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봄, 국문과 교수님들과의 만남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파릇파릇한 시기에 입시 결과가 나왔다. 대학원 합격은 기쁨보다는 꼭 필요한 것을 되찾은 안심에 가까웠다. 다시 나의 자리를 찾은 안도감. 퇴사를 던져놨으니 이것마저 안된다면 답이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성실하게 학업계획서를 쓴 자대 졸업생을 내칠 인문학 대학원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걱정은 하고 있었는데 다행이었다. 합격은 했지만 앞일이 더 걱정이었다. 학부 때 워낙 '아싸'로 산 지라, 졸업한 대학교로 다시 돌아가는 이점을 살릴 수도 없이 망망대해에 혼자 던져진 기분이었던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대학원 수업을 하시는 교수님들 중 그나마 아는 교수님들께 메일을 보냈다. 학부 때 강의를 한 번 들어봤다는 인연을 빌미 삼아서. 다행히 세 분 다 면담 요청을 받아주셔서 오랜만에 학교를 찾았다.
퇴사하고 나서 처음 와보는 캠퍼스는 시기가 시기인지라 나무가 파릇파릇했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생기를 주던 건 코로나가 풀리고 돌아온 학생들이 주는 분주함과 왁자지껄함이었다. 코로나 시기에 졸업하고 다시 대면 수업을 들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만간 나도 저 속에 섞여 수업을 듣게 된다고 생각하니 기대감이 차올랐다. 사실 학교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었나 보다.
세부 전공이 다르지만 학부 때 마음속으로 좋아했던 P 교수님은 여전히 따뜻한 매력을 갖고 계셨다. 정말 나를 생각해서 조언을 해주시는 느낌이었다. 대학교마다 학풍이라는 것도 있으니 그걸 고려해 보라고도 하셨다. 회사를 때려치운 이야기 들으시고, 절박함도 중요하지만 그것만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지속가능성도 중요한데 그를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재밌는 거라고 했다. 돈은 못 벌 수 있어도 우리는 '덕업일치'가 되지 않느냐며.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당신의 저서도 책꽂이에서 한 권 뽑아서 선물해 주셨다.
지도교수로 생각하고 있는 B 교수님은 이번 학기에 학과장을 맡아 아주 바쁘신 모양이었다. 분 단위로 일정이 있으신지 길게 면담을 못한다고 먼저 양해를 구하셨다. 교수님은 자신이 26살에 번역서를 출간했다고 하시며, 대학원 안에서도 누구는 20대에 벌써 등단하거나 출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며 각자의 시간이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역시 내가 제일 느린 것 같다고 속으로 주눅 들어있는 나를 보고 갑자기 "너는 아직 20 대지?"하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하자 잘됐다며, 회사 다니다가 30 넘어서 들어오는 사람도 있는데 머리도 늙기 때문에 20대에 석사를 끝내는 게 좋은 것 같다고 하셨다. 요즘 시간 있으면 이번 학기에 청강해 보지 그랬냐고 하셨다.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라 진작 해볼걸 하고 아쉬웠다. 현재 적이 없어도 사정을 설명하고 미리 들어보고 싶다고 하면 허락하셨을 거라고. 아무리 인문대가 어렵다고 해도 우리 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나온 사람들이 굶어 죽지는 않는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셨다. 교수님의 조언은 대략 이 정도였다. '본인이 럭셔리한 삶을 원하는 게 아니고 '공부하고 밥 먹으면 된다' 정도면 그건 충분히 가능하다, 다른 전공처럼 유학이 필수인 것도 아니니까. 이기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 행복해야 부모님도 원망 안 할 수 있다. 본인도 그렇게 넉넉한 집안은 아니었는데 부모님이 니 하고픈대로 하되 돈은 알아서 하라고 해서 과외 4-5개씩 뛰며 대학원 다녔고, 그래도 너무 재밌었다. 특히 석사 1학기에 학부 때 못 배운 여러 학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인생에서 제일 재밌었다.' 마지막에 나를 보며 교수님은 잘할 것 같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예의상 하는 말인지 아님 내게서 진짜 뭔가를 느끼신 건지는 몰라도 감사했다. 쿨한 겉모습 속에는 따뜻한 정이 있는 분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 분은 나중에 진짜로 내 지도교수님이 되셨는데, 악명이 높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C 교수님은 행정적으로도 맡은 업무가 많고 제자도 많은 교수님이라 그런지 학생 개개인에게 큰 관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크게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면담도 가장 짧게 했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수업을 하지 않은 기간이 길었던 탓에, 기억에 남아있던 얼굴에 비해 노쇠하신 게 느껴져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다니면서 받은 교수님들의 조언은 대략 이 정도였다.
- 선생님들이 쓴 책 읽어보면서 어떤 연구할지 정해봐라.
- 혼자 공부할 줄 알아야 한다. 꼬리물기 공부(=참고문헌 흥미로운 거 읽어보기) 해보면서 자기만의 로드맵을 짜야한다.
- 많이 읽고 공부할수록 글도 잘 나온다. 꾸준히 쓰는 게 중요하다.
- 학부 수업과 많이 다르다. 선생님은 도움만 줄 뿐 스스로 발제하고 생각해야 한다.(그래서 석사생들이 학부 때와 너무 다르다며 대학과 대학원 사이에 Prep school 같은 거라도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B교수님이 전해주었다. 실제로 한 학기를 다녀보니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 동기들, 선후배의 도움을 많이 받자 석사생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요즘은 수업의 로드가 빡세지긴 했지만 스스로 세미나도 다니면서 공부해야 한다.
- 석사 대상 장학금은 많지 않다. 박사과정의 경우 BK21로 연구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이 있지만 경제적인 지원이 되는 편이다. 우리 학교는 석사생 수가 많기 때문에 석사는 BK를 거의 못한다.
- 학자금대출받고 상환하면 연말정산 때 상환금액의 15%가량 공제 가능하다.
- BK21를 통해 여러 지원이 있기 때문에 커리큘럼 개혁도 되고 전망이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23년 12월 BK21에 떨어져 우선은 근로 장학금도 줄어들었고 앞으로 어떤 난관이 펼쳐질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