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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십칠도씨 Feb 18. 2024

그가 나를 "지영아"라고 불렀을 때

240209

왜 몰랐을까요? 그렇게 좋은 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 (영화 <해어화>)


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은 잊지 못할 연애를 해볼 것이다.

나의 경우는 늘 이성이 섞인 환경에서 자라왔고 '썸'이나 짧은 연애는 몇 번 해보았지만 감정이 그렇게 깊지 않았던 것 같다. 별로 좋아하지 않던 사람 혹은 나를 갉아먹던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슬프기보다는 후련했었다.

이별 후 왜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밥을 먹지 못하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사랑에 그리도 죽고 못 사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나는 이성적이라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거라고 자신하곤 했다.


그러던 나는 스물여덟이 다 끝나갈 때에서야 난 진정한 헤어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내 삶의 큰 부분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는데, 그걸 다시 찾을 수도 없으니 황망하고, 마치 어릴 적 부모님 손을 놓치고 낯선 길에 남겨진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헤어지던 날 우리는 어떻게든 씩씩한 척 "우리의 이별은 물처럼 담담하고 완벽했다"고, 박완서의 자전적 첫사랑 이야기를 빌려 마지막을 장식해보려 하기도 했다. 

이별 후 어차피 더 이상 안 되는 거였다고 머리는 생각했지만 가슴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래서 정신없이 내 삶을 살면서 잊어보려고 했고 가끔은 성공했다고 착각하기도 했다.

혼란스러운 마음속 가장 진심은 그가 행복하기를 바랐다는 거였다. 나 없을 미래도 축복하고픈 사람이라니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헤어지던 날 일기를 썼다. "나는 하나의 씨앗이었다. 땅에 묻혀 있었다. 추워서 옴짝달싹 못한 채로, 자라지 못한 자아는 표면에 가시처럼 돋아나기만 했다. 나 밖에 모르던 뾰족뾰족한 내게 불현듯 나타난 너는 부모에게도 받아보지 못한 따뜻한 빛을 주고 물을 주면서도 부족하지 않을까 미안해했다. 그로 인해 나는 비로소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그 과정도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너는 내가 가장 못난 순간까지도 지치지 않는 지지대가 되어 주었다. 중학생이던 나는 어린 마음에 "나를 키운 팔 할이 바람이었다"는 시구를 가슴에 품고 다녔지만, ‘내가 되고 싶던 나’를 만들어준 팔 할은 너였다.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사람도 너였다. 받을 줄만 알던 내게 주는 것도 행복할 수 있음을 알려준 사람. 당신이 내게 쏟아부은 사랑으로 인해 나는 드디어 어느샌가 내 안에 들어온 작은 생명을 죽이지 않고 보듬어줄 수 있는 우물이 되었다."


해가 바뀐 뒤 유독 외롭고 우울하던 어느 겨울날은 내게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홀로 한강을 걷다가 그제야 불현듯 실감이 났다. 언제나 그대로 있을 것처럼 가장 가까이서 지켜주던 따뜻한 한 사람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그건 사형선고라도 받은 것처럼 현실이라고는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극심한 공포를 유발했다.

허겁지겁 그에게 전화를 걸자 언제나처럼 밝은 목소리가 바로 들려왔다. 왠지 이번이 마지막일 것처럼 느껴져 손이 얼어가는 데도 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조용히 울고 있다는 걸 목소리만으로도 바로 알아채던 너.


그가 해맑은 목소리로 나를 "지영아,"라고 부르고는 아차 멈춘 순간 이 미련 또한 놔줘야 할 순간임을 인정해야 했다. 며칠 전 그 이름을 가진 여자에게, 고백을 받았다고 했다. 왠지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말을 들은 것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 고백을 받아주고 싶은 눈치인 듯했다.

그 평범하고도 흔한 이름, 그러나 내 이름만 부르던 그의 목소리로는 낯설게만 들리는 '지영'이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했던 수많은 낮과 밤, 봄 여름 가을 겨울, 산과 바다와 강, 우리만의 특별했던 장소들...이 이제는 더 이상 나에게 있지 않다고, 그 모든 것들을 보내줘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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