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신이 뿌듯하면 어디를가도 천국

by 꽃그림 의사

미국에 있을 때 가족들과 함께 자주 먹던 서양배의 맛이 오래 기억에 남아 있었다. 특별한 날도 아니었고, 식탁도 늘 소박했지만 그 배는 유난히 달고 부드러웠다. 그러다 얼마 전 덴마크에서 가족들과 다시 배를 먹게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그때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장소와 시간은 달라졌지만, 함께 나누어 먹던 분위기와 편안함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맛은 특정한 공간의 것이 아니라, 가족들과 무심히 흘려보냈던 평온한 순간들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그래서 그날의 배도 충분히 좋았고, 그 자리는 조용히 마음이 놓이는 공간이 되었다.

나 자신이 뿌듯하면, 어디를 가도 천국이라는 말을 요즘 들어 자주 곱씹게 된다. 그 문장은 특별히 위로를 건네지도, 구체적인 해답을 내놓지도 않지만 이상하게 마음을 곧게 세운다. 조건이 바뀌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약속 대신, 태도의 문제를 조용히 건네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장소를 바꾸면 삶이 달라질 거라 기대한다. 더 좋은 도시, 더 나은 직장, 더 평온한 집. 하지만 막상 그곳에 도착하면 마음은 여전히 분주하고, 만족은 잠시 머물다 사라진다. 천국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은데, 우리는 늘 다른 좌표를 입력하느라 정작 가장 중요한 기준을 놓친다.


뿌듯함은 거창한 성취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마쳤을 때,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옳다고 믿는 선택을 했을 때, 누군가에게 친절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을 때도 조용히 쌓인다. 그 작고 사소한 감정이 하루의 중심을 잡아주면, 주변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도 마음의 온도는 확연히 달라진다.


그때부터 장소는 더 이상 결정적인 변수가 아니다.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도, 낯선 호텔 방에서도, 익숙한 책상 앞에서도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다는 감각이 공간을 채우면, 그곳은 잠시 머무는 곳이 아니라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된다.


결국 천국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하루를 건너온 나 자신에 대한 평가에 가깝다. 오늘의 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그 순간 서 있는 자리는 어디든 충분히 따뜻하다. 내 자신이 뿌듯하면, 정말로 어디를 가도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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