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모 이후에

갑작스러운 심경변화

by 수험생

싱숭생숭 발걸음이 무겁다.
양 옆으로 끼인 친구들의 발도 가볍지는 않다.

사소한 대화거리를 찾으려 안간힘 쓰는 친구가 안타까워 화젯거리를 던져보았다.
"이렇게 걷는 거 오랜만이지?"
우연하게 친구들과 난 학교가 집으로부터 꽤 멀리 있어 보통이면 버스를 탄다.
시험이 끝나거나, 특별한 학교행사로 인한 뒤치다꺼릴 할 때만 삼삼오오 모여 걷는다.

"그러게 거의 3개월 만이네"
아마 대답을 한 친구도 머릿속에 가득 찬 모고 생각들을 처내고 가까스로 끄집어내 말했을 이다.

"......"
5월 모고만 해도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시험을 완전히 말아먹거나, 답을 밀려 쓰거나, 스스로 왕왕 실망하지 않을 경우 주변사람 눈치가 보일 정도로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물론 시험얘기도 스스럼없이 꺼내며 떠들었다.

"메가에서 답지 나왔데"

(신기하게 6모부터는 답지가 8시부터 나오기에, 다른 사이트에서 문제를 풀고 답을 올리는 듯하다.)

그의 목소리에서 떨림, 혼란, 두려움, 셀렘과 약간의 기대가 묻어났다.

사실 나를 포함한 주위 친구 모두가 그런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채점할 거면 앞에 가 있을게"
평소에 말이 별로 없던 친구가 결연한 표정으로 단언했다.
나도 머릿속 한쪽 구석에 답을 적은 번호가 흐릿흐릿 보이기에 듣고 싶지 않았다.


"됐어, 나만 눈으로 확인할게"
녀석은 짜리 몽땅한 손으로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조잡한 손놀림으로 핸드폰을 두드렸다.
이후 눈동자를 이리저리 화려하게 굴렸다.
"아 X발"
평소에 이런 저급한 말을 입에 담지 않는 녀석이기에 나를 포함한 여럿은 흠칫 놀란 표정을 공유했다.

"아냐, 사실상 맞은 거지 이건..."
슬픔이라기 보단 열등감일 것이다, 녀석이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떠들었던 내용이 심기를 건드렸음이 틀림없다.

이후 다시 정적이 흘렀다, 원래라면 무리 중 한 명이 먹잇감을 노리듯 달려들어 꼬치꼬치 캐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 누구도 맹수의 역할을 자처하지 않았다.
단지 서로 힐끗힐끗 보며 어리숙한 몸동작을 주고받을 뿐이었다.

어색한 흐름이 부담되기 시작할 때 다행히 내 집방향 갈림길이 나타났다.
"나 먼저 갈게, 낼 졸업사진 찍으니까 늦지 말고"
나름대로 좋은 대처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필요한 정보를 담아 정성을 어필하는 말이다.
서로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아까 욕을 한 친구의 모습이 애잔하게 밟힌다, 등을 두드려주고 싶지만, 혹여나 때렸다고 인식할까 두려워 생각을 접는다.

혼자 걸으며 오늘의 나를 정리해 본다, 오늘 나에 대해 자책을 해야 할지 다독여야 할지 고민해 본다.

오늘의 내가 대견하다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이 남아있기에 그다지 스스로를 비난할 수 없다.

무슨 생각을 해야 이 기분을 상쇄시킬 수 있을까

곰곰이 고민에 대한 고민을....


그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애초에 이렇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의 정서는 어젯밤 꿈자락처럼 조금만 지나면 잊힐 텐데, 난 무엇이 아쉽다고 이런 쓰잘 때기 없는 고민에 치우칠까.

지금 필요한 건 자책도 아니고, 격려도 아닌 나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라고,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다시 활활 타오르도록 다짐하는 것이라며, 마음속 깊이 생각다.


그래,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여태까지 불태웠던 순간이 보답받는 날이 꼭 올 것이다.

그날이 언제 오는지는 중요치 않다, 분명히 온다는 것이 중요하기에 그전까지 맘껏 불태우면 된다.

그 순간에 나를 인정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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