두운 거리가 휘청휘청 발 아래로 지나간다. 뭐지. 뭐지. 뭐지. 아무 것도 모르겠어. 뭔지는 몰라도 이 모든 게 깨끗하게 맑아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하늘은 여전히 회색이었다. 그 때 내가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는 듯이 바로 해바라기 센터에 달려가서 가해자의 정액을 제출했으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순순히 모텔에 따라 들어갔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때까지 알고있던 성지식이라고는 공교육에서 가르치는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렀다는 걸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아니, 믿고 싶지도 않아할 것이다. 이성에게 술을 먹자고 하는 건 어떤 의미인지, 모텔에서 어른들은 어떤 일을 주로 하는지, 성관계는 어떻게 하는지. 어른들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대신 사람을 믿고, 친절을 베풀라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어른들의 말을 너무 잘 들었던 모범생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사회의 새내기이기도 했다. 나는 그제서야 이 세계가 얼마나 잔인한 곳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 날 택시를 타고 광안대교를 날 듯이 달려 산부인과에 도착했다. 도망치듯 사후피임약을 건네고 아프면 연락하라고 하며 그 사람은 다시 택시 속으로 사라졌다. 사후피임약을 먹으니 배가 많이 아팠다. 이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 밤 나는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만 공허하게 뚜우 뚜우 울렸다. 다음 날 해가 밝자마자 나는 서울로 돌아왔다. 아직도 피안과 차안 사이를 왔다갔다 거리며, 내가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 모르는 채로. 엄마에게 물었다. "나 뭐 달라진거 없어?" 엄마는 없다고 했다. 사실 이건 겉모습에 대한 질문이 아니었다. 내 안에 무언가가 달라지지 않았는지, 내가 더러워보이지는 않는지 엄마가 대답해주면 알 것만 같았다. 부모님과 샤로수길의 유명한 타파스집에서 밥을 먹을 때도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다. 왜 이렇게 멍하냐는 엄마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알려지면 안된다는 생각이 모든 행동의 지표가 되었다. 아버지와 양재천 주변 공원을 거닐던 날에는 햇살이 참 좋았다. 노란 햇빛 아래서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아버지의 뒷모습은 평소보다 가까워 보였다. 이곳에서라면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목구멍까지 단어들이 차올랐다. 결국 다시 삼켜냈다. 신맛나는 침이 가득 고였다.

그 날 이후로 망가진 듯했던 내 감각기관들은 사흘쯤 지나서야 최소한의 수준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남아있는 의지를 끌어 모아 경찰서에 갔다. 내가 성폭행으로 고소하고 싶다고 말하자 민원접수실에 찬물이 끼어진 듯 모든 사람이 굳었다. 내가 지구로 불시착한 외계인이라도 되는 양 은밀하게,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온 것처럼 경찰은 조사실로 나를 데려갔다. 내가 피해자인데 왜 내가 죄 지은 느낌을 받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성폭행 피해자라면 응당 이래야만 한다 하는 표본이 있나보다. 어두운 표정에 무언가 잘못한듯이 바닥만 쳐다보고, 툭하면 운다든가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든가……그들의 입장에서는 나름 배려한 것일지는 몰라도, 나는 매우 기분이 나빴다. 범죄 피해를 당해서 신고하러 왔을 뿐인데, 왜 주눅들어 있어야 하고 슬퍼하고 있어야 하는 거지? 나와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어떠한 동정도, 안타까움도, 걱정도, 좋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모든 행동조차 나에게는 고문 같았다. 성인 남성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기에는 역부족이어 보이는 피해자보호관을 만나 진술서를 썼다. 상대편 변호사가 공격할 지점들을 찾아낸다는 명목으로 찢긴 상처를 후벼파는 시간이었다. 피해자보호관이 왜 모텔에 자기발로 들어갔냐고 물을 때, 성폭행을 시도하자마자 왜 바로 도망치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 일이 끝난 후에 바로 신고하지 않았느냐 물었을 때 내가 잘못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당신이 직접 겪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들의 질문은 머릿속에 소용 없는 꼬리질문을 낳았다. 나는 왜 그렇게 행동했나, 왜 부산으로 여행을 갔나, 왜 하필 비행기에서 그 사람의 옆자리에 앉았나... 질문은 계속 원인을 찾아가다가 종래에는 나는 왜 태어났냐는 질문에 닿았다. 고통뿐인 인생인데 왜 살아야 하지. 하지만 지금은 아직 죽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그 나쁜 인간이 처벌받는 걸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이 나라에는 아직 정의가 살아있다고 믿고 싶었다. 신고를 하고 민우회를 알게 되어 정신과를 소개받았다. 심리검사실 안에는 가을과 어울리는 노란 햇살 속에 먼지가 반짝였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몇 달 간은 지나가는 남자만 봐도 두려웠다. 이태원 지하철 역 계단을 올라가면서 그 남자와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만 본 순간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주변에 그런 사정을 이해해줄 사람도, 나이만 먹은 미래의 날 받아줄 회사도 없을 것이기에 어떻게든 일상은 이어져야 했다. 복학을 하고 수업을 듣고 과제를 했다. 그 일 직후만큼은 아니었지만 아직도 난 남자가 두려웠고 어딘가에 몰입해있지 않은 순간마다 찾아오는 끔찍한 기억에 몸서리쳤다. 남자가 나에게 다가올 때마다 움찔거리는 걸 고치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름 좋은 일도 많았고, 멋진 친구들도 만났다. 그 중에서 제일 멋지다고 생각한 친구를 짝사랑한 끝에 고백을 받았지만, 그는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아 같이 호텔에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무서운 일이 다시 일어나면 어떡하지. 그날의 기억에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버린 나의 두려움이 그에게 들키지 않기를 바라며 조심스레 돌려 거절했다. 일주일 뒤였나, 전화로 이별을 통보받던 날의 유독 오렌지빛 진하던 노을은 마음 속의 봄과 함께 지는 것 같았다.

그 사건의 1주기가 지나자 난 불현듯 재판 결과가 궁금해졌다. 가명으로 접수해서인지 내게는 처분 결과조차 오지 않았다. 남부법원에서 거추장스러운 절차를 걸쳐 겨우 신원인증을 한 뒤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 끊어질 것 같은 정신줄을 붙들어가며 병원에서 PTSD를 포함한 진료확인서와 미술치료사의 소견서와 1년치의 통원 기록 등을 첨부하여 항소장을 썼다. 설마, 트라우마 진단까지 받았는데 '증거불충분'이 다시 나오겠어? 그게 됐다. 항소심의 결과도 똑같았다. 그리고 난 차단을 해놓았던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이 "성모 마리아님, 감사합니다."로 바뀐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신이 있다면 적어도 나의 편은 아닌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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