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첫 강아지 방울이를 추억하며 -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을 시청하고 나면 여러 번 베개잎을 적시며 잠이 들어야 했다.
무지개다리를 건넌 강아지들이 시간이 흘러 천국에서 주인을 다시 만났을 때 그 체취와 모습을 기억하고, 그동안의 오랜 기다림을 담아 있는 힘껏 달려 주인 품에 안기는 모습을 보고는 어느새 "끄억, 끄억" 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럴 때마다 세상모르고 베개를 침대 삼아 벌러덩 누워 자던 포동이를 있는 힘껏 껴안고 눈물을 온 털에 비벼대며 사랑한다 말해주었다. 행여 눈이 부을까 눈가를 두드리며 애써 마음을 달래어 잠을 청했지만 쉽사리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고, 그런 날은 옆에서 새근새근 잠든 포동이를 토닥이며 나의 첫 강아지 방울이를 어느새 추억하고 있었다.
당시 시골에서 흔한 잡종이었던 발바리. 목에 방울이 달려있어 움직일 때마다 "딸랑, 딸랑" 소리를 내어 지어진 이름 방울이는 발바리 치고도 털이 길고 멋스러웠고 무엇보다 영리했다. 그때는 도축을 아무나 할 수 있었고 개장수들이 트럭을 가지고 주기적으로 식용 개를 사러 다니던 시절이었다. 아빠도 벌이가 변변치 않다 보니 잡종 새끼 몇 마리 사서 앞마당에 키우며 그 수를 늘려나갔다. 어스름한 저녁 가마솥에서 푹 고아지고 있는 북어 껍데기 냄새는 아직도 생생하다. 사료대신 북어 껍데기를 삶아 밥과 함께 먹였고 그래서인지 다른 집 강아지들보다 더 금방 자라는 것 같았다. 어느새 그 수가 늘어 앞마당은 개집으로 가득했고. 그렇게 많은 강아지들 틈에서 우리 방울이는 유일하게 집 안을 지키는 녀석으로 인정받았다. 학교 갔다 오면 꼬리 흔들며 항상 반겨주던 얼룩땡땡이 방울이. 그런 방울이와의 이별은 정말 예기치 않게 다가왔고, 나에게는 아직도 치유되지 못한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주말을 맞아 고모댁에 다녀왔었다. 아픈 엄마를 대신에 어린 시절 대부분을 큰 고모댁에서 보내던 나는 그날도 언니와 고모댁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그런데 온갖 반가움을 몸과 소리로 표현해야 하는 방울이가 불러도 대답도 하지 않고 보이지도 않았다. 자신의 집에서 나오지 않고 있던 녀석을 억지로 목줄을 끌어당겨 보고는 기겁해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피 범벅된 얼굴에 한쪽 눈가는 거의 감겨서 보이지 않았고 다른 몸도 성치 않은 상처로 가득했다. 소중한 나의 무엇인가가 타인으로부터 원하지 않게 건드려졌을 때 솟구치는 감정에 처음으로 몸서리치게 아팠다.
도시가스가 없던 시절, 가스레인지에 연결해 사용하는 LPG 가스통을 바꿔가면서 쓰던 때였다. 그날도 사용이 다 되어 배달을 요청했고, 가스통 아저씨가 왔는데 무슨 이유였는지 방울이가 배달 온 아저씨의 다리를 물은 것이다. 화가 난 아저씨는 가지고 있던 쇠 가스통으로 있는 힘껏 방울이를 여러 번 내리쳐 저지경으로 만든 것이었다. 엄마도 놀래 나와서 말렸지만 물린 것에 화가 난 아저씨를 말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원래 집을 잘 지키지만 입질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분명 아저씨가 방울이를 자극할 만한 어떤 행동을 했을 거 했지만, 아빠는 이유야 어찌 됐든 치료비도 받지 않고 조용히 넘어간 것이 다행이라며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병원에 데려가 달라는 말에도 그럴 돈이 어딨냐며 시간이 지나면 상처가 아물 거라고 딱 잘라 말하던 아빠. 방울이의 상태를 보고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그렇게 아끼고 좋아하던 아빠가 맞는지 돈 앞에 흔들리는 모습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방법이 없었다. 많이 아파도 시간이 지나 상처가 회복되면 괜찮을 거라는 아빠의 말을 믿고 싶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하루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상태는 더 나빠졌고 결국은 일어설 힘도 잃게 되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돌아온 어느 날, 반겨주는 것은 방울이 대신 주인을 잃은 빈 묵줄이었다. 방울이의 행방을 물으니 항상 당당하던 아빠가 우물쭈물 대충 말끝을 흐리기 시작했다.
"살기 그른 것 같아서 동네사람들이 잡아서 먹자고 하는데, 차마 내가 어떻게 방울이를 잡냐. 그래서 그냥 다른 사람들 먹으라고 데리고 가라고 했어."
그 말을 듣는 나의 온 다리는 힘이 풀렸고 처음으로 악을 써 울며 부르짖었다.
"그곳이 어디인데? 어디에 줬냐고!"
지금 가봐야 늦었다고 했지만 악에 바친 나는 그 먼 곳을 어떻게 뛰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온 힘을 다해 내달렸다. 숨이 차는지도 몰랐다. 내 발걸음이 늦어지면 방울이가 진짜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살려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그곳이 가까워질수록 코 깊숙이 밀려 들어오는 냄새에 "아니야, 아닐 거야"라며 마음을 애써 부정했다. 그러나 나는 결국 문을 열고 그곳에 들어서지 못했다. 이미 온 동네에 퍼지고 있는 불에 그을린 털 냄새에 온기를 잃어버린 방울이의 마지막 모습을 차마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달려 온 그 길을 다시 터덜터덜 걸었다. 그 후로 며칠 동안 밥을 먹지 않고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언니와 나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며칠이 지나 아빠는 사과의 뜻을 내비쳤지만 방울이는 다시 우리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안 돼요. 우리 방울이 당장 내놔요!" 있는 힘껏 문을 박차고 들어가 무서움 속에 떨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방울이를 다시 품에 안는 생각을 종종 한다. 지난 열 살의 용기 없던 나를 마주할 때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설사 다쳤던 상처들이 제대로 아물지 못해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되더라도 내 품에서 보내주고 싶었다. 내 달리기가 느려서였을지도, 아니면 지레 겁을 먹고 문을 열고 들어서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 이 모든 상황의 끝에는 결국 내가 있었다. 달리기가 조금 더 빨랐어도, 조금 더 용기가 있었어도......
한없이 미워지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게 방울이를 보냈다. 어린 날의 상처라고 단순히 표현하기에는 너무 벅찬 아픔이었고 힘듦이었다. 그 뒤로 우리 집은 개를 키우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의 엄마가 된 지금, 내 곁에는 흰 털북숭이 포동이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너는 내가 꼭 지켜줄게.' 잠든 포동이를 보며 내 눈가는 어느새 촉촉해져 왔다.
드라마처럼 정말 사후세계가 있다면 우리 방울이를 언젠가는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다고.' 그리고 '너무 보고 싶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