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맛 나는 여자는 멋있어!

내 삶의 속도

by podong

요즈음 가장 많이 하는 말 "제가 미쳐 돌아서요."

제법 날 것의 저 표현이 누군가에겐 듣기 불편할 수 있겠지만 마음속 밑바닥까지 한바탕 뒤엉켜 버린 지금의 내 상태를 가장 정확히 표현해 주는 말이다.

간신히 잡고 살던 인내의 끈이 풀려버렸다.

20여 년 가까운 결혼생활 동안 참는 게 미덕이라 생각하며 착한 며느리로 살아오느라 누루고 살던 고삐가 풀려버렸고, 때를 기다렸다는 듯 두 자식 놈들마저 죽어라 말을 안 듣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덩치 큰 한 놈과는 힘겨루기 몸싸움을 작은놈은 엄마를 비웃음의 대상으로 여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주말 부부인 남편은 이 모든 상황과 관계없다는 듯 혼자 지내는 자신을 측은지심으로 감싸느라 마누라가 어떤 찢어지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지 살필 여력이 없어 보였다.

마음이라는 그릇에 서러움 한 방울, 속상함 한 방울 모여 넘칠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다 결국 비워내지 못하고 넘쳐버린 것이다.

흘려버려 진 물을 온전히 돼 담기 어려운 것처럼 다시 예전처럼 생활하기에 이제는 내 마음의 조절이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참 때는 모든 일상의 대상들이 나를 공격하는 것 같고, 억울하며 속상하고 그저 힘들었다.

결국 정신과를 찾았고 위험상태인 나를 마주했지만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훌쩍 떠나고 싶어도 출근해야 했고, 때 되면 속 썩이는 자식들의 밥을 챙기고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틀에 갇혀 발버둥 치고 있는 내가 한없이 나약하고 무능력해 보였다.

언니에게 사실을 터놓았고 그동안의 힘듦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터질게 터졌다며 토닥여주었다.

약에 의존을 줄이고 무엇보다 생각의 환기가 필요했던 나는 언니 손에 이끌려 크로스핏 짐(gym)에 그렇게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크로스핏(CrossFit).

다양한 연령대와 체격의 사람들이 모여 매일 다른 와드(매일 제공되는 운동 프로그램)를 소화한다.

초보인 언니와 나는 기존 회원들과는 실력 차이가 나기 때문에 따로 기초적인 기본 프로그램을 배워나갔다. 워낙에 몸치라 오늘 알려준 것도 돌아서면 잊어버려 덕분에 까마귀 고기를 드셨냐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었지만 부끄러움은 잊은 지 오래다.

안 하던 운동을 그것도 고강도로 하다 보니 근육통은 물론이고 정말 힘들다 싶은 날은 밤에 '끙끙' 앓다가 잠이 들었다.

운동선수 할 것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데면데면 숨 막히는 집안 공기보다는 운동하며 보내는 한 시간이 몸이 아플지언정 나에게는 나쁘지 않았다.

땀범벅 되어 돌아와 씻고 누우면 그동안 뒤척이며 날 새우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머리만 닿으면 잠이 들었다. 몸이 고단하니 생각도 조금씩 단순해져 갔다.

사회인 여자축구 단원인 언니는 그동안 사정상 쉬었던 축구 활동을 다시 시작하게 되어 이제는 혼자이다.

얼마 안 가 그만둘 거라 생각했던 언니는 가끔씩 보내오는 나의 영상을 보며 놀라워하고 있다.

한 발로 간신히 올라가던 박스를 두발 점프로 오르락내리락, 학창 시절 한 개도 못 넘던 2단 뛰기 쌩쌩이를 이제는 연달아 스무 개씩하고 있으니 말이다.

"줄을 조금 길게 하고, 두 발 모아 뒤꿈치를 들고 고개는 살짝 위쪽을 보세요."

남아서 연습하는 아줌마가 안쓰러웠던지 지나가는 회원들이 한 마디씩 코치해 주고 응원해 주니 덕분에 줄 멍자국이 이제는 훈장이 되어 타이밍만 잘 맞으면 스무 개를 연이어 넘기는 쌩쌩이의 기적을 이루고 있다.


바람 불면 날아갈 듯 야리야리한 여자 회원들이 손에 하얀 분칠을 하고 150 킬 오 가까운 바벨을 들어 올릴 때면 저절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온다.

무게 치는 쇠맛 나는 여자는 너무 멋있다.

역도는 힘과 더불어 기술의 스포츠다.

들어 올리는 타이밍과 손이 젖혀지는 각도에 따라 무게를 더 칠수도 아니면 부상을 입을 수 있는 찰나의 간극이 존재한다.

힘의 중심을 발바닥에 두고 얼굴이 터져나가도록 온 힘을 다해 끌어올려 최고 무게 달성했을 때는 전 역도 국가대표 장미란 선수 부럽지 않은 쾌감과 성취감을 맛본다.

요즈음은 운동 갈 시간이 되면 힘들어 미적대다가도 어느새 정신 차려 보면 짐(gym)에서 운동화 끈을 묶고 있다.

숱한 실버 바벨 속 유독 눈에 띄는 핑크 바벨을 가지고 마음처럼 움직여 주지 않는 몸으로 여전히 낑낑대고 있지만 와드를 포기하지 않고 소화해내고 있는 내가 조금은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타임아웃 벨소리와 함께 다리 힘이 풀리면 한 발자국도 내딛기 어려워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버린다.

와드 내내 몸 밖으로 빠져나올 듯 귓가에 요동치던 심장소리와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은 새삼 "내가 살아 있구나." 느끼게 되는 생경한 순간을 맛보게 해 준다.

하루하루 이런 순간들 속에서 나는 온전히 나를 마주한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을 주변 사람들에 맞춰 살았다.

아파도 괜찮은 척, 숱한 상처에도 꿋꿋한 척.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며 버텼던 삶.

하지만 '누구를 위한 최선이었던가.'

"지금까지 잘해왔는데 왜 이래. 미친 거야?.'

"네! 미쳤습니다. 심지어 미쳐 돌았습니다."

이러지 않고서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지킬 수 없으니까요.

인내하고 견디며 하루를 살아내는 생활이 더 이상은 나의 삶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저 나는 내 삶을 살고 싶을 뿐이다.


Just leave me alone, Ok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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